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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두려운 청년들

최수빈

등록일 2022년05월09일 10시14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청년들에게 5월은 잔인한 달이다. 4월 말이면 상반기 공채 일정이 거의 끝난다. 4월 내내 수없이 불합격한 청년들은 몸과 마음이 망신창이가 된 채로 5월을 맞는다. 제대로 된 시작조차 하지 못한 청년들은 절정을 맞은 봄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지 못한다. 봄이 화려할수록 청년들은 자꾸만 주눅이 든다. 그 어느 때보다 휴식과 회복이 필요한 청년들이지만 5월은 그걸 절대 허락하는 법이 없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는 이름 아래 그렇지 않아도 이미 황폐해진 청년들을 탐관오리처럼 수탈한다.

 

다른 달보다 휴일이 두 배 많은 5월엔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일 날도 두 배로 늘어난다.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가족들은 거리감과 어색함 때문에 속 깊은 대화는 주고 받지 못한다. 이런 사이에서 가장 만만한 대화거리는 근황이다. 근황 이야기엔 과정은 없고 결과만 있다. 모든 과정 속에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말일 뿐만 아니라 듣는 이에게 시간적, 심적으로 큰 부담을 지운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재회의 기쁨이 사라진 찰나에 기다렸다는 듯 앉은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근황을 말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언제나 근황 토크를 주도하는 것은 어른들이다. 어버이날이 있는 5월은 어른들의 달이기도 하다. 반면에 누군가의 어버이가 될 만큼 나이가 많지도 않고, 어린이로 인정 받기엔 나이가 너무 많은 청년들은 5월에 설 자리가 없다.

 

명절에 어른들이 근황을 묻는 건 꼰대의 잔소리로 치부할 수 있어도, 어버이날이 있는 5월에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나를 오랜 세월 길러주고 보살펴준 어버이를 어버이날에 꼰대로 모는 것은 왠지 큰 불효를 저지르는 것 같아서다. 특히 물질적인 효도를 하기가 어려운 청년일수록 느끼는 죄책감이 크다. 청년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근황을 묻는 어른들에게 보잘 것 없는 근황을 보고한다. 보고를 마치면 청년들의 목은 곧 참수형을 앞둔 사람의 것처럼 숙여진다. 안 그래도 자기소개서 쓰고, 공부하느라 거북목이 되어버린 청년들의 목은 5월엔 더 뻐근해진다.

 

5월은 청년들의 얄팍한 지갑마저 도둑질해가는 달이기도 하다. 취업 경쟁도 치열해 죽을 것 같은데 효도 경쟁도 못지 않게 치열하다. 너도 나도 자신이 이번 어버이날에 얼마나 좋은 선물을 샀는지 포스팅한다. 부모들도 카카오톡 스토리에서 받은 선물을 은근히 자랑한다. 케이크 안에서 오만 원권이 줄줄이 나오는 영상을 보고 있으면 자괴감이 느껴진다. 우리 부모님은 어쩌다가 나 같은 딸을 만나서 어버이날에 속이 텅 빈 싸구려 케이크를 받는가 싶다.

 

‘내 친구는 이번에 딸이 차를 사줬다더라’ 하는 식으로 부모가 은근히 자식의 변변치 못함을 탓하면,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한 청년들은 오기를 부리기 시작한다. 취업 경쟁에서는 실패했어도 효도 경쟁에서는 지지 말자는 생각으로 가진 돈을 탈탈 털어 분에 넘치는 어버이날 선물을 산다. 그런 선물은 해주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듣는 경우가 태반이다. 돈도 별로 없을 텐데 왜 이렇게 비싼 선물을 샀냐는 부모님의 채근에, 청년들은 텅 빈 지갑을 바라보며 허무함을 느낀다. 5월엔 청년들의 지갑도 마음도 모두 가난해진다.

 

5월에는 청년의 자리가 없다. 특히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청년들의 자리는 더더욱 없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으면 청년들에게도 5월에 자리가 생기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연한 고용 불안정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결혼과 육아는 한정판을 사기 위해 사채까지 끌어다 쓰는 것과 같다.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어버이날은 어린이날만큼 다시 오지 않을 날인 것이다. 노동절이나 스승의 날을 두고 청년들이 벌이는 경쟁은 이미 숨막히게 치열한데다가 관문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5월에 청년을 위한 날도 하루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5월의 하루 정도는 주변에 있는 청년들에게 입은 닫고 마음은 활짝 열어보자. 지갑도 함께 연다면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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