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욱영 한국노총 정책1본부 국장
아프게 태어난 아이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해 11년 7개월을 포토 공정에서 일했던 김수정씨는 임신 4개월차에 아이의 콩팥이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2004년에 한쪽 신장이 없이 태어난 아들은 10년이 지나 콩팥무발생증과 방광요관역류증, 그리고 IgA신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는 2007년 스물셋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의 싸움으로부터 시작됐다. 2014년 황씨가 산재로 사망했다는 걸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고 2018년 삼성전자는 사과와 함께 보상을 약속했다. 그렇게 마무리되는 줄 알았던 직업병 문제는 끝난게 아니라 계속 자라고 있었다. 사실 반도체 노동자들의 생식독성과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는 계속 현안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생리통과 생리불순은 너무 흔해서 큰 문제로 여기지도 않았고 유산과 난임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도 있었으며. 아픈 아이를 낳은 노동자들도 있었다. 반올림에서 수정씨는 자신과 비슷한 시기 삼성반도체를 다녔고, 아픈 자녀를 둔 이들을 만났다. 반올림 활동가들은 수정씨를 비롯한 당사자들에게 산재 신청을 권했다. 2021년 5월 수정씨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 신청을 한다. ‘나는 왜 아프게 태어났어?’라는 아들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하기까지 16년이 걸린 셈이었다.
나의 잘못이 아닌 위험
10년전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이란 책을 통해 ‘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관한 취재를 한 적이 있었던 기록노동자 희정은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에서 다시 당시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반도체 작업 환경이 그들의 수정란, 정자,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생식독성과 2세질환 직업병 문제를 기록으로 남겼다.
생식독성물질에 대한 정보 부족, 아이의 선천성 질병이나 기형을 손쉽게 ‘임산부 잘못’으로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는 문제를 밖으로 드러내 말하기 힘들게 한다. 반도체 노동자 2세 질환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다. 그리고 희정이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였다. 이 문제가 ‘나의 잘못’이 아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020년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제기한 2세 질환 직업병 집단소송 결과가 나오면서 2세 질환 문제의 산재 신청 가능성이 열렸고, 2021년 12월 9일, 일명 ‘태아산재법’이라 불리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개정안을 통해 얻은 것은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는 권한’ 뿐이고, 간호사들도 반도체 2세 질환 직업병 피해자들도 근로복지공단의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반도체공장의 위험성이 이제는 누구나 알만한 일이 되었듯, 2세 질환 직업병 문제 또한 이 사회의 상식이 될 수 있는 출발점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