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소비자와 회사 사이에 낀 상담노동자의 비애

이동철의 상담노트

등록일 2022년12월05일 10시0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고객의 무리한 요구로 노동자가 정신적 고통에 처할 위기에 있는 경우 사업주는 고객과 노동자를 분리조치하는 등 고객의 갑질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가 수차례 고객에게 폭언당해 사업주에게 대응을 요구했는데도 사업주가 제대로 된 노동자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담 사례가 있었다.

나는 해당 업체 사업주에게 법에 따라 폭언을 한 고객으로부터 고객 응대 노동자를 분리조치하고 유급휴가 등을 부여해 정신적으로 안정을 취할 수 있게 조치할 것을 권고했다. 사업주는 당당하게 자신은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해 할 조치를 다 했다”고 답했다. 해당 회사가 취한 상담원 보호조치는 콜센터 안내 음성에 “지금 고객님이 통화하는 상담원은 여러분의 가족일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 메시지를 내보낸 것이었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일터에서 상대적으로 힘이 센 강자는 대체로 약자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객이나 사업주는 고객센터 상담원이나 직원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내뱉는 말이 그들에게 어떠한 비수가 돼 박힐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약관이나 근로계약상 의무를 넘어서는 요구들을 쉽게 한다.

오히려 고객이나 사업주의 무리한 요구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노동자들이 강자를 이해하려 무척이나 애를 쓴다. 고객의 심리에 따른 응대 방안을 교육받고 상처 주는 고객의 말의 심리적 배경을 이해하려 애쓴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상황인가?

종종 이용하는 온라인 구매 사이트에서 배송이나 환불에 문제가 발생한다. 주문하거나 반품한 지가 한참 지났는데 배송이나 환불이 감감무소식이다. 이 경우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면 친절하게 상담원이 전화를 받아 관련 절차를 안내한다.

그런데 이들 상담원이 해당 온라인 구매 사이트가 채용한 직원들이 아닌 사례를 종종 보게 된다. 대부분 불합리한 온라인 구매 사이트의 환불 절차 등에 대해 항의할 경우 많은데 상담원으로서는 온라인 구매 사이트의 환불 규정이 그렇다는 답변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다. 문제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은 고객은 상담원에게 더욱 격렬하게 항의하며 소리 지른다. “책임자 바꿔.”

이럴 때 온라인 구매 사이트의 정규 직원이 짠하고 나타나 “상담원의 능숙하지 못한 상담으로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하다”며 할인쿠폰을 제시한다면, 분노는 눈 녹듯 사라지고 고객은 온라인 구매 사이트 후기에 정규 직원의 차원이 다른 서비스를 칭찬하는 댓글을 달지도 모른다.

그러나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사달’은 불합리한 절차 혹은 고객의 문제 제기에 대해 책임져야 할 온라인 구매 사이트가 쏙 빠지고 외주업체에 상담서비스를 위탁해 ‘상담원’을 고객의 ‘욕받이’로 내세운 결과다.

이렇듯 기업의 비용을 줄이고 서비스업 일자리를 늘린다는 명분으로 해당 사업의 필수 서비스 외주화를 허용한 우리 노동시장의 불합리한 제도는 결과적으로 고객과 회사와의 심각한 의사소통 불편을 초래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고객의 분노를 대신 처리하게 하는 것을 노동의 핵심 내용으로 하는 질 낮은 일자리만 양산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상담업무 담당 감정노동자들은 화장실도 눈치 봐가며 가야 하고 장시간 노동강도에 허덕이면서도 저임금에 시달린다.

고객의 선의나 인식개선만으로 상대적 약자인 감정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호할 수는 없다. 이제는 “지금 여러분이 통화하는 상담원은 여러분의 가족일지 모릅니다”라는 정도의 안내문을 붙여 놓고 고객으로부터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조치를 다했다 하면 안 된다.

단순 상품 안내를 제외한 환불 및 교환, 보상 등과 관련된 상담은 판매 책임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도록 온라인 구매 등에 관련된 소비자 보호조치나 온라인 상품판매 약관 변경을 한다면 어떨까? 소비자와 감정노동자 모두에 이로운 일이 아닐까?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leeseyha@naver.com)
이동철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올려 0 내려 0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인터뷰 이슈 산별 칼럼

토크쇼

포토뉴스

인터뷰

기부뉴스

여러분들의 후원금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듭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