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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희>언어로 사람을 정의하기

알고 있는 것과 실체의 간극을 사유하다

등록일 2013년10월18일 16시2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졸업생 선희(정유미)는 오랜만에 학교를 찾아온다. 최 교수(김상중)를 만나 외국 유학을 가기 위한 추천서를 받기 위함이다. 학교에서 상우(이민우)를 만나는데 그는 최 교수가 출타 중이라 지금 만날 수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돌아가는데 교정에서 우연히 최 교수를 만나 추천서를 부탁하게 된다. 거짓말한 상우로 인해 화가 난 선희는 학교 앞에서 낮술을 마시는데 술집 창밖으로 우연히 옛 남자친구인 문수(이선균)를 보고 불러서 함께 술을 마신다. 문수는 선희와 헤어진 후 선배 재학(정재영)을 불러내 술을 마신다. 영화는 이후 최 교수, 문수, 재학 세 남자와 선희의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세 남자 모였는데 그녀는 없다

최교수는 추천서를 써 달라는 선희에게 솔직하게 써주겠다고 말한다. 선희에게 써 준 추천서의 내용은 대략 내성적이고 또라이 같지만 용기가 있고 안목이 있으며 똑똑하다는 것이다. 이후 문수와 재학, 최 교수는 서로 따로 또는 같이 만났을 때 선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유사한 관점의 이야기를 한다.

 

세 명의 남자는 각각의 일상 안에서 우연히 학교에 돌아온 선희(옛 연인, 학교 후배, 제자)로 인해 작은 파문이 일고 그로 인해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 선희만 없는 채로 창경궁에서 산책한다. 영화는 선희 없이 세 남자의 장면으로 끝난다. 선희는 추천서를 받기 위해 학교에 잠깐 들렀을 뿐이고 옛 연인과 학교 선배와 학과 교수를 만나 술 한 잔씩 하고 학교를 떠나 유학을 준비할 것이다.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세 명의 남자다. 세 남자의 선희에 대한 정의는 놀랍도록 유사하지만 그 정의와 선희라는 실체가 얼마나 유사한지는 알 수 없다. 여기서 이 영화의 제목 우리 선희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 선희는 누구의 선희? 홍상수 영화가 가진 우연의 매력

고유명사 앞에 우리라는 말을 쓰는 대표적인 경우는 자녀나 연인처럼 가깝고 친밀한 경우다. 이런 경우 우리란 말은 화자와 청자의 관계에 의해 두 가지 용례가 있다.

 

첫째는 화자의 선희이기는 하지만 청자의 선희는 아닌 경우다. 이런 경우는 나의 선희가 정확한 표현이지만 한국에선 우리가 공동의 소유격만이 아닌 친밀함의 표현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틀린 어법은 아니다.

 

둘째는 화자의 선희일 뿐만 아니라 청자의 선희인 경우다. 가령 소속감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에서 선희에 대한 애정을 담아 우리 선희란 표현을 할 수 있다.영화 <우리 선희>에서 세 남자는 선희에 대해 각자의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자의 경우다. 각자의 나의 선희다.

 

그런데 이것은 현실이 아니라 영화고, 영화의 관객과 만나는 과정 속에 있기 때문에 역설적인 울림을 가지게 된다. 관객은 세 남자의 선희와 실제 선희 사이의 간극을 바라보면서 자기 자신의 삶 속의 선희(들)와 비교하게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선희가 된다. 하지만 그 우리들의 선희도 실체인 선희가 아닌 관객의 언어로 규정된 또 다른 선희다. 영화를 보며 관객들은 각자의 현실 속의 선희와 실체인 선희 사이의 간극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홍상수의 영화는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미리 정확한 대본을 완성한 후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 장소, 시놉시스만 가지고 현장에서 대본을 만들며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영화들을 보면 놀랍도록 완성도가 있어 그 작업과정이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 선희>에서 감독과 배우들, 그리고 스탭들이 특정한 지정학적 장소에서 우연과 함께 빚어내는 영화적 현실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현실과 만나면서 기묘한 울림을 가진다.

강준상 영상노동자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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