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두 번째 세제 개편안이 제출되었다. 그런데 이번 세제 개편안은 ’22년과 달리 비교적 조용히 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국가전략기술 및 신성장원천기술 적용범위 확대(바이오기업 추가)나 해외자원개발기업(배당금 익금불산입 대상 해외자회사 지분율 5%→2% 인하)과 해외건설기업(해외건설자회사 대여금에 대한 대손충당금 손금산입)에 대한 특례 및 가업 승계에 따른 증여세 연부연납기간(5년→20년) 확대와 업종 유지요건(중분류→대분류) 완화, 그리고 용산에서 관심이 있다는 반려동물 진료비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세 및 혼인자금 증여공제(부부 합산 2억) 신설 등 일부 개정안이 단편적 논쟁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이는 다름 아니라 윤석열 정부는 이미 ’22년 세제개편에서 ‘전면적 부자 감세’를 단행하였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전면적 부자 감세’의 문제점
주지하다시피 윤석열 정부는 ’22년 세제개편에서 과세표준 3000억 원 초과 초대형법인에 대한 법인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하고 중견기업 등에 대한 가업 상속 공제한도와 범위를 각각 1000억 원과 매출액 1조 원으로 확대하며, 종합부동산세의 공제금액을 인상하는 등 재벌・대기업과 대자산가 및 고소득자에 대한 대대적인 ‘부자 감세'를 추진하면서, 법인세율 인하에 따른 감세액이 4조 1000억 원에 달하고 중소기업 등에 대한 특례세율 및 가업 상속 확대 등과 종부세 감세액도 각각 2조 3000억 원과 1조 7000억 원으로 총 8조 1000억 원 정도 감세효과가 있을 것이라 주장하였다.
그러나 ’22년 당시 야당과 시민단체는 중산층과 서민이 주로 부담하는 근로소득세의 감세 규모가 약 2조 3000억 원(근로자 1인당 약 12만 6000원)에 불과할 뿐 아니라, Covid19에 따른 경제와 사회의 위기 극복을 위하여는 '대기업+자산가+고소득자에 대한 증세' 및 이를 통해 조달한 재원으로 '중산층(자영업자)+서민(근로자)에 대한 재정지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OECD의 권고안에 부합하지 아니하며, 부자 감세로 인해 세수감소와 재정적자가 커지면 궁극적으로 우리나라 경제와 사회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이유로 윤석열 정부의 세제 개편안에 반대하였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법인세율을 인하(25%→24%)하고 국내외 자회사 배당금에 대한 익금불산입률 인상을 통해 법인세율 인하보다 훨씬 더 큰 감세 혜택을 부여하였으며, 중소・중견기업에 적용되는 가업 상속 등에 대한 연부연납을 15년으로 연장하여 가업 상속 공제한도액 인상보다 더 많은 혜택을 부여하는 등 꼼수 감세를 단행하였다. 특히 종합부동산세의 경우 과세기준을 보유주택의 수에서 가액으로 전환(다주택자 중과세 폐지)하고 세율을 인하하였으며, 기본공제금액도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인상하면서 지방 저가 주택은 종부세 과세대상에서 배제하여 부동산 투기꾼의 지대추구 기제를 더욱 공고히 하기에 이르렀다.
윤석열 정부가 ‘부자 감세’를 강력히 추진하면서 내세운 논리는 MB정부부터 시작된 전가의 보도인 ‘낙수효과’이다. 그렇다면 10년 만에 윤석열 정부에서 단행한 ‘부자 감세’의 결과는 어떠한가? 기재부는 올해 국세 수입을 ’22년 대비 59조 1000억 원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였으나, 8월 국세통계에 따르면 부족한 국세 수입은 이미 47조 6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목별로는 법인세 20조 2000억 원, 소득세 13조 9000억 원, 부가가치세 6조 4000억 원, 관세 2조 8000억 원 등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윤석열 정부는 이에 대하여 부동산 거래 감소로 양도소득세 세수가 감소하고 기업의 영업이익 감소로 법인세 세수도 감소하였으며, 내수침체에 따른 수입 감소 등으로 인해 부가가치세 세수도 감소하였다고 밝히면서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되면서 세수상황도 호전될 것이라는 입장을 내었다.
그러나 이처럼 주요 세목의 세수입이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부담하는 근로소득세 세수입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징수한 근로소득세는 지난해 동기 대비 1000억 원 증가한 약 37조 원으로 집계되었다. 이러한 추세가 유지되면 올해 근로소득세 세수는 전년 대비 1조 원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여, 이는 윤석열 정부의 ‘부자 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을 물가상승에 따른 임금의 자연증가분을 정부에서 근로소득세로 회수해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부족한 세수입의 보전을 위해 노동자에게 ‘보이지 않는 증세’를 하고 있다는 소문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재벌・대기업, 그들만의 ‘낙수효과’
윤석열 정부는 ‘낙수효과’를 주문처럼 외우면서 ‘인디언 기우제’를 지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낙수효과’가 ‘인디언 기우제’가 아니라면 도대체 언제쯤 ‘낙수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하에서 ‘낙수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윤석열 정부가 2022년 세제개편에서 ‘낙수효과’가 흘러갈 수 있는 기제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즉 윤석열 정부는 '부자 감세'를 통해 '투자→성장→세수 증대'의 선순환 구조가 나타나면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고 그 혜택이 중산층과 서민에게도 흘러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사실은 각종 법령의 개정을 통해 중산층과 서민에게 ‘낙수효과’가 전파될 수 있는 기제를 파괴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22년 세제개편 이후 재벌・대기업은 특수관계자와의 내부거래를 통해 시장지배력은 확대하면서 국내 자회사 배당금 익금불산입 규정을 이용하여 법인세를 절감하게 되었으며(법인세법 제18조의2 등), ‘일감 몰아주기 증여의제’가 배제되는 수출거래를 통해 증여세를 절감하면서 해외 자회사에 이익을 몰아줄 수 있게 되었는바(상증세법 제45조의3 등), 이러한 내부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벌・대기업의 초과이윤이 해외 자회사 배당금 익금불산입을 통해 다시 재벌・대기업에 귀속되면서 이른바 그들만의 ‘낙수효과’를 누리게 된 것이다(법인세법 제18조의4 등). 실제로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올해 8월 말까지 190억$(1$ 1350원 기준 약 25조 6500억 원)의 해외 자회사 배당금이 국내에 반입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쯤 되면 윤석열 정부와 기재부가 ‘세제개편’을 빌미로 재벌・대기업만을 위한 ‘조세전략’을 수립해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한편 지난해 공정위에서는 이와 같은 세제개편이 재벌・대기업의 시장지배력이 과도하게 확대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주무관청인 기재부에서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이유로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재벌・대기업과 특수관계가 없는 중소・중견기업은 재벌・대기업과 자회사 간의 내부거래에 참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재벌・대기업 중심 라인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감세에 따른 ‘낙수효과’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 무능한 정부인가 ‘거짓말 정부’인가
최근 영국 등 세계 각국에서는 Covid19 위기 극복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조세정책과 재정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부자 감세를 추진하다가 49일 만에 퇴진한 영국의 트러스 정부에 이어 집권한 수낵 정부는 소득세 최고세율 적용구간 확대 및 자본이득 세액공제 축소 등을 단행하였으며, 법인세 세율을 인상(19%→25%)하였음에도 에너지기업에 대한 횡재세 적용세율을 대폭 인상(25%→35%)하는 등 ‘부자 증세’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도 법인세율과 해외 자회사 배당소득에 대한 감면세율을 인상하고 연간 10억$ 이상 수익을 벌어들이는 대기업에 대해 10년간 약 337조 원을 과세하기로 하는 등 ‘부자 증세’를 추진하고 있으며, 독일 정부도 소득세 과세표준 연간소득 하한선을 인상하고 자녀 공제한도액 인상 및 아동수당 지급 등 중산층과 서민에 대한 조세감면과 조세지출을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들이 ‘부자 증세’로 재정을 조달하여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확장적 재정정책을 집행하고 있으며, ‘서민 감세’를 통해 중산층과 서민에 대한 조세 부담을 줄이고 조세지출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자 감세’ 결과가 재정 파탄과 경기침체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을 정말로 모르고 있다면 매우 무능한 정부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만일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국민을 속여 왔다면 윤석열 정부는 거짓말 정부이거나 재벌・대기업 등 기득권만을 위한 정부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인디언 기우제’에 불과한 ‘낙수효과’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재벌・대기업을 위한 ‘부자 감세’를 고집하는 윤석열 정부는 정말로 무능한 정부인가? 아니면 국민을 기만하는 거짓말 정부인가? 이제 윤석열 정부에서 대답해야 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