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혜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변호사
1. 사실관계 및 소송경과
피고는 철강제조업 등을 영위하며 광양제철소를 운영하는 회사이고 원고들은 피고와 협력 작업 계약을 체결한 사내협력업체 소속으로 광양제철소의 압연공정을 수행하는 열연·냉연·도금공장에서 천장크레인·지게차를 이용한 운반 작업, 각종 검사 과정 보조, 공정에서 발생한 폐기물 처리, 완성된 철강제품을 제품창고로 운반 및 출하시까지 창고관리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자들이다. 원고들은 원고들 소속 협력업체와 피고 사이에 체결된 협력작업계약의 실질이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이라고 합니다.)상의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피고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또는 고용의사의 표시를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아 원고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의견을 달리하여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는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한다고 보아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들의 청구를 전부 인용했다. 대법원은 상고심 계속 중 정년이 도래한 일부 원고들에 대하여는 근로자지위 확인의 소를 제기할 확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게 되었다고 보아 각하하고, 나머지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는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한다고 보아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여 원고들의 승소가 확정되었다.
△출처=이미지투데이
2. 대상판결의 파견법상 근로자파견관계의 성립 여부 판단내용
가. 근로자파견관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판례의 기준
구 파견법 제2조 제1호에 의하면, ‘근로자파견’이란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파견계약의 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ㆍ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대법원은 ① 제3자가 당해 근로자에 대하여 직ㆍ간접적으로 그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② 당해 근로자가 제3자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③ 원고용주가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④ 당해 근로자가 맡은 업무가 제3자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구별되며 그러한 업무에 전문성ㆍ기술성이 있는지, ⑤ 원고용주가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의 요소를 근거로 근로관계의 실질이 근로자파견관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한다(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 등 참조).
나. 근로자파견관계의 성립 여부 판단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사안의 경우, ① 원고들은 피고가 제공한 작업표준서 또는 원고들 소속 각 협력업체가 작성하고 피고로부터 정합성 검증을 받은 작업표준서에 따라 작업을 수행했고, ② 전산관리시스템(MES)이 도입된 이후에도 생산과정에 오류가 발생하거나 좌표가 설정되지 않은 장소에서 원고들이 작업해야 하는 경우에는 피고 소속 근로자가 직접 CLTS 화면에 작업내용이 나타나도록 정보를 입력했다. 또한 ③ 원고들이 수행한 크레인 운전 업무는 작업표준에 따라 단순ㆍ반복적으로 이루어졌고 피고의 코일 생산 공정과 연속성ㆍ밀접성을 가지고 있어 원고들과 피고 소속 근로자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협업이 이루어졌으며, ④ 원고들의 크레인 운전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설비와 전산관리시스템은 모두 피고가 소유하고 실질적으로 관리했다. 게다가 ⑤ 원고들 소속 협력업체들에 대한 평가는 원고들이 피고의 업무를 저해하는 행위가 발생할 때마다 점수를 차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협력업체는 대부분의 매출을 피고와의 거래를 통해 달성했다.
대법원은 이와 같은 사실을 인정하고 원고들은 피고가 설정한 방식에 구속되어 공정계획·작업내용에 따라 피고 소속 근로자들과 협력 작업을 수행한 것이며, 협력업체들이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거나 원고들이 피고 소속 근로자들이 맡은 업무와 구분되는 고도의 전문성과 기술을 가지고 근무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보아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파견법상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하였다고 판단했다.
3. 대상판결에 대한 평가
근로자파견은 본래 근로기준법 제9조에서 금지하는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는 행위에 해당하나 법률에 따라 예외적으로 허용이 가능하고, 파견법은 파견근로자의 보호를 위해 일정한 대상업무에만 한정하여 근로자파견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근로자파견을 일정한 요건 하에서만 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업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하여 파견대상업무가 아님에도 사내도급의 형식을 이용하여 도급인으로서 실질적으로 직ㆍ간접적인 지휘ㆍ명령을 하고 수급인의 근로자들을 지속적으로 사용해왔다.
대상판결은 근로자파견관계 성립 여부의 판단기준에 관하여 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 등이 선언한 기존 법리를 재확인하고, 제철소의 철강 제조 공정에서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인 원고들이 수행하는 업무는 도급관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고 피고와 원고들 사이에는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혀 의미가 있다. 대상판결 선고 이후 기업이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 일부를 협력업체에 사내도급 형식을 취하여 근로자들을 사용함으로써 근로자파견의 상용화ㆍ장기화를 방지하고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을 도모할 목적으로 제정된 파견법을 잠탈하려는 시도에 대하여 일정 부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1)
다만 대상판결은 상고심 계속 중 정년이 도래한 일부 원고들에 대하여는 근로자지위 확인의 소를 제기할 확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게 되었다고 보아 소를 각하했는데, 이는 대법원이 상고심 사건이 접수되고 6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선고를 미루어 원고들이 불이익을 입게 된 것이기 때문에 대법원이 더욱 서둘러 심리를 마쳤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미주>
1) 중앙법률원은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제선ㆍ제강ㆍ압연 등 공정에서 MES를 통해 제품 및 폐기물 운반과 관리 및 출하, 시멘트 원료 생산, 시설물 시공ㆍ보수 유지 업무 등을 담당하는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을 대리해 근로자지위확인청구 등 소송을 제기하였고 해당 사건은 현재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2022가합10416호로 소송 계속 중이다. 이후로도 포스코 광양제철소 내지 포항제철소 내 철강 제조 공정에서 근무하는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추가로 제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