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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입시제도보다 노동의 문제다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등록일 2022년05월24일 16시40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아이를 기르며 우리 교육의 그림자가 노동문제임을 알았다. 부모가 꼭 자녀의 사회적 성공을 바라서 공부에 신경 쓰는 게 아니었다. 한국의 어두운 노동 현실과 마주할수록 아이 성적표에 태연하기 어렵다. 죽고 다치는 현장실습생 소식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한때 ‘기술명장’을 키운다며 ‘마이스터고’도 생겼으나 좋은 변화로 이어졌는지 의문이다.

 

통계청이 지난 3월24일 발표한 ‘2021년 한국의 사회지표’에 의하면 학력별 임금격차는 지난 10년 전보다 더 벌어졌다. 대졸자 평균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중졸 이하는 47.6%, 고졸은 63.3%, 전문대졸은 77%, 대학원졸은 147.1%의 소득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졸자 월급을 300만원으로 가정하면 중졸 이하는 142만8천원, 고졸은 189만9천원, 전문대졸은 231만원, 대학원 졸업자는 441만3000원을 수령한다는 의미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같은 대졸자여도 격차가 엄연하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지영·고영선의 2019년 연구에 의하면 대학서열은 졸업자의 근로생애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148개 대학의 학생을 5분위로 나누어 서열화해 분류한 결과 1분위 학생은 5분위 학생에 비해 노동시장 진입시 14% 높은 임금을 받기 시작해 40~44세가 되면 46.5% 높은 임금을 받을 정도로 차이가 벌어진다. 상위권 대학 출신일수록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정규직으로 일하는 비율도 높아지는 등 일자리 질도 전반적으로 양호하다. 개인 근로능력에 따른 합리적 차이라기보다 ‘학벌’이 노동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줘 ‘차별’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임금 프리미엄’ 등의 용어를 사용해 격차를 측정하는 연구도 있다

더욱이 한국은 유독 일하는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고 그들의 존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문화가 팽배하다. 배달노동자나 대리기사 같은 플랫폼 노동자가 토로하는 어려움은 안전이나 소득만이 아니다. 제도개선보다 동료 시민에게 느끼는 모욕이나 하대, 직업적 편견이 변화하길 희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소득이 높고 기술·전문적 일을 해도 공무원 같은 화이트칼라가 낫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엄연하다. 지금처럼 타인의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에서 부모 개인이 아이에게 일단 입시경쟁에서 최대한 승리해야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다그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리라.

입시보다 대안교육을 고민할 수 있으나 이사 등 가족 전체 삶의 기반을 바꾸지 않으면 접근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교육공동체 유지를 위해 적지 않은 학비를 내고 시간과 열정을 쏟아야 하는 탓에 평범한 부모들이 선택하려면 상당한 각오가 필요하다. 물론 부모 개인이 초등학생 때만큼은 입시공부만 강조하지 않으려 노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평범한 동네에 살아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업량도 많아지고 공교육만으로 진도를 따라가기 버거워진다. 많은 교육전문가는 과거보다 공교육 자체 난도가 높아졌고, 아이들은 더 많은 학습량을 감당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선별을 위해 어릴 때부터 어려운 내용을 익히는 경쟁이 격화됐을 뿐 막상 대학생의 학업성취도가 향상되지는 않았다는 평가도 공통된다.

한국의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국 중 수년간 최하위고 청소년 사망의 첫 번째 원인은 자살이다. 아무리 물질적 풍요로움과 기술적 혜택이 커졌다고 해도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성장기를 보낼 수 없는데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수차례 개편을 경험하며 입시나 몇 가지 제도를 이식한다고 해서 변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입시경쟁은 노동시장의 심각한 불평등이 완화되고, 대다수 일하는 사람의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가 돼야 해결에 다가설 수 있다. 직업이 무엇이든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가지고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는 한 부모 개인의 합리적 선택지는 조금 나은 학력·학벌 자본을 만들어 주는 길이다. 많은 노동자가 소득의 상당 부분을 사교육비로 지출하는 이유다. 노동조합이 포괄적·장기적 제도개선보다 단기적 임금교섭에 매달리는 문제도 조합원이 당장 지불할 교육비가 늘어나는 현실과 연관된다.

공정과 개혁을 주장하던 인사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여러 방법으로 아이 입시를 도운 사실이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이유는, 적어도 통치 엘리트는 이 구조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지 고민할 것이라는 믿음을 저버려서다. 정치가 선거 때만 큰 장밋빛 슬로건만 내세우기보다 사회의 중대한 문제를 지속해서 논의하면 좋겠다. 이제 교육전문가만이 아니라 노동문제를 다루는 이들이 교육문제를 적극 이야기해 함께 해법을 모색할 때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넌 어때?' 코너에 공동 연재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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