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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앞의 영화 <서울의 봄>

손시내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등록일 2023년12월06일 09시39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서울의 봄>은 1979년 10월 26일부터 12월 12일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이 영화가 개봉하면서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작품들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돌아보고, 연대순으로 나열해 보는 재미있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기도 하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밀정>(김지운, 2016)과 <동주>(이준익, 2015), 한국전쟁을 다룬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 2004), 1960년대 이후 국내의 굵직한 사건들 혹은 인물을 소재로 택한 <킹메이커>(변성현, 2021), <변호인>(양우석, 2013), <1987>(장준환, 2017) 등 잠깐만 떠올려 봐도 무척 많은 영화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확실히 한국 근현대사는 영화라는 매체에 매혹적 시공간, 그리고 다양한 고민과 통찰을 여러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상의 무대를 제공하는 듯하다. <서울의 봄>은 그중에서도 특히 촘촘한 시간선을 구성하는 <그때 그 사람들>(임상수, 2005), <남산의 부장들>(우민호, 2019), <화려한 휴가>(김지훈, 2007), <택시운전사>(장훈, 2017)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이 영화를 계기로 각각의 작품이 실화를 어떤 방식으로 비슷하고도 다르게 그려내고 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출처 : 다음영화

 

<서울의 봄>은 10·26 사태를 다룬 <그때 그 사람들>과 <남산의 부장들>이 끝난 자리에서 시작한다. <그때 그 사람들>과 <남산의 부장들>은 박정희 정권이 어떻게 끝났는가, 그날 궁정동에서 총성이 울리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가를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각자 다른 방식으로 풀어간다. <서울의 봄>은 그 이후 신군부가 군 세력을 장악하기 위해 모의하고 준비하며 실행을 시작하는 12·12 군사 반란까지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12월 12일 당일에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진압군을 제압하고 권력을 움켜쥘 수 있었는지를 상세한 기록과 영화적 상상으로 그려간다.

 

영화는 영문도 모르고 육군본부에 모인 군인들이 ‘각하 암살’ 소식을 듣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들 사이에는 이태신 소장(정우성)도 있다. 사태 이후 계엄사령관이 된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이성민)은 합동수사본부장으로 활개를 치고 다니는 전두광 보안사령관(황정민)과 그가 주축이 된 군대 내 사조직 하나회를 견제하기 위해 이태신을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임명한다. 다분히 실제 인물을 유추할 수 있는 극 중 이름으로 알 수 있듯, <서울의 봄>은 실제 역사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영화가 행간을 상상하고 사건을 재구성한 결과임을 드러내고 있다.

 

영화는 10월 26일 이후 점점 더 권력을 향한 야욕을 드러내는 전두광, 그를 견제하는 정상호와 이태신의 행보에 초점을 맞추는 전반부와 12월 12일 저녁에 시작된 본격적인 반란의 과정을 분 단위까지 나누어 그려내는 후반부로 구성된다.

 

전반부에서 두드러지는 건 캐릭터의 성격이다. 이태신은 답답할 정도로 원리와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군인, 정치에는 아무 관심도 없고 그저 군인의 본분에 충실한 남자로 그려진다. 이는 육군참모총장 정상호도 비슷하게 공유하는 가치관이다. 혼란스러운 정국에 군은 국토방위라는 본연의 임무에 집중해야 한다고 그는 연설한다. 이들은 기회주의적이고 한편으로는 승부사 기질이 있는 전두광에게 구워 삶아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기는커녕 하나회를 가리켜 “몰려다니는 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며 쓴소리를 하고, 합동수사본부를 해체하고 전두광을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 정도면 많이 왔다”는 노태건(박해준)에게 핀잔을 주며 “나만 믿고 따라오라”고 말하는 전두광은 확실히 불같은 인물로 보인다. 그는 멈출 생각이 없다. 영화는 이처럼 상반되는 인물들의 성격을 구축해 두고, 서울 시내에서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도래했을 때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세밀하게 따라가며 볼 수 있도록 한다.

 

▲출처 : 다음영화
 

영화의 후반부는 10·26 사태와 연관돼 있다는 의혹을 근거로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면서 시작된 12월 12일 그날의 시간을 따라간다. 소식을 듣고 대응에 돌입하는 이태신,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체포를 합법적 절차로 만들고자 하는 전두광, 각자의 병력을 결집하는 반란군과 진압군의 간부들. 이들의 대응과 선택, 행동은 그야말로 촌각을 다투는 것으로 제시된다. 어쩌면 사태가 더 번지기 전에 끝낼 수도 있었는데, 저기서 전두광을 체포할 수도 있었는데, 저 길만 막히지 않았다면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영화의 여러 길목에는 자연스레 ‘만약에’가 깔린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서울의 봄>의 후반부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르 영화의 면모를 지닌다. 상황은 시시각각 바뀌고, 누가 이쪽 편에 설지 확신할 수 없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사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전화선을 타고 흐르는 긴장, 지연되거나 불발되는 전략들, 그 안에서 이뤄지는 비장한 선택 같은 것들이 영화를 촘촘히 채우며 분위기를 만든다.

 

<서울의 봄>은 2시간 넘는 상영시간을 가졌지만, 자리를 떠나지 않고 볼 수 있을 만한 재미있고 흥미로운 대중 영화다. 그간 집중 조명되지 않던 12·12 군사 반란의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드문 기획이기도 하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헌트>를 만들며 이정재 감독은 “잘못된 신념으로 인해 두 주인공이 대립하는 첩보 액션 드라마 장르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1980년대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는데, 이는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대부분 영화에 느슨하게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20세기 대한민국의 특정한 시공간은 엄청난 물량 공세를 기반으로 하는 총격 액션이 가능한 무대를 제공한다.

 

어쩌면 한국 영화는 무대화가 가능한 역사적 시공간을 계속해서 새롭게 찾아내고 그 안에서 스펙터클을 만들어 내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영화들은 그러면서도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어떤 식으로든 언급하는 자의식을 보인다. 대체로 ‘선량하고 무고한 시민’의 존재를 내세우며, 역사적 운동의 복합적 성격을 단순화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말이다.

 


▲출처 : 다음영화

 

<서울의 봄>이 찾은 무대는 귀퉁이까지도 군인들 사이의 대립으로 빈틈없이 채워진다. 애초 여기에 시민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시민 혹은 민중의 다층적 측면을 묘사하는 일에 따르는 곤란이나 부담이 처음부터 최소화되어 있는 셈이다. 물론 이는 12·12의 특징이다. 그러나 그 돌발적 사건의 배경에는 1970년대 후반에 터져 나온 민주화를 향한 민중의 열기가 있었다. 그것을 희미한 조건으로도 삼지 못하는 이 영화의 무대에서는 원칙을 지키는 투철한 군인 정신이 기준이자 조건이 된다.

 

그러나 위법한 일을 저지르지 않고 본분을 지키는 군인 정신이란 과연 무엇일까? 서울을 지킨다는 것, 국가를 지킨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온갖 기준이 흔들리는 혼란스러운 시국에 과연 ‘옳은 일’이란 무엇일까?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사건을 다룬 영화들은 이 질문을 치열하게 던져야 할 자리에서 ‘무고한 시민’이라는 상상적 형상에 다소 안일하게 의지한다.

 

<서울의 봄>이 이태신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제시하는 바른 군인, 책임감 있는 사령관이라는 형상도 그와 비슷하다. 그가 비장하고 멋있는 모습으로 퇴장한 자리에서, 우리는 영화가 붙잡지 않은 복잡한 질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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