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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와 로키타>(2023)

등록일 2023년06월01일 09시51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손시내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아들>(2002), <더 차일드>(2006), <내일을 위한 시간>(2015)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벨기에의 형제 영화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의 <토리와 로키타>는 세부 내용이 대번에 바로 파악되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노동, 난민, 소수자 등 사회적 문제를 줄곧 다뤄오고 있지만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그 주제와 줄거리를 일목요연하게 요약하고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관객은 정확한 이유를 모른 채 흔들리는 카메라를 따라 인물의 뒤를 따라 걸어야 한다.

 

마침내 주인공이 처한 부당하고도 딜레마적인 상황을 마주하고, 그가 놓인 선택의 기로에 함께 서게 될 때까지. 그래서 영화 속 인물이 겪는 문제를 고스란히 우리 자신의 문제처럼 느끼게 될 때까지 말이다. <토리와 로키타>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인 두 인물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장 우리 눈앞에 주어진 것 외에 몇 가지 정보들이 더 필요해 보이지만, 그러한 정보들 대신 상황의 급박함과 북받치는 감정이 관객의 마음을 먼저 두드린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로키타(졸리 음분두)의 얼굴로 영화는 문을 연다.

 

▲ 사진 출처 : 다음영화

 

로키타는 무언가 질문을 잔뜩 받고 있다. 어떤 중학교를 다녔는지, 그곳의 교장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주 어릴 때 헤어진 동생을 어떻게 단번에 알아봤는지, 누군가 로키타에게 묻는 중이다. 대답하기 힘든지 로키타는 공황 증세를 보인다. 사실 지금 그녀는 난민 지위 심사에 합격해 체류증을 받고자 담당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로키타가 받은 질문 속 동생은 토리(파블로 실스). 둘은 아프리카계 이민자 남매로, 몇몇 대사에 따르면 그들은 함께 배를 타고 위험한 여정을 거쳐 벨기에에 도착했다.

그러니까 지금 둘이 던져진 상황은 이렇다. 비교적 어린 토리는 아동학대를 받은 것이 인정돼 먼저 체류증을 발급받았다.

 

문제는 로키타인데, 그녀가 체류증을 얻기 위해서는 토리와 친남매인 것을 증명해야 한다.

심사를 위한 인터뷰는 둘의 기억을 맞춰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기억엔 군데군데 구멍이 있어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도 있는 듯하다.

난처한 일이다. 로키타는 정식 체류증을 받아 가사 도우미로 일하고 싶어 한다. 그래야 고향의 가족에게 돈을 보낼 수 있고, 쉼터를 나가 토리와 함께 살 집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실은 이러한 설명은 조금 사족처럼 느껴질 것이다. 영화는 인터뷰로 곤란해하는 로키타의 얼굴에 잠시 머문 뒤, 바로 로키타와 토리의 위태로운 일상 속으로 뛰어든다. 이들은 쉼터에서 함께 지내며 어느 식당에서 노래 부르고 마약 배달하는 일을 한다.

 

물론 위험해 보이지만, 카메라는 남매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노출돼 있는지 열심히 항변하는 대신 그저 이것이 지금 이들이 살아가야 하는 삶이라고 말하려는 듯 묵묵히 그 뒤를 따른다. 남매는 연약하면서도 단단하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몸짓은 위태롭지만 강하다. 둘은 거의 뗄 수 없는 사이처럼 보인다. 이즈음 중요해지는 건 둘이 정말 친남매인지, 그것을 증명하는 방식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둘 사이에 너무나 끈끈하고 강인한 유대가 있다는 사실이다.

 

거리를 누비며 마약을 판매해야 하고,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를 전속력으로 건너야 하고, 불법 이민 브로커들에게 계속 돈을 갈취당하고, 심지어 성폭력의 위험에 너무나 쉽게 노출되고 마는 이토록 위태로운 세상에서 토리와 로키타는 서로를 단단하게 엮고 전력으로 지킨다.

 


▲ 사진 출처 : 다음영화

 

영화의 무대와 동선, 퍼포먼스를 미리 결정하지 않고 인물을 끊임없이 따라가는 카메라의 활동으로 인해 관객은 토리와 로키타를 계속해서 눈으로 따라가게 된다.

그들이 차에 치일까 봐, 너무 심한 폭력에 노출될까 봐, 모든 것을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관객을 끊이지 않는 긴장감 속에 놓아둔다.

동시에 지금 우리가 스크린을 통해 보고 있는 일들이 실제로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는 감각을 만들어 낸다. 다르덴 형제는 “수년 전 어떤 신문 기사를 읽었다.

 

유럽에 이민 오거나 난민 신청을 한 수백 명의 아이들이 쉼터에 가지도 못하고 떠돌다가 만 18살이 되도록 체류증을 받지 못하면 결국 마약 밀매상 같은 음성적인 조직에 몸담게 된다는 거다. 범죄에 내몰린 아이들이 죽음에 이르러도 아무도 찾지 않는다.”며 영화로 만들게 된 과정에 관해 이야기한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전언이지만, 동시에 우리는 왜 이런 영화가 필요한지 질문할 수도 있다. 실제 사건에 기반을 두고 실제 인물을 따라가듯 촬영된 영화는 “세상의 어둠을 봐야 한다!”는 절절한 외침 외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떤 창작자들은 세상의 참모습을 전하기 위해 고도로 인공적인 창작의 방법론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한 방법을 통해 현실의 모순을 더 정확히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 만들어 내는 효과란 그처럼 다양하다.

 

다르덴 형제는 첫 번째 극영화 <약속>(1996)을 시작으로 인물에게 최대한 카메라를 밀착하고, 관객이 다음 상황을 쉽사리 유추할 수 없는 형식을 유지해 왔다. <토리와 로키타>를 보고 있으면, 그러한 방법이 단순한 현장성 강화를 넘어 인물의 상황에 대한 적극적 비유이기도 하다는 점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인물이 가는 대로 따라가고, 때로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며 인물이 어디로 향하는지 찾아내는 카메라를 따라 숨 가쁘게 영화의 내용을 따라가고 있으면, 이 세계에 과거도 미래도 없다는 사실, 오직 탈출구 없는 현실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처음 로키타에게 던져지는 질문들은 전부 과거를 향한 것이다. 또한, 토리와 로키타는 조금 더 안정된 삶이 있는 미래를 함께 꿈꾼다.

그러나 이 세계는 그런 기회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브로커의 눈을 피하고, 당장 팔아야 할 마약을 처리하는 답답하고도 힘겨운 현재만이 인물을 그리고 관객을 시시각각 덮쳐올 뿐이다.

 

영화는 그렇게 현실의 문제를 일차적 감각으로 바꾸어 전달하고 있다.

 

▲ 사진 출처 : 다음영화
 

로키타는 가짜 체류증이라도 받기 위해 위험하고 불법적인 대마 농장 일을 하러 떠난다. 일이 고된 것보다 토리와 삼 개월가량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그녀를 힘겹게 한다. 이 사태는 물론 로키타를 더 열악한 환경으로 몰아넣는다. 이곳에서도 성적 학대에 직면하고, 더 나아가 목숨까지 위협받게 된다. 그렇다고 여기에 비참한 운명의 그림자만 넘실대는 건 아니다. 놀랍게도 토리는 로키타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높은 벽을 뚫고 들어가 로키타의 이름을 부른다.

이들은 서로의 문을 열고, 서로에게 정확히 답하는 존재다.

 

돌이켜보면 아직 어린 두 아이는 계속해서 세상의 문을 두드리고 질문을 던져왔다. 왜 우리 누나는 체류증을 받지 못하죠? 토리와 이야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우리는 왜 이런 상황에 내던져져야 하죠?

 

누구도 그들을 환대하며 문을 열고 제대로 된 답변을 해주지 않았으나, 가장 낮고 위험한 곳에서 토리와 로키타는 서로의 필요충분한 존재가 되어준다.

물론 영화가 그리는 마지막을 희망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토리와 로키타>는 현실의 문제를 우리에게 덮쳐오는 감각의 문제로 전환한 뒤, 그 세계 안에서 발생하는 깊고 넓은 우정의 작용을 체험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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