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하면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특별히 이상할 것 없는 평범한 모습이다. 하지만 좀 이상하다. 술집의 소음 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목소리는 한 여성인데, 전화통화로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고 반복해 말하고 있다. 화면 안에서 누구의 목소리인지 찾을 수 없다. 목소리는 계속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하는데도 상대방이 의심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나기사와 함께 있다고 말하는데 스크린의 오른 편에 앉아있던 한 여성이 스크린 쪽을 본다. 그 나기사란 이름인 것 같은 여성이 스크린 앞으로 나와 앉아 계속 목소리를 듣는다.

같은 세계, 다른 존재
그때 컷이 바뀌고 전화 목소리의 여성 아키코가 보인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은 전화하는 아키코 시점의 숏이었다는 것을 관객들은 늦게 알게 된다.
 

전화는 계속되고 한 중년의 남성이 와서 앉는다. 아키코를 계속 의심하는 전화 상대는 누구일까? 아키코가 전화를 끊은 후 중년의 남성은 아키코에게 누군가를 만나러 가라고 말하는데 아키코는 오늘은 가기 싫다고 말한다. 할머니가 찾아왔는데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아키코는 소리를 지르는데 소리 지르는 아키코의 모습을 관객은 볼 수 없다. 그 소리를 듣는 맞은편의 중년 남성의 모습만을 본다.

 
대화가 전개되면서 점차 아까 전화했던 상대는 아키코의 남자친구인 듯 하고, 중년 남성은 대학생인 아키코가 콜걸로 아르바이트하는 고용주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이 둘이 한 화면에 잡힌 것은 중년 남성이 전화를 받기 위해 바를 나간 후 거울에 비친 뒷모습과 바 안의 아키코가 함께 잡힌 장면이 처음이다. 둘은 같은 세계 안에 존재하지만 하나의 장면 안에 존재하지 못하고 분열되어있다.

분열된 동시대인들의 자아
영화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일본에서 만든 영화다. 아키코는 자신의 고용주인 중년남성이 가라고 한 곳으로 택시를 타고 가는데, 가면서 자신을 역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차창으로 반복해서 바라본다. 택시기사는 그런 아키코를 백미러로 바라본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택시기사가 메모지에 적힌 주소와 전화번호의 노인, 타카시를 찾는데 타카시는 건물 2층 자신의 집으로 올라가 창밖으로 택시에서 내리는 아키코를 바라본다. 뒷날 타카시는 대학에 시험 보러 가는 아키코를 자신의 차로 바래다주고 그녀의 남자친구인 노리아키와 아키코가 다투는 모습을 자신의 차 안에서 바라본다.

아키코는 시험을 보러 들어가고 혼자 남아 있던 아키코의 남자친구 노리아키는 타카시의 차를 향해 다가온다. 결국 세 명은 하나의 장면 안에 놓이게 된다. 여기서부터 영화의 분열되어있던 간극,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유리창 사이의 경계가 깨지기 시작한다. 타카시가 스스로 아키코의 할아버지라고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노리아키가 그렇게 오해하자 타카시는 그런 것처럼 거짓 행동을 한다. 영화는 이 시점부터 서로가 유지하고 있던 경계가 깨진다. 사랑에 빠진 그 누군가에 의해 서로가 유지하고 있는 간극, 그 사이의 유리창이 깨진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자국 이란에서만 영화를 찍다가 최근 유럽에서 영화를 만든 이후 일본으로 왔다. 일본 사회 안에 들어가 일본인의 시점으로 보는 동시에 타 문화의 관점에서 거리감을 가지고 바라본다. 마치 일본 사회 내부에서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은 시선과 객관적인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는 시선이 분열되어있는데 그것이 어느 순간 깨진다.

 
그것이 깨진 순간! 그 이후를 감당해야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분열된 동시대인들의 자아의 풍경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개인들 너머 어떤 곳, 미래에 대한 사유를 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