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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기름처럼

이동철의 상담노트

등록일 2022년07월28일 11시0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왕아무개씨는 60대 재중동포다. 아들과 며느리가 일하지만 대출이자가 올라 자신도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고자 분식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아들 내외를 대신해 손녀를 돌봐야 해 아침 10시에 출근해 5시까지 7시간을 일하기로 하고 매월 180만원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월급날 왕씨의 사용자는 약속한 월급에 한참 모자란 임금을 줬다.

사용자는 왕씨가 지시하는 일을 수행하지 않고 사사건건 그 합리성을 따져 자신의 정신적 고충이 막심하다는 이유로 임금을 감액했다. 답답한 마음은 알겠지만 그런 이유로 약속한 임금을 감액할 수는 없다고 사업주에게 조언했다. 왕씨와 사용자의 분쟁을 보며 문득 재중동포 이주노동자들과 일하는 어머니가 떠올랐다.

40여년을 제주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는 20여년 전 일자리를 찾아 경기도 시흥으로 이주했다. 어머니는 아직도 정든 고향을 떠나 육지로 올라와 처음으로 숙소를 구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어머니가 일하기로 약속한 호텔웨딩홀 근처에 숙소를 구하기 위해 부동산을 통해 방을 알아보러 다니던 중에 아프리카계 이주노동자들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낮에 마주친 그들이 아래층에 떼 지어 살며 밤이면 술을 마시고 울면서 구슬프게 노래를 불렀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싶어 방문을 잠그고도 이중으로 잠금장치를 설치했단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안산과 시흥, 수원 등 경기남부 도시에는 중국인 노동자를 비롯해 이주노동자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와 일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살던 경기도 시흥에도 국가산업단지인 시화공단을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된 신시가지에 이주노동자들이 밀집해 거주했다. 아프리카계 이주노동자들은 제조업에서 주로 일하고, 재중동포 이주노동자들은 식당 등 서비스 업종에 종사했다.

어머니는 주로 중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일하게 됐는데 재중동포인 이들은 다른 이주노동자들에 비해 비자 발급조건이 덜 까다로워 그 수가 많았다. 또한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해 사용자로서도 일을 시키기가 수월했다. 어머니는 웨딩홀이나 컨벤션의 식사음식을 기획하고 만들어 내는 일을 했는데 사용자는 일용직으로 3~4명의 보조 조리담당 노동자를 붙여 줬다. 대부분 중국인 이주노동자들이었는데 어머니는 항상 이들과 일을 같이 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처음에는 “물설고 낯서니까 굽신거리며” 어머니 말을 참 잘들었는데 점차 시간이 지나 사업장에 익숙해지니 자기들끼리 뭉쳐서 어머니의 지시를 잘 듣지 않는다는 불만이었다. 가끔씩 내게 어머니가 중국인 이주노동자들의 단결력 때문에 괴로웠다는 한탄을 할 때 “그게 바로 노동조합의 조직원리”라고 농담을 섞어 웃어넘긴다. 지금은 어머니 나름대로 중국인 이주노동자들과 관계 맺기 기술이 생겨 가끔씩 긴장관계가 형성돼도 잘 풀고 잘 지내신다.

20여년 전 어머니가 아프리카계 이주노동자를 처음 마주하고 느낀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은 안타깝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들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여전히 배척받는다. 자기 권리를 지키기 위해 뭉치는 단결의 본성마저도 ‘중국인이라 드세다’는 근거 없는 편견으로 왜곡됐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소되기는커녕 중국인 혐오감으로 도리어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이다.

중국인 이주노동자들도 이러한 상황을 잘 아는지 자기가 일하는 사업장에서 조금이라도 불편한 사항이 생기면 동포들끼리 네트워크 정보에 따라 사업장을 쉽게 떠난다고 한다. 한국어에 능통해 의사소통에 유리한 만큼 사업주로서도 꾸준히 장기근속을 해 주면 사업장 운영에 보탬이 될 텐데 일을 시킬 만하면 떠난다고 사업주가 난감해하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제도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이던 시기 아마도 우리 사회는 사람이 아니라 일하는 기계가 필요했던 것 같다. 한국이 80년대 후반 이주노동자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부족한 산업 분야의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다. 이주노동자들은 ‘산업연수생’이라는 제도를 통해 한국으로 들어오는데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제약하고 가족을 데려오는 데에도 제한이 크다. 가족을 동반할 경우 저개발 국가 이주노동자의 한국 정주가 가속화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경제적 필요로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이며 노동자의 기본적 욕구는 제한하는 이기적인 제도가 아닐 수 없다. 기계가 필요한데 인간이 온 현실 속에서 경제적 가치 외에 지난 수십년간 우리 사회는 이들의 인간적 가치에 한 번도 주목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 사회의 노골화된 중국인 혐오나 인간의 본성과 노동권을 무시한 이주노동자 규제가 완화되지 않는다면 서로의 경제적 필요에 의해 잠깐은 공존하겠지만 여전히 이주노동자와 우리들은 물과 기름처럼 겉돌 것이다. 서로를 미워하면서.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leeseyha@naver.com)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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