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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언제 가야 좋을까

최수빈

등록일 2022년09월01일 13시16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채영이는 대학에서 만난 친구였다. 나와 학번은 같았지만 나이는 두 살 적었다. 나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나에게 있지 않았다. 채영이는 7살 때부터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는 2년 만에 졸업했다. 누구보다 빠르고 바쁘게 살면서 2년을 절약했기 때문일까. 채영이가 시간에 쫓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 애는 항상 여유가 있었다.

 

채영이가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때의 일이다. 고시 준비하느라 힘들 것 같아서 채영이를 불러냈다. 친구로서 밥 한 끼 사주면서 하소연이라도 들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채영이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어쩐지 활기차고 상쾌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쾌활한 고시생으로 사는 채영이의 비결이 궁금했다. 그 비결에 대해 채영이는 이렇게 말했다.

 

“시험에 몇 번 떨어져도 신입 교사 중에서 내가 제일 어릴 걸?”

 


△ 출처 = 이미지투데이

 

떨어져도 괜찮다던 채영이는 단번에 합격했다. 21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22살에 선생님이 된 채영이는 자기 삶에 만족하고 있다. 그 애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좋아한다. 우수 교사로 표창을 받을 만큼 교사 일을 잘하기까지 한다. 퇴근을 하고 나면 그동안 시간이 없고 돈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취미 생활을 마음껏 한다. 안정적인 직장, 인심 좋은 통장 잔고, 만족스러운 커리어에 취미 생활까지. 내년이면 서른인 내가 하나도 해내지 못한 일들. 채영이는 그 모든 것을 서른이 되기 전에 해냈다. 나는 그런 채영이가 늘 부러웠고, 지금도 부럽다.

 

어린 채영이를 부러워하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조기 졸업은 못해도 조기 입학이라도 할 걸 그랬던 사람도 나 하나가 아니었다. 나이가 깡패라는 말의 실사판인 채영이를 모든 동기들이 부러워했다. 그 많던 사람들이 만5세 입학 정책과 채영이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었다면 여론은 달랐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도 만5세 입학 정책에 찬성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채영이가 부럽고 서른의 무게는 버거우니까. 새로운 정책이 발표되기 직전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뜻밖의 만남에서 조기 입학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십 년 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는 매끄럽지 않았다. 한 친구가 기억하는 것을 다른 친구는 다르게 기억했고, 누군가는 기억하는 것을 어떤 이는 기억하지 못했다. 자주 덜컹거렸던 대화가 둑이 터진 것처럼 매끄럽게 흘러간 순간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고등학교 시절을 후회하고 있었다.

 

우리는 어른들 말을 너무 잘 들었던 걸 후회했다. 그때 우리는 선생님과 부모님이 인생에 대한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라고 착각했다.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좋은 인생을 향한 길은 딱 하나였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 좋은 대학에 간다. 그러면 돈과 명예가 따라온다. 어른들의 말만 믿고 우리는 인생의 다양한 가능성을 찾아보지 않았다.

 

또 다른 후회는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때 우리는 멍때리면서 온갖 생각을 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생각할 시간에 차라리 문제를 하나 더 풀었다. 그 결과 우리는 내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로 어른이 되었다. 이제서야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느라 방황하는 중이었다.

 

친구들에게 좀 더 친절하지 못했던 것도 후회였다. 매달 등급이 바뀌는 성적표를 받다 보면 친구가 친구로 보이지 않았다. 내 등수를 빼앗았거나 빼앗을 경쟁자로 보였다. 친구와 마음을 나누는 대신에 경계하며 마음을 감췄다. 우리는 쓸쓸하고 외로운 게 일인 어른이 되고 말았다.

 

친구들과의 대화로 내가 채영이를 부러워했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됐다. 나는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쓸모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살면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다. 채영이는 조기입학과 조기졸업으로 쓸모 없는 공부를 일찍 끝냈다. 가능성 찾기, 자기탐구, 우정처럼 삶에 진짜 도움이 되는 것들을 배울 시간이 다른 사람보다 2년이나 더 생긴 셈이었다. 중요한 건 학교에 일찍 가는 것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울지가 그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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