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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 및 정부 정책 방향의 문제점

이상윤 한국노총 정책2본부 부장

등록일 2023년02월06일 16시32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낯부끄러운 답정너식 연구결과와 정책추진

 

정부는 작년 6월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하면서1) 향후 친자본·반노동 정책추진에 대한 이론적·학술적 근거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출범시켰다. 연구회는 5개월간 연구활동을 토대로 지난해 12월 △노동시간 개혁과제 △임금체계 개혁과제 △추가 주요과제(제안) 등 3가지 개혁과제와 이에 대한 세부과제를 권고했다.

 

연구회는 출범 당시부터 친정부 성향의 학자들로만 구성해 ‘답정너 연구회’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세간의 우려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현실이 되었다. 권고문에서 제시한 개혁과제들은 그동안 사용자단체들의 숙원과제들을 대폭 수용한 기업편향적 내용들이거나 구시대적인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후 고용노동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2023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권고문의 개혁과제들을 구체화시켰다.

 

 

짜고 치는 고스톱도 이렇게 대놓고는 하지 않는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권고문이 정부와 어떤 식의 교감을 통해 발표된 것인지는 합리적 의심 수준을 넘어섰다. 특히 위원회는 권고문에서 노동시간과 임금체계 개혁과제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과정도 생략한 채 입법적·행정적 조치를 조속히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게 과연 연구자들에게서 나올 말인가? 나아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추가 주요과제를 제안하면서 최저임금 차등적용, 파견업종 확대,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 및 사업장점거 제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삭제 등 비정규직 확대를 부추기거나 노동3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 및 정부정책 방향의 문제점

 

1. 문제해결에 대한 접근방식의 오류

 

권고문 및 정부정책 방향에는 노동시장 개혁의 주요배경으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인구구조 변화와 저성장이 초래하는 노동시장 활력 감소, 기술혁명과 산업구조 변화 등 세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권고문 및 정부가 제시한 위 배경들은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해 있는 시대적 과제들인 것은 사실이다. 반면, 해결방안들로 제시한 과제들은 사회구조적 문제들의 해결방안이 아닌 부수적·지엽적 과제들로 이루어져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현재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당장 해결해야 하는 노동시장의 명시적인 문제를 ①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생산 가능 인구 감소, ② 장시간 노동, ③ 고용형태의 다양성에 대한 대응 등 세가지로 판단하고 있다. 반면,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는 정반대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극복을 위해 「표준적 근로관계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이 모델은 ① 불완전 고용 또는 비정규직 고용을 지속적으로 감소시키면서 정규직 고용을 창출하는 것, ② 노동의 기본원칙이나 노동자의 권리보장을 존중하면서 유연성의 확보와 함께 노동자의 적절한 보호를 도모하는 것, ③ 빈곤 퇴치 및 사회적 일체성·사회적 포용 향상을 지향하는 고용정책을 강구하는 것이라고 제시하고 있다.2)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심화, 저출생·고령화, 낮은 고용률, 기후위기 등 복합적 위기상황을 고려한다면,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등 노동법·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 문제, 비정규직 남용 제한 및 처우개선 문제 등에 대한 거시적 전략이 담겨 있어야 한다.

 

한편, 권고문과 정부정책 방향에 따르면 ‘법과 원칙’을 앞세워 ‘노사자치’와 ‘협약자치’ 원칙을 짓뭉개고, 국가권력이 노사관계를 개입하겠다는 것으로 노조때려잡기를 노골화하고 있다. 반면, 국가의 지도·감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임금, 노동시간 등 개별적 노동관계는 ‘법과 원칙’을 뜯어고쳐 정부가 손을 놓겠다는 입장이다. 노조법과 근기법의 입법목적을 정반대로 왜곡하고 해석해 노동개혁을 수행하겠다는 것이 설득력이 있을리 만무하다.

 

 

2. 노동현실과 괴리된 해법

 

1) 노동시간

 

우리나라는 현재 OECD 회원국 중 5번째로 긴 장시간 노동 국가이며, 아직도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연장·휴일·야간노동을 해야만 기본 생계유지가 가능한 ‘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관행’이 현장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개혁과제들은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다.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은 기본적으로 노동시간이 법정노동시간(주40시간) 이하로 안정되고, 연간 노동시간이 OECD 평균수준인 1,700시간대로 단축된 이후에나 도입을 검토해 볼 수 있는 정책이다. 실노동시간 단축이 선행되지 않은 채 독일 등 EU 국가의 노동시간제도와 단순비교해 우리나라 노동시간 제도를 유연화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 오히려 연장노동이 일상화된 우리 현실에서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은 저임금-장시간노동 체제를 고착화시킬 뿐이며, 사용자에게 노동시간 상한 규제를 회피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한편, 권고문 및 정부정책에서는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노사의 자율적 선택권 부여’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노조조직률이 14%에 불과하고 절대다수 사업장의 경우 노동시간에 대한 재량권이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노동자에게 전적으로 노동시간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노사 자율적 선택권 부여’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결국, 노동시간에 대한 사용자의 관리·통제가 확대되어 ‘압축·집중노동’과 ‘장시간 노동’이 결합된 ‘유연 장시간 노동체제’라는 최악의 노동시간 체제가 합법화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임금체계 개편

 

임금체계 개혁과제 내용은 기본적으로 직무성과급은 선이고, 연공급을 악으로 지목하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연공급제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리에 부합하지 않고 기업내부 격차 확대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일부 사실이기는 하지만, 연공급이 아직까지는 우리 노사 관행·문화 고유의 특성이 담긴 임금체계라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연공급을 무조건 폐지해야 한다거나, 직무성과급 등 다른 임금체계가 우월하다는 시각이 아닌 연공성을 완화·보완할 수 있는 임금체계를 상황에 맞게 발굴해야 한다. 지난 30년간 역대 정권들마다 임금체계 개편을 꺼내들었음에도 모두 실패했던 것은 이처럼 임금체계 개편시 연공, 직무, 성과 등 어느 요소를 강조하느냐는 식으로 접근했던 데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합리적 임금정책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① 임금의 사회적 기준과 임금을 결정하는 노사관계 구조 및 관행 개선, ② 고용과 임금수준‧구조‧체계를 종합한 노동시장 정책, ③ 교육, 주거, 의료 등 기본적인 사회안전망 제공과 국가책임 등에 대한 논의가 연계되어야 한다.

 

 

3. 노골적인 기업 편향적 정책 발표

 

권고문에서 추가 주요과제로 제안하고 있는 △파견제도 전반개선 △노동시간 개념 다원화 △노사 불법부당행위 규율, 노동형벌제도 개편 등 노사자치원칙 정착을 위한 법·제도 개선 검토 △노동조합 설립·운영, 단체교섭 구조, 대체근로 사용범위, 사업장 점거제한 등 법·제도 개선 검토 △근로자대표제, 취업규칙 제도 개선방안 검토 등은 종전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사용자단체들이 지속적으로 건의해 왔던 내용들이다.

 

2023년 고용노동부 주요업무 추진계획에서도 ‘노조할 권리 보장’, ‘ILO 기본협약 발효에 따른 국제수준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관련 법·제도 정비 등 후속조치’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오히려 부분 근로자대표제, 취업규칙 제도 개선 등 추가 과제 제안으로 사업장내 노동조건 결정 과정에서 노조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노조와의 단체협약을 우회해 직종별·직군별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노조를 배제하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히 드러나 있다.

 

 

시대착오적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 및 정부정책 방향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는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국가적·시대적 과제가 분명하며, 정부는 이 중차대한 과업을 반드시 해결해야 할 책무가 있다. 하지만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상 개혁과제나 이에 터 잡은 정부정책들은 이러한 엄중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다고 하기에는 민망할 수준의 내용들이다. 예를 들어, 노동시간만 하더라도 단순히 노동시간의 길이 및 배치 등 근시안적 시각으로 접근할 사안이 절대 아니다.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인구 위기, 환경파괴·자원고갈로 인한 기후·에너지 위기, 디지털화로 인한 산업전환과 고용 위기 등 복합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전사회적으로 심도 있는 논의과정을 거쳐서 효과적인 실노동시간 단축정책들이 생산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권고문의 개혁과제들과 정부 정책들은 ‘미래지향적’이기는 커녕 ‘과거회귀적’이나 ‘시대착오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미주>

1)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 대한 자세한 평가 및 문제점에 대해서는 월간 한국노총 기관지 vol.583(2022년 7·8월호 합본)「커버스토리1.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 평가 : 노동시간」참조

2) 표준적 근로관계 모델의 징표로는 ① 노동법이 원칙으로 하는 직접고용, ② 풀타임노동, 또는 그것에 유사한 노동, ③ 근로계약에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 ④ 노동법과 사회보험이 적용되는 고용, ⑤ 근로자의 이익대표시스템에 의해 이익이 대표되는 고용을 제시하고 있음 ; 권오성,‘근로자의 시간주권 확립 및 자기결정권 제고 방안’, 2021. p.20~21.

 

본 글의 자세한 내용은 한국노총 홈페이지 자료실 3529번 문서「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 및 정부정책 방향의 문제점에 대한 한국노총 입장」과 3530번 문서「고용노동부 2023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의 문제점 및 한국노총 입장」에서 확인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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