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법적 정년은 60세로 동일하고, 일본은 2012년부터 ‘65세 고용확보조치’를 의무화했다. 그런데 양국 제도나 문구는 일견 유사해도 제도 효과는 차이가 크다.
일본 기업에서의 정년은 실제 60세까지 노동자의 고용보호를 의미한다. 일본 기업의 99%는 ‘65세까지 고용확보조치’를 실시하고 있어 정년 후 계속 근로를 희망하는 노동자는 대부분 재고용된다. [그림1]에 의하면 60세 정년 도달 후 본인이 희망해도 기업이 계속 고용하지 않는 사람은 0.2%에 불과하다. 특히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고령 인력 활용에 적극적이다.
반면, 한국에서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은 49.3세(2022년 5월 통계청 기준)로 법적 정년과 10년 이상 차이가 있다. 직장을 그만둔 사유가 ‘사업 부진, 조업 중단, 휴폐업’(30.9%)과 ‘권고사직, 명예퇴직, 정리해고’(10.9%)로 40% 이상의 노동자가 비자발적 이유로 실업한다. 이처럼 한국은 법적 정년까지 비자발적 사유로 고용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일본 제도 실태와 큰 차이가 있다. 또한 2017년 법시행 이후에도 정년제 자체를 도입하지 않은 중소기업 사업장이 80%에 이르는 등 제도 규범 수준이 낮다.
고령자의 삭감 임금분을 일부 보존해주는 일본의 공적 제도
물론 일본의 60대 노동자의 임금은 60세 시점 대비 평균 63.8% 수준이다. 고령자와 재직자 간 임금 차별이 어느 정도 정당하게 받아들여진다. 다만 60~65세 노동자가 60세 시점과 비교해 임금이 75% 미만인 경우 임금의 일부를 수당으로 보존 받을 수 있다. 노동자의 급격한 생활 하락을 방지하려는 제도이다. 한국 고용보험에 해당하는 예산에서 노동자 개인에게 지급하는 급부이다. 수급 액수는 1995년 제도를 시작할 때는 임금의 25% 수준이었고, 현재는 15%를 받을 수 있다(2025년에 10%로 축소 예정). 일본의 국민연금 수급연령도 정년과 연계돼 단계적 상승이 이루어져, 고령자의 최소생활은 보장된다.
한국은 국민연금 수급연령과 정년연령이 연계되지 않아 퇴직 이후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소득이 없는 ‘소득 크레바스(Income Crevasse)’가 발생한다. 2034년이 되면 전 국민의 수급연령이 65세로 바뀐다. 현재 60세 정년제가 지속되면 국민 전원이 최소 5년의 소득 공백이 발생한다. 한국의 고령 세대는 공적연금은 물론 개인연금을 포함해도 연금소득 자체 비율이 낮고 액수도 적은 편이다. 모든 액수를 합쳐도 150만 원 이상 수령하는 사람은 전체 수령자 중 10.7%에 불과하다.
65세 이상 인구가 받는 연금의 상당 부분도 노령 기초연금이 차지할 정도로, 수령 액수 전반이 낮은 편이다. 연금이 생활안정에 기여하지 못하니 한국고령자는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 후에도 평균 72.3세까지 열악한 일자리에서 근무한다. 전반적으로 일본 60대 이상 노동자의 주수입은 공적연금이고, 한국에 비해 생활이 비교적 안정적이다.
노사가 합의한 ‘정년제도’는 지키는게 당연하다는 일본사용자
물론 일본 고령자정책도 문제점이 많다. 60세까지 법적 정년이 의무지만, 그 이후 65세까지는 ‘계속고용’ 할 의무이다. 기업은 60세가 넘으면 65세까지 고용연장시 3가지 옵션(정년연장, 일단퇴직 후 재고용 등 고용연장, 정년제 폐지)을 선택할 수 있는데, 기업의 8할 이상이 일단 퇴직 후 재고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기업은 인건비 부담을 덜었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고용형태가 불안정하게 되고 임금·노동조건의 하락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주목할 점은 일본에서 법과 정책은 사회적 행위 조율을 돕는 내재적이고 최종적인 기능을 한다는 점이다. 일본 사용자는 정년 연령이나 계속고용 조치에 대해 노사가 합의해 법률까지 제정했으니 지키는 게 당연하다 생각한다. 일본 노동조합 관계자는 법적 정년조차 지키지 않으면 미디어에서 ‘블랙기업’ 등으로 거론해 운영 자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반면 한국은 법제 자체에 구멍이 있거나 사용자가 법을 무시하거나 우회해 제 역할을 못한다. 혹은 제도가 실제로 작동해도 적용 범위가 좁아 노동시장 일부에만 영향을 미친다. 정년제 역시 기업규모별로 시행실태 격차가 크다. 정년연장 논의에 동력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비단 정년제만이 아니라 노동시장 전반에서 법제도의 규범 수준이 낮다.
정년연장 논의는 법제도가 지켜질 수 있는 방안과 기업이 고용 보호 수준을 높여 노동자가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 연령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이 함께 강구되어야 한다.
사회안전망과 정합성 있는 정책설계, 풍부한 논의가 필요
일본 사례에서 참고할 수 있는 교훈은 그들이 어떤 특별한 제도를 도입한 것이 아니란 점이다. 공동체가 고령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목표 아래 노사 간 합의로 개별 사업장 상황에 맞추어 답을 만드는 과정이 장기적·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아울러 국민연금 등 다른 사회안전망 제도가 정년제도와 연계되어 실시되며 제도 효과가 일정하게 발휘될 수 있었다.
개별 기업은 인건비나 고령자 생산성을 고민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 전반의 논의는 조금 달라야 한다. 노동자는 비용이 아니다. 공동체가 고령자의 삶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아울러 파편적 제도 도입이나 개정은 지양해야 한다. 가령 국민연금의 수급연령을 높이며 법적 정년과 맞추지 않은 나라는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국민연금 자체가 은퇴 후 시민의 최소 생활보호가 목적인데,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수급연령을 대책 없이 상향하는 조치는 민주주의 국가일수록 실현되기 어렵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는 당연한 듯 변화가 이루어졌다. 적어도 추후 국민연금 개혁은 정년제도를 비롯해 고령자정책과 포괄적 연계가 필요하다. 이제 정년제 그 이상의 풍부한 정책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