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2000년 ‘고령화사회’에 돌입한 지 25년 만에 즉, 2년 뒤인 2025년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OECD는 이러한 속도라면 한국의 부양비는 급속도로 증가해 가장 늙은 국가가 되어 인구재앙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중장기 인력수급전망(2022)에 따르면 25-64세의 인구가 감소 추세인데, 특히 20대의 인구가 2022-2027년에 17% 감소, 2030년까지는 24%까지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앞으로 노동시장의 핵심노동연령층은 40세 이상의 중장년층이 된다. 중고령층 노동력 활용 방안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2013년 정년 60세 의무화가 된 지 겨우 10년이 지났지만, 인구 고령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법정 정년연장은 지체하거나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지난 4월 19일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정년연장과 연령차별 법제도개선' 토론회
고용노동부 제4차 고령자고용촉진기본계획(2023-2027)의 주요 내용과 문제점
고용노동부는 경사노위 고령사회대응연구회(2021.9~2022.2) 권고문과 미래노동시장연구회(2022.7~12) 권고문을 토대로 60세 정년 이후 계속고용제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통하여 올해 말까지 “계속고용로드맵”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계속고용을 위한 사회적 논의 의제로는 ➀정년연장, 정년폐지, 재고용 등을 통한 계속고용방식 ②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과 연계 ③고령자 계속고용과 연계한 임금·직무 등 조정에 대한 법적 근거 ④연금수급연령, 기업의 계속고용 운영실태 등을 고려 ⑤기업규모, 유형별(민간, 공공) 도입 시기 차등 여부 ⑥제도화에 따른 기업의 부담 완화, 근로자에 대한 한시적 지원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부의 계속고용정책 방향을 유추해보면 정년연장을 법제화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노사자율에 맡겨 정년연장, 정년폐지, 재고용 등에서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제하는 식으로 의무화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임금·직무 등 조정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와 연계하여 기업 규모와 공공·민간에 따른 도입 시기 차등을 두고 추진할 방침으로 보인다.
정부의 계속고용 방식은 일본이 현재 도입하고 있는 고용연장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은 법정 정년 연령을 60세로 두고 있다. 이후 60세 이후부터 65세까지는 기업이 고용연장방식(정년연장, 정년폐지, 재고용) 중 하나를 선택하여 고령자를 고용하도록 의무화했고, 일본기업의 76.4%가 비용 절감을 위해 ‘재고용’ 고용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일본의 ‘재고용’ 고용방식은 비정규직 양산으로 이어져 고령자의 노동강도와 고용의 질을 악화시키고, 60대 고령층의 노동조건 저하와 임금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법정 정년연장의 필요성과 방향
한국노총은 지난 4월 19일, 노총회관에서 <초고령사회 대응, 정년연장과 연령차별 법제도개선 토론회>를 개최하고, 인구감소시대와 초고령사회 대응을 위해서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과 연계한 단계적 법정 정년연장’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중장년 노동자의 소득 보호 및 노후 생활 안정을 위한 대책 마련을 위해 법정 정년연장과 연령차별 법·제도 개선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은 “인구감소로 인해 이전 60세 정년 의무화 논의 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많이 달라져 정년연장 논의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60세 정년 법제화 이후 50대 후반 중간 이상에서 고용이 증가한 만큼 정년연장 논의를 통해 60세 이후 고령자의 고용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재민 연구원은 그동안 정년연장과 맞물려 제기되었던 대기업 등 소수 노동자만 혜택을 본다거나 세대 간 고용대체설에 대해서는 정년의무화로 오히려 30인 이상 사업장에서 고용 효과가 컸으며 향후 전개될 인구변화로 볼 때 청년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층이 경제활동을 대체하면서 연령 간 고용 대체효과는 없다고 분석했다.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2022년 진행한 중·고령 노동자 연령차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중·고령 노동자의 경우 퇴직 후 재취업과정에서 모집·채용(54%), 퇴직·해고(20.6%)에서 차별을 겪는 사례가 많다”며, “나이 제한은 모집·채용과 정규직 전환, 기간제 계약 연장 또는 종료, 정리해고 과정에서 나타났으며 청소·경비 등의 일자리에서 나이에 따른 노골적인 배제와 차별을 경험하는 경우가 높다”고 했다. 이주환 부소장은 정년제의 실효성과 고령자의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는 ‘일자리 처우 개선’뿐만 아니라 고령자 고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1991년에 제정된 고령자고용법상 고령자의 정의(제2조), 고령자 고용 노력의무(제12조), 정년퇴직자의 재고용(제21조), 차별금지의 예외(제4조의5) 등 고령자의 고용촉진을 위한 조치 조항이 마련되었지만, 이 차별적 조항으로 오히려 고령자의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구조화하거나 사용자가 직접고용 의무를 회피하여 고용안정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이에 고령자에 대한 차별을 고착화하고 정년제를 무력화하는 관련 법·제도에 대한 개정이 시급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최소한 국민연금 수급연령과 연계해 정년연장 단계적으로 추진되어야
특히 우리나라에서 연금 수급연령과 정년연령의 사이의 ‘무소득·무연금’ 공백으로 은퇴 시 소득절벽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연금제도의 역사가 짧아 2022년 기준 연금의 실질 소득대체율은 22.4%로 2023년 생계급여 최저보장수준에도 못 미친다. 2019년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은 12.2%로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며,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사회보장기능이 취약한 상황에서 노후준비에 대한 개인 부담은 높아지고 개인의 노동을 통해서만이 생계비를 마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고령화 속도를 볼 때 서둘러 국민연금 수급연령과 법정 정년 나이를 연계하는 고용연장 방식을 통해 노후소득을 보호하고 인구감소와 인구 고령화에 적극 대응하여야 한다.
초고령사회와 인구절벽은 정해진 미래이다. 정부도 초고령화사회 대응을 위해 중·고령층 노동력 활용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고령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해소하고 저질의 일자리로 점철된 고령층 고용환경을 바꾸기 위한 대책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