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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장애인 당사자가 바라본 이동권 운동

배상우

등록일 2023년04월06일 10시01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이동권은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

 

“또 지하철 시위야?” “도대체 이동권이 뭔데 저러는 거야?”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운동이 진행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권력과 일부 언론은 이들을 시민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혐오 세력으로 낙인찍고 무차별 폭격을 가하며 이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진짜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운동은 2001년 1월 22일 오이도 휠체어 리프트 추락사고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22년간 계속되고 있다. 장애인은 왜 숱한 억압과 차별을 받으면서도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을까?

 

인간이 살면서 교육, 근로, 문화·여가 활동과 같은 일상생활을 하려면 이동이 필요하다. 이동을 수반하는 활동들은 대부분 인간의 기본권과 관계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제37조에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기본권에는 평등권, 자유권, 사회권, 청구권, 참정권이 포함되는데, 이 중 사회권에서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근로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즉, 법으로 보장되는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이동’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은 지금까지 자유로운 이동을 할 수 없었고, 인간이면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은 적절한 교육과 취업의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고, 이는 경제적 어려움과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해 이동할 수 있는 권리인 이동권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출처=참여와혁신

 

이동권 보장, 어디까지 왔나?

 

이동권 운동의 영향으로 2005년 1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이 제정되어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2007년 4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며 이동 및 교통수단 등에서의 차별이 금지되었다. 이후 저상버스가 늘어나고 대다수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으며, 특별교통수단도 도입되어 22년 전보다 나아졌는데 아직도 이동권 보장을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4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2022~2026)에 따르면 전국 시내버스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21년 기준 30.6% 수준으로 매우 저조한 상황이다. 서울시의 경우 60% 수준으로 전국 평균보다 높지만, 경기(19.2%), 울산(12.1%), 충남(9.9%), 경북(17.3%), 전남(16.8%), 제주(17.8%) 등의 보급률은 10%대로 매우 낮아 지역 간 격차가 심하다. 마을버스(3.9%), 농어촌버스(1.4%), 좌석버스(0%)의 도입률은 시내버스 보다도 매우 처참한 수준이며, 고속·시외버스의 경우 차량개발과 버스 터미널 및 버스 정거장 개선 등의 추가적인 문제도 있어 도입이 더욱 지연되는 상황이다.

 

지하철 역사의 경우 서울시가 2025년까지 엘리베이터 설치를 100% 완료하겠다고 했지만, 이와 관련된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게 편성되어 이마저도 불투명하다.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휠체어 이동 동선에 제약이 있는 역사도 많다. 특히 환승 시 운임구역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진입하거나 아예 역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진입해야 하기도 한다. 일부 역은 대합실과 승강장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무조건 사고 위험이 높은 경사형 리프트를 이용해야 한다.

 

장애인콜택시라고도 불리는 특별교통수단은 대중교통의 사각지대를 메워주는 이동 수단이지만 지역 간 보급률의 격차가 크고 운영방식도 달라 자유로운 이용이 어렵다. 타지역에서 이용과 타지역으로 이동이 어렵고, 휠체어 이용 여부와 무관한 탑승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만성적인 배차 부족으로 특별교통수단 호출 뒤 장시간 대기하거나 배차가 되지 않아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22년간 이동권 운동으로 이동권 보장이 조금씩 확대되고 있지만, 자유롭고 안전한 이동은 아직 어렵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는 곧 차별이 되기 때문에 장애인은 이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이동권 보장을 외칠 수밖에 없다.

 

이동권 보장은 장애인만을 위한 것인가?

 

혹자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이 장애인만을 위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교통약자법에서 정의하는 교통약자에는 장애인뿐 아니라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자, 어린이 등도 포함된다. 2021년 기준 교통약자의 수는 1,551만명으로 전체인구의 30% 수준이며, 이 중 절반이 고령자이다. 저상버스는 장애인은 물론 모든 시민이 승·하차하기 편리하고, 이동권 운동을 통해 설치된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이용자는 장애인 보다 고령자가 더 많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은 더 많은 사람의 편리함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이동권 운동은 장애인만을 위한 운동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운동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동권만 보장해주면 돼? 이동권과 장애인 권리예산

 

‘이동권 보장이 아니라 다른 사업 예산 더 달라하던데?’

 

지하철 시위 현장에 가면 ‘장애인 권리예산’이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장애인 권리예산’은 장애인이 인간답게 사는데 장벽이 되는 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예산을 편성해 기본권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유엔은 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CRPD)으로 여성장애인과 장애아동의 권리보호, 장애인의 이동권과 문화접근권 보장, 교육권과 건강권 및 일할 권리 등 장애인의 전 생활영역에서의 권익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한 한국의 장애인 예산은 2020년 기준 GDP 대비 0.7%로 OECD 평균인 2.0%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는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장애인 권리예산’에는 장애인 활동 지원, 평생교육, 취업 지원, 탈시설 지원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모두 기본권과 관계가 있다. 쉽게 말해,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일하면서,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함께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인 현재 예산만으로는 장애인 권리보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는 장애인권리협약을 이행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노력에 대한 결과가 예산이라면, 정부가 앞장서 장애인 예산이 OECD 평균 수준이 되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 장애인 권리예산이 그 노력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누군가는 당연히 누렸던 권리

 

누군가가 당연하게 누리는 권리가 누군가에겐 죽도록 갈망하고 한 번쯤은 제대로 누려보고 싶은 권리이다. 장애인만을 위한 특별한 정책이 아닌 모두를 위한 정책이 필요할 때이다. 특별교통수단도 마찬가지다. 특별교통수단이 늘어난다고 해도 이동권 문제가 쉽게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특별교통수단이 아닌 일반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탈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일본이나 미국, 영국은 유니버설디자인(Universal Design) 택시를 도입하여 누구나 쉽게 택시에 탈 수 있다.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물리적 장벽도 제거되어야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심리적 장벽도 허물어야 한다. 나아가 법적·제도적 장벽도 제거되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이 시민의 일원으로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함께 살려면 모든 장벽이 모두 없어져야 한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운동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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