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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시작

제4회 난생처음 노동문화제 노동수기 청소년부문 2등 수상작

등록일 2023년03월09일 08시58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이예원

 


 

의자에 앉는다. 컴퓨터를 켠다. 볼펜을 든다. 기다린다.

기다린다. 기다린다. 기다린다.

이 긴 기다림은 전화 소리가 들렸을 때 비로소 끝난다.

“네, 여보세요. 정기후원을 하시겠습니까?”

오늘의 아르바이트는 ‘정기후원 신청받기’이다.

 

방송국에서 특집으로 나가는 불우이웃돕기 방송. 이 방송이 켜져 있는 동안 화면의 끄트머리에는 후원번호가 올라가있다. 이 방송을 본 사람들은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정기후원 신청을 한다. 한 달에 만 원, 단기가 아니라 정기다. 단기 후원은 딱 한 번만 지원하는 것이다. 적은 돈이든 많은 돈이든 딱 한 번만 내면 되니까 사람들은 부담 없이 돈을 낸다.

 

정기는 다르다. 한 달에 한 번씩 꾸준히 돈을 내는 것이다. 지원하는 불우이웃이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 정기후원의 궁극적 목표이다. 단기 후원으로 한 번에 크게 모인 돈을 받는 것보다 정기후원으로 모인 적은 돈을 꾸준히 받는 것이 자립을 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 방송국이 단기 후원보다 정기 후원을 더 선호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문제는 후원자들은 정기보다 단기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한 번만 내면 되는 단기와 다르게 정기는 꾸준히 내야 한다.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꾸준히 내야 한다고 하면 부담스럽다. 당장 앞날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사회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다.

 

단기인 줄 알고 전화했다가 정기라는 걸 알자 갑자기 아무 말도 못 하거나 당황해 끊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도 그 상황과 심정을 이해하기 때문에 독촉하거나 다시 걸지 않는다. 강요도 하지 않는다. ‘후원’이란 강제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웃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야 진정한 후원인 것이다.

 

거대 모반증. 정식 명칭은 ‘선천성 거대 세포 모반 증후군’으로 굉장히 큰 점이 몸 전체에 퍼져 나가는 병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작은 점이 아니다. 아주 큰 점이다. 다들 듣고 있으면 ‘에이, 점이 크면 얼마나 크다고.’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점은 아주 크다. 정말 심한 경우에는 신체 부위가 완전히 새까매진다. 발이 완전히 새까매지거나 등이 검은 점으로 뒤덮인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피부암 발병 확률이 일반인에 비해 10배는 높다는 것이다. 어서 치료해야 하지만 치료비가 없다. 너무 희귀한 병이라 정부가 지원하기도 어렵다.

 

요로감염. 소변이 역류해서 걸리는 병이다. 너무 아픈데다가 혼자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지라 항상 엄마가 도와주고 있지만, 요로감염에 늘 걸려 고생하는 아이가 있다. 돈이 없어서 치료는커녕 당장 먹고 사는 것조차 힘들다. 아빠가 아무리 열심히 돈을 벌어도 돈은 모자라다. 아이는 점점 더 병들어만 간다. 모두 진짜 있는 병이고, 진짜로 앓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그것도 아직 10살도 채 안 된 아이들의 병이었다. 일곱 살, 여섯 살, 다섯 살. 나보다도 훨씬 어린 아이들이 고통 받고 있었다.

 

방송이 시작되기 전, 먼저 사전 교육을 받는다. 주의사항, 절대 후원자들과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 것, 후원자들의 정보를 외부 사람에게 누설하지 말 것, 후원자들이 정기후원을 꺼려해도 강요하지 말 것. 만약 정기후원은 부담스러워도 후원을 하고 싶은 후원자가 전화를 걸어온다면 6개월, 3개월 정기후원을 추천하도록 한다. 방송이 시작되고 일도 시작되었다. 동시에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방송이 나간다고 바로 후원 전화가 걸려오지는 않는다. 방송의 중후반부 쯤 되어서야 전화가 걸려온다.

 

“네, 여보세요. 정기후원을 하시겠습니까?”

말이 없다.

“정기후원을 하시겠습니까?”

“정기후원을 하시겠습니까?”

세 번을 물어도 대답이 없으면 후원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전화를 끊는다. 다시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다른 자리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전화를 받느라 바빴다. 나는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방송이 끝날 때까지 전화는 계속 되었지만, 결국 내가 통화한 정기후원자는 한 명 뿐이었다. 다른 자리에는 좀 더 많아서 다행이었지만, 사실 엄청나게 많은 수준은 아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일이 끝났다. 이 아르바이트는 매일 하는 것이 아니다. 하루에 한 번 3시간 단기 아르바이트다. 또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하면 된다. 아르바이트를 한 사람들은 전화번호를 남기고 간다. 이후에 방송국에서 계속 문자를 보낸다. ‘오늘 단기 아르바이트 하실 분 있나요?’

 

하고 싶은 사람은 신청을 하면 된다. 시급은 만 원, 교통비 삼천 원을 받는다. 은행에 따라 수수료가 조금 나가긴 하지만 시급은 제대로 받을 수 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그 아이들과 후원자에 대한 생각이 났다. 후원은 그렇게 많이 오지 않았다. 그 아이들이 바라는 돈은 생각보다 훨씬 큰돈일 텐데, 과연 도움이 되었을까. 그 아이들이 건강해져야 할 텐데.

 

후원자들은 참 대단하다. 한 평생 만나볼 일도 없을 아이들을 돕기 위해 정기후원을 한다. 한 번 돈을 주는 단기가 아니라 매달 계속 돈을 주는 정기후원 말이다. 나도 어렸을 때 불쌍한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학교에서 하는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꼬박꼬박 냈었지만, 정기후원은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 ‘이 아이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제가 돕겠습니다.’고 나서는 것이다. 무슨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름이 알려지는 것도 아닌데, 그냥 돕고 싶어서 돕는 것이다. 점점 각박해져만 가는 현대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그 날 그 사람들과 아이들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앞으로 더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겠지만 역시 가장 기억에 남고 뜻깊은 아르바이트는 이 아르바이트일 것이다. 나보다도 어리지만 나는 절대 상상할 수도 없을 고통을 받고 있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돕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 그들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 경험. 분명 잊지 못할 것이다. 정기후원으로 들어온 돈은 매달 아이들을 위해 쓰일 것이다. 아이들의 가족들도 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 것이다. 아이들도 분명 언젠가는 건강해질 것이다.

 

그들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순수한 아이들은 언제나 미래를 꿈꾼다. 아이들의 가족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한다. 전국 각지에 있는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아이들을 돕는다. 방송국 관계자들과 복지 재단 사람들은 오늘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세계에 알린다. 세계에서 오는 전화를 오늘 나와 다른 사람들이 연결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 누구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아이들이 건강해질 때까지 아무도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의 행복, 그 아름다운 빛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에서 시작된다. 오늘도 아이들을 돕기 위해 사람들은 일을 시작한다. 노동을 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먹고 살기 위해, 아이와 부모님을 부양하기 위해,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기 위해. 나는 앞으로 더 많은 노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게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이 될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한 노동이 될지,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노동이 될지, 어려운 이들을 돕는 노동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딱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떤 노동이든 간에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굉장히 사소해 보이는 일이더라도, 전혀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이들도, 다른 사람들이 절대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이라도, 분명 누군가의 행복으로 직결될 수 있다.

누군가의 행복. 그것은 누군가의 노동에서 시작된다.

 

# 심사평

- 다소 생소한 불우이웃 성금 교환원 아르바이트의 경험을 통해 노동의 의미, 그리고 그 가치가 어떤 무게감을 갖는지를 잘 표현했습니다.

-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은 누군가의 행복이 될 수 있다는 노동의 가치를 자신의 아르바이트경험과 엮어 잘 서술했습니다.

이예원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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