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노동정세 전개 양상
지난 2022년은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함께 우려되었던 친기업중심의 노사관계 및 노동시장 정책의 밑그림이 형성되고 추진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고용노동부 장관 인선이 끝나자마자 노동시장 개혁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월단위 연장근로시간 관리 △근로시간저축계좌제 △스타트업·전문직 근로시간 적용제외 등 노동시간 개편안 △직무성과급 중심의 임금체계개편 등이 주요 내용이다.
정부는 자신들의 노동시장 개혁방향에 대한 명분을 만들고자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구성했다. 연구회는 주 단위 현행 연장노동시간의 단위를 월·분기·연 단위로 하고, 선택근로 업종제한 폐지, 탄력근로 규제완화 등 11시간 연속휴식시간제만 하면 장시간노동에 문제가 없다는 식의 권고를 했다. 또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최저임금·주휴수당·통상임금 등 임금제도 개편, 파견업무 대상과 기간 조정 등 파견제도 개편, 파업시 대체근로 전면확대, 사업장 점거금지 등 재계가 현 정부에 전달한 ‘노동규제 완화’ 요구를 전적으로 반영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우리나라의 노사관계 근본문제가 집약된 두 차례의 파업 과정에서 노동문제의 잘못된 해법에 재미를 보았다. 첫째는, 우리나라의 원하청구조의 문제, 실질적 권한을 가진 원청사업주가 교섭당사자가 아닌 문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 등이 집약된 대우조선하청지회 파업이었다. 노란봉투법(노조법 제2조, 제3조) 개정 요구의 단초가 되긴 했으나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하고, 작년 11월부터 시작된 손배·가압류 피해노동자들의 단식농성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둘째는 안전운임제 쟁취를 요구하는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파업이다. 이때 사상 초유의 업무개시명령이 두 차례나 발동되었다. 화물연대 파업이 종료되자 정부는 ‘안전운임제 폐지’ 카드까지 꺼냈다. 윤석열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을 계기로 법과 원칙, 노동배제적 강경 대응이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험을 맛보았다. 작년 하반기부터 2023년으로 이어지는 노동정세의 흐름은 ‘노동배제’ 혹은 ‘노조때리기’를 통한 노동개혁의 본격화로 볼 수 있다.
한편, 윤석열 정부는 경제운용 방향에서 ‘3대 개혁(노동·교육·연금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민간중심의 경제활력 제고 및 미래대비 체질개선이란 명분하에 규제혁신과 3대 구조개혁을 핵심 키워드로 제시한 것이다. 기업과 민간이 손쓰기 힘든 대내외적 경제한파가 몰아치는 상황 속에서 윤석열 정부는 노사 당사자를 비롯한 핵심 이해당사자의 사회적 합의와 양보가 필요한 ‘노동·교육·연금개혁’ 과제를 추진하면서 가장 적대적인 프레임을 갖고 접근하고 있다. 대통령까지 앞장서서 편파적인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노조를 부패 세력으로 몰아세우는 등 대화 상대를 혐오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2023년 노-정, 노-사 관계가 역대 최악의 갈등과 대립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 제28대 한국노총 위원장 김동명, 사무총장 류기섭(왼쪽)
주요 노동이슈 및 한국노총의 대응방향
1) 노동시장 개혁추진 본격화
정부는 2023년 노동시장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래노동시장연구회 발표에 이어 대통령까지 나서 노조부패를 기업·공직부패와 함께 척결해야 할 3대 부패로 규정했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2023년 주요 업무보고에서 ‘노동개혁의 완수’를 첫 번째 추진과제로 삼으며, 노사 법치주의를 확립하겠다고 했다. 겉으론 노사 법치주의를 내세우고 있으나 그 실상은 노조때리기식 조사와 감독행위를 하겠다는 것이다. ‘노조 회계 조사, 노조사무실 지원실태 조사, 노동단체 지원사업 전수조사’, ‘노조 가입 등의 강요, 타 노조원에 대한 차별 조치’ 등 정부가 노조에 대해서 먼지 털듯이 일방적인 조사 활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2022년 우리 정부가 비준하고 발효된 ILO 기본협약은 ‘노동조합 설립과 운영에 있어 정부에 의한 어떠한 개입과 방해도 받지 않을 권리’ 즉, 노조의 자율과 자치를 보장해야 할 핵심 원칙으로 하고 있다. 정부가 국내법의 효력을 갖는 국제노동기구(ILO)의 기본협약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노동계를 사회적 대화의 주체이자 동등한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행정기관의 조사권을 남용해 노조 길들이기 정책을 추진한다면, 범민주세력과의 공동연대전선을 구축해 정부의 친자본, 반노조 총공세에 적극 맞설 것이다.
2) 5인 미만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문제 이슈화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제10조에서 “본법은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고 규정해「근로기준법」의 보편적·일반적 적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후 여러 차례 개정으로 입법 취지·목적을 왜곡하고 상시근로자 수를 기준으로 적용 범위를 한정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차별’을 용인하고 노동신분법으로서 기능하게 된 것이다. 5인미만 사업장은 장시간 노동과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임금수준, 임금체불, 가산임금 미지급, 유급연차휴가 미부여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노총은 2020년부터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의 차별 없는 적용’ 입법 활동을 전개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 같은 문제는 주요 정당의 대선공약 사항이 되었다.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차별 없는 근기법 적용, 법정노동시간 적용 사각지대 해소, 1일 11시간 연속휴식권 보장, 야간노동의 엄격한 규제, 포괄임금제 폐지 등의 근로기준법 개정 이슈가 2023년 국회 노동입법의 핵심 현안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3) ILO 핵심협약 이행 이슈와 노조법 전반 개편 논의
2021년 4월 ILO 기본협약중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 제98호 협약 및 강제노동 관련 제29호 협약이 비준절차가 마무리 되었다.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2년부터 한국정부는 ILO 기본협약 비준 당사국으로 본격적인 이행책임을 부담하게 되었다. 특히 2023년은 정부가 비준한 ILO 기본협약에 대한 첫 이행보고서를 ILO에 제출하는 시기이다. 최근 정부는 화물연대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노조 재정에 대한 개입 등 기본협약 위반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는 노사단체의 의견서가 함께 제출된다. 향후 한국노총은 ILO 기본협약에 충실하게 국내 노동법의 개정, 노동기본권 개선, 정부의 부당한 노사관계 개입 해소, 노동행정 관행 개혁을 위한 지속적인 제도개선 활동을 전개할 것이다.
4) 기능 정지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사회적 대화의 정치적 이용 가능성
정부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제기한 중장기 노동개혁 과제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논의를 거치고자 할 것이다. 최근 경사노위의 행보는 정부가 제시한 노동개혁 과제가 노동계 설득이 어려운 내용이라 보고 과거 정권의 보수적 노사정 인사와 학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을 발족했다. 노동계를 배제한 채 자문단 의견만을 바탕으로 노동개혁 과제를 밀어붙이려 들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대다수 노동개혁 과제들은 근로기준법, 파견법, 노조법 개정 사항들로 노동계의 반대와 국회 입법과정에서 여·야간 이견이 큰 사항이다. 입법과정에서 지나친 사회적 갈등은 2023년 총선에서 악재로 작용할 수도, 반대로 노동계 때리기가 여당입장에서 본인들한테 유리하고 볼 수도 있다.
5) 전국민 노후소득보장, 공적 연금개혁의 본격화
윤석열 정부는 연금개혁의 조속한 추진도 예고했다. 국회 연금개혁특위는 연초에 민간전문가위원회의 안을 도출하고, 이해관계자(노사대표 및 지역가입자, 청년, 노인단체 등) 의견수렴, 국민공론화 과정을 거쳐 연금개혁안을 내년 상반기 중에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현 정부는 출범초기부터 재정고갈론, 후세대 부담 등 세대갈등을 조장하며 ‘더 내고 덜 받는’ 공적연금 제도 전반의 후퇴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
한국노총은 공적 연금의 보장성 강화를 위해서 △정치권 중심의 야합이 아닌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공적연금개혁 △명목소득대체율 45% 이상 상향 △공적 연금의 소득대체률 상향과 국고지원 확대를 전제되지 않는 보험료 인상논의 반대 △연금개혁 논의와 연계된 정년연장 실현 등을 목표로 투쟁할 것이다.
6) 모든 일하는 사람을 위한 노동사회적 보호체계 강화
최근 4차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전환 가속화와 ICT 발전에 따른 플랫폼 기반 노동과 프리랜서 등 새로운 노동관계와 노동형태가 다양화 되어 가고 있다. 노동시장 질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노동관계법 적용이 모호해지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노동법은 다양한 기준으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해 왔지만, 현행 노동법체계에서 보호하지 못하거나 배제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새로운 계층에 대한 보호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에 한국노총은 기존 노동법 체계에서 제외되었던 다양한 노동자들까지 포함해서 일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이들의 보편적인 권리보호를 위한 보호 입법의 마련을 요구해 왔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11월, ‘일하는 사람을 위한 권리보장법’ 제정을 위한 법률안을 이수진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과 함께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올해 한국노총은 노동의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입법청원 운동과 함께 캠페인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7) 한국노총 새 지도부의 출범과 노사관계 전개
1월 17일, 한국노총의 새 지도부가 선출되었다. 제28대 한국노총 임원 선거 과정에서도 핵심 이슈는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정책기조에 맞서 한국노총 지도부가 어떠한 대응을 할 것인지 여부였다. 향후 3년간 150만 한국노총 조직을 이끌어 갈 한국노총 지도부는 산적한 문제를 안고 있다.
IMF 이후 사상 초유의 경기침체와 경제위기 상황에 직면한 기업의 구조조정에 맞서 현장 조합원들의 고용과 임금·노동조건을 지켜내야 한다. 현 정부의 노동규제 완화, 노조때리기식 노사법치주의 정책은 위기시 노사협력과 노사상생보다는 경영위기의 책임을 떠넘기거나 인력 감축 중심의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을 야기할 것이다. 이로 인한 노사갈등과 대결이 촉발될 가능성도 크다. 정당한 노조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노조법 개정 문제, 예정된 공무원·교원의 타임오프 논의, 공적연금 개혁 대응 및 정년 연장 등 각종 노동·사회정책 이슈에 대한 정책적 협상도 진행해야 한다.
한국노총은 정부의 일방적이고 노동배제적 노동정책에 맞서 강력히 투쟁할 것이며, 현장 조직을 위한 대정부 협상도 함께 진행할 것이다. 또한 노동단체를 진정한 사회적 대화의 파트너로 존중하는 정치 및 시민사회와의 강력한 연대활동도 전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