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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4주년을 맞으며

윤정부, 일본 군사 대국화의 길을 스스로 여는 꼴

등록일 2022년11월02일 08시46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조선아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 실장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에 해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위자료 청구권’임을 분명히 하며, 한일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과거 일제의 강제동원 및 강제노동에 대한 불법성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청구가 정당하다는 최초의 판결로써, 그 의미가 크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도대체 왜 한국 정부는 2018년이 되어서야 일제 강제동원․강제노동의 불법성을 인정하게 된 걸까? 손해배상청구의 적용대상을 가르는 ‘한일청구권협정’은 과연 무엇인가?

 


 

최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일·한(한·일) 관계의 기본은 일한(한일)청구권협정”이라며, “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한 이 협정의 취지에 부합하는 대책을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한일청구권협정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다. 일본 자본의 도입을 위해 한일회담을 적극 추진했던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에 체결된 협정으로, 전국민적 반대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계엄령까지 선포하며 체결된 협정이기도 하다. 1965년 6월 한일기본협정을 기본으로 그 부속 성격을 띤 3개의 협정, 즉 한일청구권협정과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 문화재·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을 함께 조인했다.

 

그 중 한일청구권협정은 일본으로부터 3억 달러의 무상자금과 2억달러의 장기저리 정부 차관, 3억 달러 이상의 상업차관을 공여받기로 하고, 한국은 대일 청구권 즉 일제 강점기에 자행된 모든 불법범죄행위에 대한 일체의 청구를 포기하는 것에 합의했다. 이로써 일본의 대표적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의 경우 중국인 징용자들에게 배상을 한 것과 달리, 한국에 대해서는 ‘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한 수백만에 이르는 강제동원·강제노동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회피하고 있었다.

 

한국 정부 역시 이 협정에 발목이 잡혀 과거 일본의 범죄행위에 대한 사죄와 모든 배·보상 문제에 소극적인 입장을 표명하다가, 2018년 일본의 또다른 전범기업인 ‘신일철주금’에 대해 “청구권협정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자금 등은 한국 정부가 국가로서 갖는 청구권과 강제동원 피해 ‘보상’ 문제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되어 있는 것으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과 무관하다”는 즉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정당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판결 직후 일본 고노 다로 외무상은 “국제법에 기초해 한국 정부와 맺은 협정을 한국 대법원이 원하는 아무 때나 뒤집을 수 있다면, 그 어떤 나라도 한국 정부와 일하는게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항의하며, 4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판결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

 

문제의 근원은 두말 할 것 없이, 일본 정부이다. 과거의 범죄행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오히려 과거사 해결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에 외면으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는 어떻게 설명해도 도저히 용서하기 어렵다.

 

그러나 돌아보면, 한국 정부 역시 이 결과를 낳은 주요 원인이다. 경제가 어려웠던 시기, ‘경제부흥’을 앞세워 모든 과거사 문제를 협정문 사인 하나로 덮어버린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분명 또 다른 원인이다. 게다가 이러한 대일정책 노선은 이후 보수 정부로 계승었다. 박근혜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놓고, 일본 정부와 ‘기금’ 설치 방식으로 해결하겠다고 합의했다가, 전 국민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이는 또한 과거 박정희 정권의 ‘한일청구권협정’과 마찬가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또 다른 회피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현 정부 역시 다르지 않다. 지난 8.15 광복절 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관계가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양국의 미래와 시대적 사명을 향해 나아갈 때 과거사 문제도 제대로 해결될 것”이라며, 한일관계를 빠르게 회복, 발전시킬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또한 박진 외교부장관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구체적 배상 건을 진행 중인 대법원에 소위 ‘의견서’를 보내 판결을 지연시킨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써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에 기초해 검토되던 일본 기업의 자산 압류 및 매각은 4년 동안 그 어떤 결과도 얻지 못한 채, 또다시 미뤄지게 되었다.

 

더욱 큰 문제는 바로 한일간 군사협력의 추진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일본군 자위대가 한국땅에 발을 붙이는가 하면, 중국·러시아·북한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공동 군사훈련을 전개하며, 일본 군사대국화의 길을 우리 스스로 열어주고 있는 형편이다. 날로 악화되는 한반도 정세는 말할 것도 없다.

 

역사는 과거의 경험과 교훈을 통해,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나침반이다. 이미 우리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조약1), 1965년 한일기본협정, 2015년 한일일본군‘위안부’합의 등 큰 실책을 반복적으로 범해왔다.

 

더 이상의 실책은 안 된다. 피해자의 고통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일본의 군사대국화 야욕은 더욱 커지고 있으며, 한반도 평화는 갈수록 위태해지고 있다. 가능할까 싶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윤석열 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제발’ 바랄 뿐이다.

 

강제징용노동자像의 눈물

2016년 한국노총은 민주노총과 함께 일본 교토에 있는 ‘단바망간기념관’에 <강제징용노동자像>을 건립했습니다. 단바망간기념관은 일제 시대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하다가 진폐증 선고를 받은 故 이정호씨가 건립한 기념관입니다. 일제시대 조선사람들이 강제노동을 하던 망간광산을 사비로 임대하여, 망치과 끌로 10년을 정비한 끝에 1989년 개관했습니다. 이후 아들인 이용식씨가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운영해 왔으나, 최근 건강이 악화되어 사실상 폐관을 앞두고 있습니다.

단바망간기념관에 서 있는 <강제징용노동자像>은 이제 다른 곳으로 가야 합니다. 강제동원․강제노동의 현실을 고발한, 일본의 유일한 장소였던 단바망간기념관이 이제 문을 닫기 때문입니다. 비단 <강제징용노동자像>의 이동이 문제가 아닙니다. 강제동원·강제노동의 살아있는 증언자, 남아있는 생생한 증거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현실이 개탄스럽습니다. 기댈 곳 없는 이들을, 한국 정부마저 밀어내고 있는 현실이 기막힐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한국노총은 <강제징용노동자像> 이전 문제를 해결하고, 코로나19로 중단되었던 ‘일제 강제징용 조선인노동자 추모행사’를 다시금 재개할 예정입니다. 한국노총 조합원 모두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미주>

1) 샌프란시스코조약은 1951년 일본과 연합국간 평화조약이다. 당시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등이 참여했으며, 일제에 점령당했거나 전쟁을 했던 아시아 국가들(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이 참여했다. 그러나 일제로부터 가장 피해를 많은 받은 남과 북은 ‘교전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초대받지 못했다. 내용상으로도 많은 문제가 지적되어, 우선 전쟁의 책임문제가 명기되지 않았고, 식민지 배상문제가 일절 논의되지 않았으며, 남과 북의 영토에 독도를 포함시키지 않아 현재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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