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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화 필 언덕에 잠든 우키시마여, 언젠가는 돌아가리라

<일제 강제징용 조선인노동자 추모행사>를 다녀와서 

등록일 2018년10월17일 13시38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조선아 한국노총 대외협력국장

 

해살무늬 번지는 푸르른 물결의
해당화 필 언덕에 잠든 우키시마여!
짓밟힌 저 바닷가에도
오가는 배들의 돛대에도
너의 외침 소리에 뒤돌아보면
아아 내 고향 그대 살기에
언젠가는 돌아가리라.
죽더라도 혼만큼은 돌아가리라.
오늘도 날아가는 흰 나비에게서
우리 동포의 모습들 보고
떠나는 사람을 사모하며 기도하리, 마이즈루여!
- 해당화 필 언덕에 (はまなすの花さきそめて) 中 

 


해마다 8월 24일, 일본 교토 마이즈루에서는 <우키시마 순난자 위령제>가 개최된다. 마이즈루 주민들이 주최하고, 교토 내 동포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위령제는 43년 전 시작되었으며, 한국의 노동자들이 공식적으로 참여한 지는 불과 5년째이다. 


양대노총은 2014년부터 <일제 강제징용 조선인노동자 합동추모행사>라는 이름으로 위령제에 참가했다. 마이즈루 주민들의 정성어린 마음이야 물론 감사하지만, 우리가 추모하는 이들은 ‘순난자’ 즉 국가·사회·종교상의 위난을 당하여 의로이 죽은 사람이 아닌, 일본 당국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들의 후손인 우리는 ‘순난자’가 아닌 ‘희생자’로 그들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이유이다. 


1945년 8.15해방 직후, 일본에 남겨진 조선인 노동자는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이들은 패전국인 일본과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조선(분단 이전의 조선) 사이의 협상을 통해, 반드시 송환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모든 전후 처리는 유엔을 대표하여 미국이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과거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된 모든 이들에 대한 송환은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그들은 오지 않고 싶어서가 아니라, 고국이 방법을 마련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돌아올 수 없었다.


우키시마號(호) 침몰 사건은 이러한 혼란을 배경으로 한다. 1945년 8월 22~23일, 일본 당국은 각지에 흩어져있던 조선인 노동자 수천 명을 우키시마號(호)에 태워 일본 본섬 북쪽 오미나토 항구에서 출발했다. 생존자에 의하면, 당시 일본군들이 우키시마號(호)가 부산항으로 가는 마지막 배편이라고 하여, 수많은 조선인이 몰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 어떤 기록도 남아있지 않아, 어떤 이는 6,000여 명이 탑승했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무려 10,000명이 넘게 탑승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부산항으로 가야 할 우키시마號(호)는 23일 저녁 돌연 항로를 변경하여 교토 외곽에 있는 마이즈루灣(만) 앞바다에 정박했다가, 24일 새벽 이유를 알 수 없는 폭발에 의해 침몰했다고 한다. 승선했던 조선인 대다수는 사망했고, 침몰했던 우키시마號(호)는 다음해 고철로 팔려갔다. 이로써 누가 승선했는지, 그래서 누가 죽고 누가 살았는지, 폭발의 원인이 대체 무엇인지, 그 어느 것도 밝혀지지 않은 채 사건은 잊혀져 갔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1975년 8월 24일, 우키시마號(호)가 침몰했던 마이즈루의 주민들이 희생된 조선인들의 넋을 기리자는 의미에서 <우키시마 순난자 추모비>를 세우고 추모제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1945년 8월 24일, 파도에 떠밀려온 조선인 사망자들을 수습해주고, 살아남은 조선인들을 보살펴준 마이즈루 주민들에 의해, 우키시마號(호)의 조선인 희생자들은 불행 중 다행으로 다시금 부활했다. 

 


추모제의 하이라이트는 노래 <해당화 필 언덕에>가 합창될 때이다. 일본 동포들이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인 이 노래는 해마다 조선학교 아이들이 참여하여 합창한다. 무더운 날씨, 여름방학 중간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였을 이들을 위해 한 해도 빠짐없이 노래를 불러왔다. 


조선학교는 익히 알다시피, 우리말 우리글 우리문화를 지키려는 4세, 5세 동포들이 다니는 학교이다. 일본은 수많은 외국인 학교에 대한 인가와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유독 조선학교에 대해서만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외면하고 있다. 때문에 조선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일본 사회에서 무학력으로 취급되고, 학교에 대한 정부 지원이 없다보니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동포들은 재정적 압박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해맑다. 자신을 지켜주는 학교라는 울타리에 대한 신뢰, 경쟁자가 아닌 ‘동무’의 관계 속에 아이들은 외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고 해맑게 자란다. 또한 아이들은 자부심이 강하다. 일본 정부와 일본 사회가 아무리 자신들을 배타적으로 대해도, 자신들의 뿌리가 조선이라는 것에 대한 긍지가 매우 높다. 때문에 아이들은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일본인인 듯 살아가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한 길임을 알면서도, 매일 한복을 입고 학교를 간다. 


이렇게 마이즈루에서 희생된 조선인들의 넋은 오늘 조선학교 아이들로 이어진다. 나의 조국은 조선이라는 확고한 정체성, 하나의 공동체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아이들, 이것은 바로 마이즈루에서 희생된 조선인들의 넋이다. 


<일제 강제징용 조선인노동자 합동추모행사>가 5회째를 맞이하며, 나아가 마이즈루灣(만)에 서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 혹독한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연계고리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이 깊어진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조국이 분단과 전쟁이라는 고통과 혼돈을 겪으면서,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는 오도가도 못 하는 방랑자 신세가 되었다. 마이즈루灣(만)에 잠든 조선인 노동자들 역시, 해방된 조국이 자기의 역할을 다했더라면 비참하게 희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조선학교의 아이들 역시 분단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벽 앞에 서 있다. 일본에서 태어난 우리 아이들은 일본인 혹은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제로 선택받고 있으며, 조선인으로써 살아가고자 하는 아이들은 그 조선이 남쪽인지 북쪽인지를 질문 받는다. 이 아이들에게 남쪽인지 북쪽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아이들은 그저 자신의 뿌리가 조선이라는 것, 그리하여 조선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조선이 분단되어, 일본 사회로부터 자신들이 더 큰 핍박을 받고 있음을 아이들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래서 한국 국적을 선택한 아이들도, 북한 국적을 선택한 아이들도, 이제는 없는 다만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한 조선 국적을 선택한 아이들도, 하나의 학교에서 더불어 살며 우리말을 배우고 우리옷을 입는다. 이러한 아이들에게 남과 북을 선택하라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일 뿐이다. 


짧은 만남 속에서의 아이들은 남쪽에서 온 노동자들에게 ‘통일’을 묻는다. 아마 아이들은 북쪽 노동자들에게도 똑같이 질문할 것이다. 갈라진 조국, 이것은 분단 시대에 태어나 분단 시대를 살아온 우리에게 매우 익숙할 수 있으나, 정체성을 질문 받는 동포사회에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질문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 

조선아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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