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군사 강국이다. 미국의 군사력 평가기관인 <글로벌 파이어 파워>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군사력이 세계 5위에 올라섰을 정도이다. 이는 역대 최고 순위이다. 자체 군사력뿐만 아니라 무기거래도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한국은 2018∼2022년 전 세계 방산 수출 시장에서 9위를 차지했다. 특히 직전 5년(2013∼2017년)보다 무기 수출 규모가 무려 74%나 증가했다.
수출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수입도 크게 늘었다. 2013∼2017년에 비해 2018∼2022년 무기 수입이 61% 늘어 세계 6위를 기록했다. 한국이 이 기간 수입한 무기의 71%는 미국제이다.
정치권의 유일한 한목소리, 무기 수출 강국과 강력한 국방력
주목할 점은 군사력의 비약적인 성장과 무기 수출입의 동반 성장이 문재인 정부 때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공약과 더불어민주당의 2020년 총선 공약을 떠올리게 한다.
2017년 대선 후보 당시 문 전 대통령은 ‘국방비를 GDP 대비 2.4%에서 2.9%로 끌어올리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코로나19 펜데믹과 이에 따른 민생위기에도 불구하고 2020∼2022년 3년 연속 2.8%에 다다랐다. 문재인의 대선 공약 가운데 가장 잘 이행된 것이 국방비 인상이었던 셈이다.
당시여당이었던 민주당도 ‘세계 5위의 군사 강국을 만들겠다’는 걸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올해 순위가 5위이다. 아마도 민주당의 2020년 총선 공약 가운데 유일하게 지켜진 것이 이 부문이 아닌가 한다.
뒤이어 집권한 윤석열 정부도 세계 4위의 무기 수출 강국과 강력한 국방력 건설을 공언하고 있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고 특히 대북정책과 외교 안보 분야에서 남남갈등이 심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자체 군사력 건설과 무기 수출 강국의 꿈은 무언의 초당적인 합의와 국민적인 지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외세에 의해 우리의 운명이 좌우되었던 역사에 대한 피해의식, 핵과 미사일을 나날이 고도화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위협 인식,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되어 노무현·문재인 정부로 변형 전이된 자주국방의 열망, 무기 수출이 한국 경제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 등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군비증강과 무기거래를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극소수에 그치고, 극소수의 목소리는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경우가 다반사다.
무기거래와 무기 산업화의 문제점
그런데 우리가 차분히 따져봐야 할 지점들은 많다. 군사력은 역대 최강인데 우리가 처한 안보는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있다. 대규모 군비증강이 군비경쟁과 안보 딜레마를 격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때이다.
또 2023년 우리 국민 1인당 군사비 부담액은 925달러로 세계평균에 비해 3배 이상 많다. 이러한 정부 예산의 ‘군사화’는 민생위기 완화에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재원의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K-방산’이라는 이름 아래 나날이 늘고 있는 무기 수출 문제 역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한국은 유엔의 무기거래조약(ATT) 가입국이다. 이 조약은 재래식 무기나 그 부품이 집단살해, 인도에 반한 죄, 민간인에 대한 공격, 전쟁 범죄 수행에 사용될 것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면 무기 이전을 불허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무기 수출은 이러한 조항과 저촉되는 경우가 많다. 대이스라엘 무기 수출이 대표적이다. 2013〜2022년 10년간 무기 수출액이 3배 가까이 늘었고 수류탄·지뢰·어뢰·미사일 등으로 공격용 무기가 99%를 차지했다. 한국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전쟁 범죄에 해당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이스라엘을 돕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때이다.
역설적으로 무기의 사용가치는 사용하지 않을 때 극대화된다. 무기가 사용되는 순간 살상과 파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는 무기가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무기의 사용 위협을 통해 상대의 공격을 억제하고 억제가 실패하면 방어와 격퇴를 위해 필요할 수 있다. 그래서 무기는 ‘필요악’이다. 이는 곧 자체 군사력도 강해지고 무기 수출도 많이 하는 게 이익이라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의 관점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무기의 산업화’가 강해지는 추세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방위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 기존의 국가안보 논리뿐만 아니라 경제·고용·수출·지방발전 등의 논리도 강해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방산 업계가 정부나 국회의 예산 및 정책 결정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게 되고 정치인과 정책결정자 역시 이들을 의식하게 된다.
일찍이 ‘전쟁 영웅’으로 불리면서 미국 대통령이 되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1961년 퇴임사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군산복합체의 부당한 영향력’을 경고한 바 있다.
무기 산업의 고용 창출 효과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매우 낮다. 산업연구원의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 국방비가 정부 예산에서 차지한 비중은 10% 수준이었지만 제조업 내 방위 산업 고용 비중은 0.9%에 불과했다. 이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10분 1에도 못 미친다.
또 2015년 미국 정부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같은 비용을 방산 분야에 투자할 때보다 교육 및 보건의료에 투자할 때 고용 창출 효과는 2배 이상으로, 신재생 에너지 및 인프라 분야에 투자할 때에는 40% 이상 고용 창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두 통계는 한국이 방위 산업의 비중을 줄여 교육·보건의료·신재생에너지·인프라 등 공공분야에 투입하면 고용 창출 효과가 상당히 클 것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평화를 위한 기회
앞서 소개한 아이젠하워는 1953년 ‘평화를 위한 기회’라는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역설한 바 있다. 복합위기에 처한 우리에게 여러 시사점을 주는 말이다.
“만들어진 모든 총과, 진수된 모든 전함과, 발사된 모든 로켓은 궁극적으로 굶주려도 먹지 못하고 헐벗어도 입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빼앗은 것입니다. 무기로 가득한 세계가 소모하는 것은 돈만이 아닙니다. 이러한 세계는 노동자의 땀과 과학자의 재능과 어린이의 희망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현대식 중폭격기 1기의 비용은 30개 이상의 도시에 벽돌로 만든 현대식 학교를 세우는 비용과 맞먹습니다. 이 돈이면 6만 명 인구가 사는 도시에 충분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발전소를 2기나 지을 수 있습니다. 이 돈이면 완벽한 설비를 갖춘 병원을 2개나 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축함 1척을 위해 모두 8천 명 이상이 살 수 있는 새 주택에 해당하는 값을 치르고 있습니다. … 국가 간의 건전한 신뢰와 협력 노력을 토대로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는 전쟁 무기가 아니라, 밀과 목화로, 우유와 양털로, 또 고기와 목재와 쌀로 강화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