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6일 발표된 윤석열 정부의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제시된 세제 정책의 핵심은 대기업 감세였다. 법인세의 경우 문재인 정부가 출범 첫해 세법 개정을 통해 과세표준 3천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하고,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인상한 것을 원상 복구시키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과세표준 구간 자체를 없앰으로써 최고세율을 22%로 낮추겠다고 한다. 과세표준 3천억원 이상 구간에 해당되는 기업이 100여 개가 채 안된다는 점에서 최고세율 인하 혜택은 오로지 대기업에게만 돌아갈 것이 분명해 보인다.
법인세 인하 혜택은 대기업에만 해당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투상세) 폐지와 해외 자회사 배당소득 세부담 완화도 직접적으로 대기업을 위한 것들이다. 전자는 문재인 정부가 2018년에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여 투자 확대 및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유도하기 위해서 도입한 세제였다. 후자는 해외에 자회사를 가지고 있을 기업이 대기업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것도 대기업을 위한 감세이다. 그 외에 기업이 반도체·배터리·백신 등에 시설 투자하는 경우 경제안보와 직결되는 국가전략기술이라는 이유를 들어 대기업에도 중견기업과 동일한 세제 혜택을 주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의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은 현재 최고 10%(6∼10%)에서 최고 12%(8∼12%)로 상향된다. 또한 대기업의 이월결손금 공제 한도도 현재 각 사업연도 소득금액의 60%에서 80%로 높일 것이라고 한다. 중소기업은 이미 100%가 적용되고 있는 상태이다.
한편, 기업 상속의 세부담을 완화시켜주는 조치들도 도입하기로 했다. 현재 운용하고 있는 가업상속공제의 경우 적용 대상과 공제 한도를 확대하고 사후 조건을 완화하는 방식을 통해 혜택을 크게 늘릴 예정이다. 또한 현재 100억원인 사전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 한도도 가업상속공제와 같은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가업상속공제 이외에 상속세 납부를 대를 이어 미룰 수 있는 새로운 제도도 도입할 예정이다. 일정 요건을 갖춘 상속인이 가업을 승계 받을 경우 이를 양도·상속·증여하는 시점까지 상속세 납부를 유예해주는 제도이다. 기업은 기존의 가업상속공제와 새로 도입될 상속세 납부 유예 중 유리한 쪽을 선택할 수 있다.
법인세는 실효세율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이러한 법인세 감세조치들은 우리나라의 법인세 세부담이 높으므로 세부담을 낮추면 투자가 늘고 고용이 창출된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얼마나 타당한가? 세부담 수준의 경우 보통 법인세 명목세율 수준과 GDP 대비 법인세 징수액 규모가 OECD 평균보다 높고 크다는 것이 근거로 제시된다. 2020년 기준 법인세 최고세율은 우리나라가 25%, OECD 38개국 평균이 21.5%로 우리나라가 약간 높은 수준이며, 법인세 징수액(GDP대비 규모)은 우리나라는 3.4%, OECD 평균이 2.7%로 역시 우리나라가 많은 수준이다. 법인세율의 경우 지난 20여년 사이 OECD 국가들이 전체적으로 인하 추세를 보여왔고 우리나라도 이를 따라왔으나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법인세 최고세율을 인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인세 부담이 높은가 낮은가는 명목세율이나 징수액 규모가 아니라 실효세율을 기준으로 해서 판단하는 것이 맞다. 기업의 세부담을 덜어주는 비과세감면 제도는 양극화 심화, 형평성과 효율성 훼손 등의 이유로 진보 혹은 보수 정부를 막론하고 꾸준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러한 추세가 법인세 실효세율 흐름에 반영되어 있다. 전체 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 평균은 2014년에 16%이었는데 박근혜 정부의 비과세·감면 축소, 문재인 정부의 최고세율 인상으로 2019년에 19.1%로 상승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경제 활성화 필요성 주장이 제기되면서 고용 없이 투자만 늘려도 세금을 대폭 깎아주는 ‘통합 투자 세액 공제’ 제도가 다시 도입되었다. 그로 인해 이 제도가 적용된 2020년에 법인세 실효세율은 17.5%로 낮아졌다. 과표 3천억원 초과 대기업들은 전체 기업 평균보다 실효세율과 명목세율 격차가 더욱 컸다.
주목할 점은 경기가 악화되고 비과세감면제도가 도입되었는데도 법인세 징수액은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9년 72.2조원이던 법인세 징수액이 2020년에 55.5조 원으로 줄어들긴 했으나 2021년 70.4조원으로 2019년 수준을 단기간에 회복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경기가 위축되었고 정부에서 비과세감면제도를 늘렸는데 법인세 징수액이 줄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로 인해 많은 가계와 기업이 고통을 겪고 있지만 동시에 이익을 누린 기업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 위기는 플랫폼 기업들에게는 도약하는 기회가 되었고 실제로 몇몇 기업들은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감세 정책은 이미 실패로 판명난 정책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반기업적 정책으로 인해 기업들이 크게 위축되었고 그로 인해 투자와 고용에 나서지 않고 있으므로 민간이 주도하는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는 패러다임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은 판단이다. 과거 20년여 동안 법인세 세율이 명목세율이든 실효세율이든 계속해서 낮아지는 상황에서도 투자가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현재 실효세율을 기준으로 한다면 기업이 100을 벌어 80 정도를 가져가는 수준이어서, 소득세 최고세율과 비교한다면 법인세 세율은 투자를 유인할 정도로 충분히 낮은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추가적인 법인세 인하는 투자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는 없으면서 최근의 코로나위기, 에너지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이익을 누리고 있는 기업들에게까지 혜택을 준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이들에게 횡재세, 플랫폼세를 거두어야 할 판에 오히려 이익을 안겨 준다는 것은 현 시점에서 취해야 할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편 기업 투자에 대한 비과세 감면이 고용을 대체하는 기업 투자를 유도해왔다는 점에서 다시금 이를 강화하는 정책들에 대해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전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독 로봇화, 자동화 상위권을 달리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것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법인세와 상속세 완화를 통해 자본에게 더욱 많은 이윤을 확보하게 해 주고 이를 더욱 쉽게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게 해 주면 자본은 투자와 고용을 증가시킬 것이어서 결국 노동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믿는 듯하다. 이러한 믿음으로 대기업들에 막대한 감세 선물을 안겨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책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하에서 이미 실패임이 판명난 바 있다. 당시 감세정책에도 불구하고 경기부진, 세수결손 등으로 보수정부가 금과옥조로 삼는 재정건전성 마저 위협받았다. 현 정부 하에서도 재정 여력의 축소, 그로 인한 복지 축소로 인해 문재인 정부 하에서 이룬 소폭의 복지확대 성과마저 위협하지 않을지 심히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