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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자랑>(2023)

등록일 2023년05월09일 15시51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손시내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중년의 여성들이 교복을 입고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있다. 수학여행을 앞두고 학생들이 다 함께 장기자랑을 연습한다는 내용의 연극을 준비하는 것이다. 처음엔 장기자랑에 심드렁했던 아이들은 어느새 호흡을 맞춰 춤을 추고 노래도 한다. 대망의 수학여행 날이 되면 사랑하는 부모님께 정다운 인사를 건네고 제주도로 향할 것이다. 너무 예쁜 제주도의 바다를 눈에 가득 담을 것이다. 그곳에서 신나게 장기자랑도 할 것이다. 이 연극의 제목은 ‘장기자랑’, 2015년에 창단한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세 번째 작품이다.

 

극단 멤버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 그러니까 그날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엄마들로 이뤄져 있다. “잘 다녀와. 엄마가 기도하고 있을게.” 하며 보냈는데, 이제 아이들이 도착하지 못했던 그곳에 가서 아이들이 끝마치지 못한 장기자랑을 무사히 마무리하는 내용의 연극을 하고 있다. <장기자랑>은 극단 노란리본이 연극 ‘장기자랑’을 연습하고 공연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러는 동안 노란리본의 멤버들 이야기, 그들이 2014년 4월 16일 이후 시간을 견디며 살아온 이야기, 노란리본의 시작과 여러 우여곡절에 관한 이야기 등도 영화에 담긴다.

 

▲ 출처 : 다음영화

 
극단의 첫 출발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정신없이 2014년을 보낸 뒤, 이듬해가 되었을 즈음 어떤 엄마들은 집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누군가 불러 모아 커피 내리는 법을 가르쳤다. 수업이 끝나갈 때, 엄마들이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 안 나올까 봐 걱정했던 선생님은 도자기나 연극 같은 다른 수업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래, 연극도 재밌지.” 누가 봐도 진심은 아니었는데, 김태현 연극 연출가는 “세월호 엄마들이 연극을 하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물론 엄마들은 정작 “우리는 처음 듣는 얘기”라며 서먹하다. 누군가는 너무 열심히 하는 연출가에게 미안해서, 누군가는 하다 보니까 재밌어져서 연극을 시작했다. 그렇게 2015년에 첫 공연을 올린 노란리본은 3년간 두 작품을 만들어 전국에서 200여 회의 공연을 했다. 이들에게 공연은 또 하나의 활동이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아 달라고, 우리 아이들을 기억해달라고, 진실을 함께 찾아달라고 당부하기 위한 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영화는 연습과 공연을 거듭하는 극단의 모습을 담는 한편, 각자의 얼굴에도 오래 머문다. 이들이 그날의 기억과 이후의 아픔을 얘기할 땐 보는 이도 절로 눈물이 맺히고, 이들이 자식 자랑을 하며 행복해할 땐 보는 이도 함께 웃음 짓게 된다. 극단에서, 또 영화에서 이들은 이름 대신 ‘누구 엄마’로 불린다. 자식 이름을 한 번이라도 더 불리게 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가만 보고 있으면 이 엄마들은 아이들만큼이나 개성이 뚜렷하고 캐릭터가 분명하다. 스스로 좀 무던한 성격이라 여기는 수인 엄마 김명임 씨는 늘 차분하게 중심을 잡아준다. 극단에서나 영화에서나 마찬가지. 로봇 공학자를 꿈꿨던 아들, 동수 엄마 김도현 씨는 아들이 좋아했던 캐릭터 분장을 하고 무대에 오른다.

 

생존자 부모 중 연극에 참여한 유일한 멤버 애진 엄마 김순덕 씨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말을 전한다. 예진 엄마 박유신 씨는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다는 딸 만큼이나 열정이 넘치고 남들 앞에 서는 걸 즐긴다. 영만 엄마 이미경 씨는 지는 걸 싫어해 남들보다 더 많이 연습한다. 순범 엄마 최지영 씨는 진상규명이 이뤄질 때까지 노란 머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남들보다 늦게 극단에 합류한 윤민 엄마 박혜영 씨는 주인공이 아니라 좋다며 묵묵히 제 역할을 한다.

 


▲ 출처 : 다음영화

 

연극 ‘장기자랑’은 엄마들이 변효진 작가와 진행했던 글짓기 수업에서 출발했다. ‘장기자랑’이라는 단어는 자연스레 아이들의 흔적을 끌어모았다. 제주도에 가서 장기자랑을 하려고, 아이들은 옷도 장만했고 노래도 준비했으니까. 교복 입은 엄마들은 내 아이를 ‘코스프레’하는 느낌으로 연기한다. 랩을 좋아했던 영만처럼 영만 엄마는 무대에서 랩을 한다. 모델이 되고 싶어 했던 순범처럼 순범 엄마는 무대에서 모델이 될 거라고 말한다. “내가 너 대신 무대에 서서 놀아볼게. 그 무대를 밟아볼게.” 엄마들의 마음은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다. 영화에 담긴 극단 모습은 다정하다. 어느 아이가 생일을 맞으면 다 함께 케이크를 사서 촛불을 불고, 쉬는 시간엔 떡볶이를 시켜다가 아이들처럼 나눠 먹는다. 하지만 마냥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해체 위기도 있었다. 다름 아닌 내부의 갈등 때문. 주인공 자리를 두고 신경전이 벌어졌다. 더 비중 있는 배역을 욕심내고, 서로 마음도 상해가면서 다퉜다. 지켜보는 엄마들도 속이 타고 화가 났다. 이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질투하고 토라지는 사람들이라고, 뭐 그리 다를 게 있겠느냐고 영화는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수도 있겠지.”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외부의 시선은 엄마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아이 보내놓고 웃고 떠든다고, 노래하고 춤춘다고, 세상은 잔인한 잣대를 들이밀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때로는 더 멋지게도 살고 싶다. 영화는 이들이 얼마나 다른지, 절박한지, 슬픈지, 어려운지 조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탐나는 배역 때문에 싸우고, 남들이 싸워서 골치 아파하고, 내 맘을 몰라주는 상대에게 서운해하고, 연습이 잘 안되서 한숨 쉬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들. 서로에게 “짱이야! 짱. 대박!”을 연신 외치는 화해는 또 얼마나 쾌활한지. <장기자랑>의 미덕은 영화가 영화 속 인물이나 영화를 보는 관객보다 먼저 울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사람의 매력과 에너지, 연극 활동의 활기, 공동체의 역동성에 먼저 눈길을 주는 태도는 영화에 나오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전혀 다른 시야를 열어”준다. 물론 슬픔과 아픔은 가만히 있어도 파도처럼 밀려온다.

 

교복 입고 무대에 오르고 나면 무대 뒤에선 눈물이 한참 쏟아진다.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만 찾아온다.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광장에 나가 삭발을 해야 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거리를 걸어야 한다. 영화는 모든 말들에 앞서 이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봐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 출처 : 다음영화

 

영화의 후반부는 단원고 공연 결정을 두고 고민하는 멤버들의 시간을 담는다. 교복을 입고 강당에 설 수 있을까, 교복 입은 다른 아이들을 볼 수 있을까, 그 아이들은 과연 우리를 보고 괜찮을까. 우여곡절 끝에 공연을 결정했는데 이번엔 학교에서 반대를 한다. 공연자가 엄마들인 게 결국 문제가 된 모양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또 어느 날의 봄, 노란리본은 드디어 단원고 강당 무대에 선다. 눈물을 참고 공연하고, 무대 아래에서 서로 끌어안는다. 이즈음 우리는 그 오랜 시간 엄마들 곁을 지킨 카메라의 존재를 생각해 보게 된다. 누군가를 혼자 두지 않고 싶은 마음, 누군가의 속 이야기를 더 잘 들어주고 싶은 마음, 누군가의 얼굴에 따뜻한 빛을 비춰주고 싶은 마음이 영화 곳곳에 묻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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