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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손잡기

<퀴어 마이 프렌즈>(2023)

등록일 2023년09월04일 16시5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손시내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우리 지옥에서 만나자.” 자못 심각하고 무자비하게 들리지만, 어두운 스릴러 영화나 총칼 든 화려한 장르 영화의 대사는 아니다. 이건 사랑하는 친구 곁에서 카메라를 든 감독이 웃으며 건네는 말이다. 둘은 지금 퀴어문화축제 한복판에 있다. ‘지옥’은 건너편에 진을 친 혐오 세력이 목이 터져라 외치는 단어다. 동성애는 죄악이며, 너희는 지옥에 갈 것이라고, 그들은 소리 지른다. 뭐가 그리 진지하고 절박할까 의문스러운 찰나, 이쪽에 선 감독은 밝게 웃으며 말한다.

 

우리 그럼 지옥에서 만나. 지옥까지 같이 가자. 그런데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은 지켜질까? 서아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퀴어 마이 프렌즈>는 지옥에서도 함께 하자고 약속한 두 친구의 이야기이자, 그들이 함께하기 어려운 순간을 마주하고 관계의 폭을 부수고 넓히는 여정이기도 하다.

 

▲ 퀴어 마이 프렌즈 [출처=다음영화]

 

처음 카메라 앞에 서는 건 감독의 친구 송강원이다. “강원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영화는 번잡한 길거리에 선 강원의 모습을 담는다. 카메라 뒤에서 감독은 말한다. “오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어떨 것 같아?” 강원은 천진하게 답한다. “재밌을 것 같은데?” 이처럼 영화는 호기심과 흥미로 시작해 경쾌하게 나아간다.

 

감독인 아현과 강원은 기독교 대학에서 처음 만나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며 친해진 사이.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의 첫째 딸로 태어나 모범생의 삶을 살다 20살에 뒤늦은 사춘기를 겪었다는 감독에게, 무대에서 누구보다 반짝이며 자신이 원하는 삶이 어떤 건지 잘 아는 것 같은 강원은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강원이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며 한국을 떠나 미국에 가면서, 그리고 그곳에서 ‘커밍아웃’하면서 이들의 관계에는 변화가 생긴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동성애자다” 강원이 SNS에 올린 글은 아현을 혼란에 빠지게 했다. 모태신앙으로 살며, 동성애는 죄라고 배웠는데, 나는 커밍아웃한 내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자기 안으로 깊이 빠지는 대신 감독은 카메라를 든다. 5년 만에 다시 한국에 돌아온 강원과 옛 친구들의 결혼식장을 함께 다니며, 한편으론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커밍아웃에 대한 큰 고민은 없었고, 나의 상태를 나누며 타인과 서로 도움이 되길 바랐으며, 이게 삶과 종교에 그리 특별한 포인트도 아니라고 시원스레 답하는 강원은 여전히 멋지고 본받을 만한 사람처럼, 나의 세계를 넓혀주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즈음 영화는 강원의 미국행이 실은 한국 군대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에서 비롯된 선택이었음을 알려준다. 성소수자라는 존재가 아예 없는 듯한, 색출해서 단죄하고야 말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군대. 그러면서도 한국 남자라면 모두가 가야 한다는 바로 그 군대. 그는 미군에 입대했다.

 

▲ 퀴어 마이 프렌즈 [출처=다음영화]
 

강원이 자기 자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감독은 제자리를 맴도는 듯한 기분으로 답답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현을 진로도 찾지 못하고 결혼도 못했다고 여기는 세상, 어쩌면 또 다른 지옥에서 말이다. 그런 와중에도 감독의 카메라는 강원을 향한다. 결혼하라는 말이 스트레스가 될지언정 결혼이 선택지에 들어올 수조차 없는 처지를 상상하지는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강원과 같이 걷는 친구가 되고 싶다고 아현은 다짐한다.

 

여기까지 <퀴어 마이 프렌즈>는 퀴어 친구와 그 지지자의 근사한 우정 영화처럼 보인다. 어쩌면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자기 존재를 지키는 한 인물과 그 곁에 선 친구의 성장을 담아내는 해피엔딩으로 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퀴어문화축제에서 같이 지옥에 가자고 말하는 감독의 명랑한 목소리와 함께 카메라엔 강원의 복잡미묘한 표정이 들어온다. 옆에 선 사람은 제대로 관찰하지 못했을 얼굴, 그러나 카메라엔 정확히 담긴 그 얼굴은 이후 영화의 행보를 앞서 보여준다.

 

강원은 미국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독일에서 새로운 복무를 시작한다. 감독의 내레이션에 따르면, 그즈음 다큐멘터리는 흐지부지되고 있었고, 자리 자리를 찾아간 듯한 강원과 달리 감독 스스로는 어디에도 섞이지 못해 도망치고 싶은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다. 이 우정의 끝은 여기인 걸까? 그런데 강원에게서 예상치 못한 편지가 도착한다. “나는 요즘 자주 무너지고 운다.” 감독이 보지 못했던, 어쩌면 보려고 하지 않았던 강원의 우울과 어둠이 영화를 물들인다. 사랑하고 아끼는 이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과 그의 행복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욕구는 얼마나 가까우며 또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일까? 친밀한 두 사람의 예쁜 우정을 담아내는 것 같던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그러한 질문을 품기 시작한다.

 

감독은 진심으로 강원이 행복해지기를 바랐을 테지만, 그건 영화의 해피엔딩을 바라는 것과는 다른 말일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 열심히 춤을 추고, 퀴어문화축제 무대에 오르는 드래그 쇼에 댄서로 지원한 강원이 당일 무대에 오르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 그래서 절망과 우울이 더 짙게 화면을 물들였을 때, 영화는 비로소 관계의 다른 장을 탐색하는 모험을 한다.

 

▲ 퀴어 마이 프렌즈 [출처=다음영화]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가장 힘든 순간에는 서로에게 기대기가 어려웠다.” 영화의 후반부, 감독은 고백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찾아가려던 강원의 여정을 응원하며 그 여정이 완성되길 바라며 카메라를 들었지만, 감독은 그 여정의 완성을 찍지 못한다.

 

우리가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우리에게 심은 우울,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게 하는 사회의 조건들, 혐오와 차별 같은 것들은 명랑한 선언과 호기로운 다짐만으로 돌파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흔들리고, 그 흔들림은 어쩔 수 없이 서로의 거리와 격차를 벌린다. 계속 곁에 있어 주고 싶은데, 당신의 어려움을 내게 나눠줬으면 좋겠는데, 슬프게도 같이 있을 때 생기는 괴로움도 명확한 실체가 된다. 누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가도 아무도 없었으면 싶다는 강원의 말은 그의 구체적 슬픔을 전하는 동시에 모든 관계가 필연적으로 갖는 속성도 드러낸다. 우리는 혼자 살기도 어렵고 함께 사는 것도 힘들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이의 그러한 거리를 인정할 때 우리는 정말 ‘우리’가 된다. 영화의 후반부, 더는 옆에 꼭 붙어있지 않은 두 사람이 나누는 우정은 훨씬 단단하고 성숙해 보인다.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강원이 카메라를 들고 아현을 찍을 때, 그리고 그들 사이에 어떤 침묵이 들어설 때, 우리는 그들과 함께 관계의 새로운 장에 들어섰음을 알게 된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난 뒤 듣는 “나에게 너의 세계를 열어줘서 고마워.”라는 말은 깊고 넓은 울림을 전한다. 이 ‘이상한 친구 관계’의 기록 덕에 ‘함께’의 의미는 더 크고 풍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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