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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무역 갈등과 노동인권

국가를 뛰어넘는 연대와 협력의 가치

등록일 2019년08월29일 09시2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2019년 여름 그 어느 때보다 한일 양국 간 갈등으로 뜨거운 시기입니다. 일본정부가 지난 8월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면서 양국 간 무역 갈등은 경제 뿐 아니라 안보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정부 간 분쟁을 넘어서 불매운동이나 집회 및 폭력으로까지 이어지며 시민 간 대결적 국면도 전개되고 있습니다. 

 

  한일 양국은 냉전질서 해체 이후 줄곧 갈등과 협력을 반복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역사문제뿐 아니라 경제 및 안보, 나아가 시민사회까지 갈등이 첨예화·장기화된 경우는 드뭅니다. 이런 갈등은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노동조합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문재인정부는 비상 대책으로 주52시간제 시행 유보, 산업안전보건조치 간소화, 재벌 규제 완화 등을 내놓았습니다. 아울러 정부와 국회의 일방적인 주도로 국회노동개혁특위와 민관정협의회 구성을 통해 노동현안들을 다루겠다고 하는데, 그 정책의 방향이나 정부주도성을 볼 때 노동존중이나 사회적 대화라는 가치를 희생시키고 기업살리기와 반노동으로 정책기조가 전환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한 우려를 가지게 합니다. 

 

  한반도에서 살아온 많은 구성원들은 일제 식민지 시기부터 권위주의 정부시기까지 ‘국가총동원’이란 이름으로 노동자와 여성을 비롯한 부문 이익이 무시되어온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현 통치세력이 전체를 위해 부문 이익을 억압했던 역사에 진심으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일본을 이기기 위해 노동자의 건강권을 희생시키고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며 중소자영업자의 이익은 잠시 접어두겠다는 구상은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시기일수록 오히려 노동조합은 영토와 민족을 뛰어넘는 노동자와 시민들의 연대와 협력의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1999년 ILO에서는 일본의 강제징용행위가 강제노동에 해당된다는 전향적 판단을 내렸으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강제징용 희생자 개인에게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져야한다고 권고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일제의 부끄러운 역사를 낱낱이 자료로서 제공한 이들은 바로 일본노동조합들이었습니다. 이들의 헌신적이고 수년에 걸친 의견개진과 정보제공으로 국제노동기구의 의미 있는 판단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 8월호 노동N이슈에서는 한일 간 무역 분쟁과 노동인권, 그리고 대응 방향에 대한 생각을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 이 자료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한국노총의 공식 견해를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정혜윤(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상상의 공동체를 살아가는 우리

 

  현재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일본과의 갈등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공동체의 의미를 질문하게 한다. 한국의 많은 시민들은 왜 일본의 수출 규제에 분노하고 불매운동에 자발적으로 나서는 것일까?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라는 역사학자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R. O’G. Anderson)의 정의가 시사하듯 현재 우리에게 당연시되는 ‘국가’와 ‘민족’이란 용어는 근대적이고 구성적인 개념이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틀이 의미가 있는 것은 우리가 그 틀을 통해 같은 언어와 경험이라는 역사를 공유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2019년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은 사실 일제 강점기를 경험한 바가 없다. 그러나 위안부 여성들과 징용노동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한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나, 이런 고통을 외면해온 한일관계의 역사가 많은 이들에게 분노와 회한의 대상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편 역사는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는 그저 사실로서 존재할 때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애초에 역사학은 근대 민족국가를 구성하는 시민들이 자신의 공동체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문이다. 정치에서 역사문제가 논의되는 시점은 통치세력에게 해당 역사에 대한 소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촉발된 양국 갈등에서 왜 역사문제는 다시 전면에 등장하는가? 양 국의 통치세력은 왜 이 갈등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는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아베정권의 의도에 대해서는 한국 대법원의 징용배상 문제에 대한 불만 표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외교적 압력, 참의원선거에서 지지자결집용, 한국을 특별한 우호국가가 아니라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 중간에 있는 국가 정도로 대우하겠다는 외교전략상 배제 의지2) 등등 몇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기존 미디어에서 상당부분 논의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생략하고 한국정부의 노동 관련 대응에 주목한다. 
 

  반노동자적인 정부의 대응책 
 
  정부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이후 주 52시간제 시행을 유보하고,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나 산업안전 보건 조치를 간소화시키며,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유보하거나 적용 예외로 하는 비상대책을 내놓았다. 이는 외교적 대응을 넘어, 한일관계를 구실로 국내 노동 정책의 기조를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정부와 국회의 일방적인 주도로 국회노동개혁특위와 민관정협의회의 구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국회개혁특위에서는 탄력근로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등 노동 현안을 다루겠다고 한다. 문제는 주 52시간제를 앞두고 이를 무력화시키는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고 재량근로, 선택근로 등 유연노동시간제 주장이 여당 내에서도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의원 중 일부는 아예 주 52시간제 시행 유보에 관한 입법 발의를 하기도 했다. 문재인정부 후반기에 <노동존중>과 <사회적 대화>라는 가치가 후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를 이유로 한 노동자 희생, 비민주적 역사의 재현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조치가 기업 살리기와 반노동 정책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공동체의 의미를 묻게 된다. 

만약 과거 한반도에서 강제 노역을 해야했던 노동자들의 고통에 공감한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으로 건강권이 위협받는 현실도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화학물질을 비롯한 산업안전보건조치에 관한 규제는 기업의 무분별한 이윤추구로 죽어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우리 공동체가 기억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나아가 재벌 집중의 피해가 노동자는 물론 중소자영업자 등 우리 공동체의 개개인들의 삶 전체를 파괴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광범위하게 존재했기에, 재벌 규제가 제도화되었던 것이다. 
  
  사회에는 다양한 주체들의 이익들이 존재한다. 민주주의란 부분의 이익을 존중하며, 부분 간 이익이 잘 대표되고 합의되어 조화를 이루는 것이 그 원리이다. 만약 부분의 이익을 무시하고 전체로서, 국가나 민족이란 이름으로 누군가를 희생시키고자 한다면 이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한국은 일제식민지 시기부터 권위주의 정부시기까지 ‘국가총동원’이란 이름으로 부문 이익이 무시되어온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많은 이들이 강제 징용되고 위안부로 여성들이 끌려갈 수 있었던 이유는 전체로서 부문을 억압할 수 있다는 논리 때문이다. 일본제국의 산업 발전을 위해, 전쟁승리를 위해 노동자의, 여성의 부문 이익은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1965년 한일 협정에서 식민지 피해자들의 청구권 문제가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던 데에는 국가의 빠른 경제발전을 위해 개인들의 이해나 요구는 부차적이라고 여겼던 이유도 있다.   

 

  한국의 현 통치세력이 일본 제국주의 시기나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시기처럼 전체를 핑계로 부문 이익을 억압했던 역사에 진심으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일본을 이기기 위해 노동자의 건강을 희생시키고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며 중소자영업자의 이익은 잠시 접어두겠다>는 대응책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국가를 뛰어넘는 연대와 협력의 가치 

 

  일본정부가 지난 6월 28일 한국을 수출 절차 간소화 우대국 명단인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한 직후, 7월 11일 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과 일본노동조합의 최대 전국조직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日本労働組合総連合会: 이하 ‘렌고(連合)’의 고즈 리키오(新津里季生)회장은 도쿄 렌고본부에서 긴급회담을 가졌다. 양국 노총은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가 양국 경제와 노동자에게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시했다. 양 노총은 장시간 논의 끝에 “최근 부상하는 한일 간 무역 분쟁에 우려를 표하며 양국의 건전한 경제발전과 노동자의 고용과 생활을 위협하지 않도록 각 국 정부와 진지한 협의와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합의를 했다. 


  이후 또 다른 일본의 노동단체인 전국노동조합연락협의회(全国労働組合連絡協議会)나 전국노동조합총연합(全国労働総連合) 역시 일본의 경제보복을 반대하며 ‘반(反)아베(安部)’ 투쟁에 연대하겠다는 성명을 밝혔다. 이외에도 많은 일본 내 사회단체들과 일본공산당·일본사민당 등 일본 내 정당 및 시민사회세력들이 현 일본 정부정책을 비판하고 한국의 시민사회와 연대의 의지를 밝히고 있다. 


  사실 우리는 영토 국가 개념이 너무 익숙해 국제 노동자 간 연대가 매우 추상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연대와 협력의 가치는 바로 이번 규제조치에서 촉발점이 된 강제징용문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ILO에 강제징용의 위법성을 밝힌 일본노동조합들의 노력 

 

  20년 전인 1999년에 발간된 국제노동기구(ILO)의 기준적용 전문가위원회 보고서는 일본의 강제징용행위가 ILO 핵심협약인 ‘강제노동 금지협약(제29호)’을 위반한 것이라는 전향적인 판단을 내렸다. 나아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강제징용 희생자 개인에게 충분히 보상이 이루어져야한다는 권고도 포함시켰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사실이 밝혀지도록 꾸준히 자료를 보내고 강제노동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견을 밝힐 뿐 아니라, 계속 새로운 사실관계들을 보강하는 노력을 기울였던 이들은 일본의 노동조합들이었다. 일본의 오사카 특수영어교사노조·전일본조선기계노동조합 간토지역위원회·일본노동조합 도쿄지역위원회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강제징용 뿐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제기한 10여 개의 소송 진행상황 업데이트, 사안에 대한 일본 정부 주요 인사들의 발언내용 및 그에 대한 의견 개진, 일본 정부의 변명에 대한 반박 자료와 논리를 매년 ILO에 제공해왔다. 즉 일본노동조합들이 자국 정부의 범죄를 국제사회에 성실하게 고발해 ILO전문가위원회가 꾸준히 보고서를 내고 전향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다. 이 노동조합들이 재일동포 가족이거나 직접적 이해관계자도 아니다. 다만 같은 노동자라는 연대의 마음에서,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어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이다.3) 
 

  즉 자국의 과오를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일본 노동조합의 노력으로 국제노동기구가 일제의 강제징용이 ‘강제노동’ 금지협약 위반임을 입증해냈다. 그런데 20년이 흐른 후 한국정부가 일본에 맞설 수단으로 특별연장근로라는 ‘강제노동’을 다시 부과한다는 발상은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공동체의 가치와 국가의 역할 

 

  국가가 필요한 이유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물리적 강제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때 부문 간 이익이 잘 조화되고, 개별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공존할 때 공동체가 기능한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를 살아간 많은 구성원들은 바로 그 국가가 보호 기능을 할 수 없었거나, 전체를 위한 개별 구성원들의 희생이 당연시되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정부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불쾌한 이웃국가와도 전략적으로 외교할 수 있는 정부이다. 적어도 민주정부가 할 역할이 타국과 싸운다는 명분으로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이익을 쉽게 희생시키거나 보호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국가의 영토를 넘어서 조금 더 냉정하게 이번 분쟁이 과연 양 국가의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올 수 있으며, 진정한 평화 구축의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또한 노동자와 시민들의 연대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진정으로 노동인권이 보호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1) Benedict Anderson·윤형숙(역). 2002. 『상상된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 서울:나남.

2) 이 점에 대해서는 이하의 글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장부승. “일본 한미일틀에서 한국을 내치려 한다.” 중앙일보 시평(2019년 8월8일), “트럼프 입만 보는 외교로는 일본 못 이긴다.” 『新東亞』720호). p108-123.

3) ILO의 판단의 맥락과 일본 노동조합의 노력에 대한 자세한 경위는 이하의 글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오민규. “ILO협약 가입이, 일본 강제징용 논리 부수는 길이다.” 프레시안 2019년 8월7일).  

 

참고문헌

오민규. “ILO협약 가입이, 일본 강제징용 논리 부수는 길이다.” 프레시안(2019년 8월7일) 
이대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만들기.” 경향신문(2019년 8월 20일) 
장부승. “일본 한·미·일틀에서 한국을 내치려 한다.” 중앙일보 시평(2019년 8월8일)
        “트럼프 입만 보는 외교로는 일본 못 이긴다.” 『新東亞』720호. p108-123. 
최장집. “한국민족주의의 다성적 성격에 관하여.” 『한국국제정치학회 주최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학술회의 라운드테이블 발표문』(2019년 3월 15일) 
최희식 외. 2018. “『일본공간』기획 좌담회 -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일본의 역할.” 『일본공간』23. 4-31. 
Benedict Anderson·윤형숙(역). 2002. 『상상된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성찰』. 서울:나남.  

정혜윤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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