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재보험은 1964년 7월 1일 시행되어 이제 60년이 되었다. 최초 산재보험은 64개 사업장 근로자 81,798명으로 시작했다. 대기업을 우선 적용하였기에 근무조건이 더 열악하고 재해 발생률이 높은 소규모 사업장을 외면한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이제는 292만 개 사업장의 2천만 명의 근로자가 가입되어 있다.
양적 성장뿐 아니라 가입대상이 되는 근로자를 보아도 임시직, 일용직 노동자, 시간제 아르바이트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는 물론이고, 플랫폼 노동자들도 포함하고 있어, 거의 모든 임금 노동자를 포함해 질적으로도 크게 성장했다.
1995년에는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기준이 처음 만들어져 업무상 질병에 대한 산재 인정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5년 1,120명이었던 업무상 질병자는 2022년 23,134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근로환경이 악화되어서가 아니라, 업무상 질병에 대한 인정 범위와 기준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산재보험이 지난 60년간 양적, 질적으로 크게 성장했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있다. 물론 산재보험의 여러 문제는 서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정된 지면에서 단순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최근에 제기되고 있는 근골격계질환과 요양 기간의 문제를 짚어봄으로써 앞으로 발전 방향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 6월 24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5간담회실에서 열린 ‘산재보험 60주년 평가와 과제 토론회’
우리나라 근골격계질환자 인정 건수가 적은 이유
2022년 우리나라 업무상 근골격계질환자 수는 12,406명인데 반해 산재보험 적용인구가 비슷한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약 5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 숫자는 우리나라보다 약 4배 더 많아 향후 우리나라도 이만큼 증가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시행한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각종 조사를 보면,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작게는 30%에서 많게는 80%에 이르고 있다. 근골격계질환자 수가 캘리포니아주만큼 늘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러면 왜 우리나라 근골격계질환 인정 건수가 적을까? 인정 범위와 기준이 엄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증의 근골격계질환자가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신청 건수가 적어서 그럴 것이다.
우리나라 산재 요양기간 길다는 점의 의미
여기서 산재 환자의 요양 기간을 건강보험과 비교하지 않겠다. 건강보험과 비교하는 것은 비교 방법의 문제와 상병의 중증도 차이, 직장 복귀 문제 등 여러 문제가 있어서 비교가 어렵고 오늘 주제와도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산재 요양기간이 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나라 산재 환자의 대부분은 최소 1개월에서 2년 이상 요양을 하고 있다. 2022년 말 현재 요양기관에서 요양 중인 산재 환자 중 6개월 미만 요양자는 전체의 52.3%였다. 다시 말하면 산재 환자의 47.7%가 6개월 이상 요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산재 환자의 67%가 요양 기간이 4주 미만이었으며, 2주 미만인 경우도 전체의 40%였다. 즉 우리나라 산재 노동자의 요양 기간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재 노동자보다 훨씬 길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재 노동자 전체에 해당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근골격계질환에 대해서도 별 차이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업무상 근골격계질환의 인정기준을 넓히는 것을 논의할 때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 요양 기간이 너무 길어서 섣불리 인정기준을 완화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산재 노동자들의 요양 기간이 긴 것은 인정기준이 너무 엄격해서 증상이 심해진 후에야 인정하기 때문에 요양 기간이 길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노동자들도 업무상 질병 초기에 인정하면 단기간 요양하고 직장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한다.
노동자와 근로복지공단, 사회의 믿음이 필요하다
일부이지만 근골격계질환으로 불필요한 요양 신청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극단적인 사례들을 보면 직장을 퇴직한 지 10년이나 그 이상 경과 한 후에 재직 시절에 근골격계질환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면서 요양 신청을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 직장은 근골격계 업무 부담이 있어 질병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퇴직 후 상당 기간이 경과 한 후에 재직 시 근골격계질환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옳은가? 재직 중 근골격계질환이 발생했다면 재직 시에 산재요양을 받아야 하지 않는가? 의학적으로는 질병을 인정할 수 있지만, 임상적인 의미가 없어 치료가 필요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근골격계 질환이므로 임상적으로 치료의 필요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환자 본인이 아프다고 하면 치료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사례가 흔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정말로 요양이 필요한 근골격계 질환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근골격계질환은 초기에 빨리 치료해서 빨리 직장으로 복귀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이것이 요양기간이 길어져서 인정기준을 엄격하게 가져가거나, 반대로 인정기준이 엄격해서 병세가 중해진 후에야 인정받아 요양기간이 길어진다면 산재 노동자와 산재보험 모두에게 피해가 된다. 노동자는 적시에 치료받지 못해 병을 키우는 문제가 되고, 산재보험은 불필요한 요양비와 휴업급여를 지출하는 문제가 된다.
지금 상황에서 요양기준이 엄격해서 중증만 인정하는 것이 먼저인지, 아니면 요양기간이 긴 것이 먼저인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제라도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선순환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와 근로복지공단이 서로에게 믿음을 가져야 한다. 아프면 언제라도 적시에 치료해 줄 것이라는 근로복지공단에 대한 믿음, 불필요한 요양을 하지 않고, 적절한 치료를 받은 후 빨리 직장에 복귀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는 근골격계질환에 국한한 것은 아니다. 모든 산재에 해당한다.
산재보험 선순환을 위하여
산재보험법의 목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는 것이다. 신속과 공정은 때로는 양립하기 어렵다. 오늘 우리나라의 산재보험이 너무 공정에만 얽매여 신속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때다. 신속하지 못해서 요양기간이 길어지는지, 아니면 불필요한 요양 때문에 더 공정에 집착하게 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산재보험은 사회보험이다. 비록 보험료를 사업주가 부담하지만, 그 원천은 기업이 판매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국민이 구매하는 데서 온다. 산재보험의 목적이 재해근로자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근로자의 재활과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만, 재원을 불필요한 곳에 낭비할 수 없는 이유도 사회보험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산재보험, 근로복지공단의 믿음이 재해노동자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고, 불필요한 낭비를 막을 수 있는 기초가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