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능력주의
장석준 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의 논픽션과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등으로 알려진 김민섭 작가의 픽션을 함께 엮은 독특한 구성의 책이 나왔다. <능력주의, 가장 한국적인 계급 지도/유령들의 패자부활전>은 능력주의의 역사를 돌아보고 그 속에서 한국의 능력주의와 그에 맞선 대안을 그리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능력주의’는 수많은 공정에 대한 논쟁을 비판적으로 돌아볼 중요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양한 능력주의에 대한 고찰 속에서 장석준이 주목한 것은 기존 논의에서 빠져 있었던 능력주의를 둘러싼 여러 사회 집단의 역학이다. 저자는 자본가계급, 중간계급, 노동계급의 서로 다른 생각과 정서, 관행과 선택을 중심으로 지식 중간계급과 이를 견제하는 노동계급의 명암을 통해 한국의 능력주의를 다루고 있다. 한국 사회의 계급 지도로 바라본 능력주의는 지구 자본주의 전반에 나타나는 능력주의 경향의 최첨단이며 공정의 탈을 쓰고 불평등을 강화한다. 뒤이은 김민섭의 단편은 논픽션의 논리들을 픽션으로 구체화하면서 한국적 능력주의의 현실을 더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열림 버튼과 다정함
김민섭은 차오름이라는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을 통해 지식 중간계급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사회관이자 능력주의의 토대를 이루는 계급·계층 사다리로서의 사회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지방대를 배경으로 ‘교수님’이라 불리지만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시간강사, 능력주의 입시경쟁에서 밀려난 대학생 등은 계급의 경계에서 능력주의 세계관의 사다리를 선망하는 동시에 두려워한다.
장석준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능력주의 사회의 모순에서 벗어나는 대안으로 그간 나왔던 교육 개혁안들에 공감하면서도 계급적 해법을 고려하지 않으면 본질적인 해결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저자는 능력 일원론의 대안으로 친절함과 용기, 상상력과 감수성, 공감과 아량을 통해 드러나는 노동계급식 능력 관념인 ‘능력 다원론’을 말한다.
자유로움과 다정함을 통한 다양한 능력을 존중하자는 장석준의 대안은 우리의 현실을 승강기에 비유한 김민섭의 글과도 연결된다. 작가는 능력주의라는 승강기 속에 올라가 바깥에서 누군가 상승 버튼을 눌러주거나 열림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주기만을 바라는 우리에게 승강기 안에 열림 버튼이 있다고 말한다. 스스로 그 열린 버튼을 열고 나올 때, 비로소 능력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책은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