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기업들의 요구에 발맞춰 강행 추진한 ‘데이터 3법’ 개정 후, 공공기관에 수집된 개인정보를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보건의료에서도 마찬가지로 민간보험회사들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 수집된 개인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압박 중이다.
한화생명 등 민간보험회사들은 공단에 개인정보 자료 제공을 요청했다. 공단 내 ‘개인정보 자료 제공 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에서 연구목적의 공익성 부족 문제로 퇴짜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 개인정보 자료 요구에 대해 재신청했다. 시민사회 및 노동조합의 강력한 반대로 여론이 악화되자 공단 심위위원회는 자체 심의위 전 의견 조율을 위한 이해당사자 간담회 등을 자처하고 나섰으나 공식적인 입장을 내진 않고 있다.
민간의료보험사의 공익성?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유·관리하고 있는 개인정보는 건강보험료 납세와 아플 때 건강보험을 이용하기 위해 그 목적에 동의해 시민들이 제공한 개인정보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와 의무를 지키기 위해 제공한 정보이기에 공단 개인정보에는 개인과 그 개인의 가계 정보가 수십 년간 집적돼 있다. 따라서 매우 민감성이 높은 정보이며 건강보험 이용 목적 외로 공유되거나 활용되어서는 안 되는 정보들이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공단의 개인정보의 활용 제공 범위를 판단할 때 개인 민감 정보 활용 위험을 사회가 감수할 만큼 그 목적과 결과가 사회적 ‘공공성’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의 준거로 삼는다. 공단 내 심의위원회 심의 기준에 연구목적의 ‘공익성’ 여부를 판단하는 내용이 근거로 명시돼 있는 이유다.
우리의 상식과 지난 역사를 통해 돌이켜보건대, 과연 민간보험회사가 건강보험공단 내 수집돼 있는 거대한 국민 개인정보를 활용해 시민들에게 돌려줄 ‘공익’이나 공공성이라는 게 있을까? 단언컨대 단 한 가지도 없다. 민간보험사는 공보험과 경쟁한다. 공적 보장의 공백이나 취약성이 자신의 시장이기 때문이다. 민간보험사들은 자기 ‘고객’의 개인정보를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보험료 지급 거절을 하기 쉽다. 새로 고객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의 개인정보도 더 많이 알수록 그들이 말하는 위험손해율, 즉 보험지급율을 낮추는데 효과적이다. 건강하지 못한 가족력이 있는 사람들은 아예 자사 보험 가입 문턱을 제한해 버리거나 가입 시 높은 보험료를 요구할 수 있다. 민간보험사가 이윤을 축적하는 오래된 방식이다. ‘디지털 헬스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이 오래된 돈벌이 방식을 바꿀 리가 만무하다.
따라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에 따라 공공기관에 수집된 국민 개인정보 중 가명정보는 ‘과학적 연구’라는 형식만 갖추면 사용가능하다는 주장은 가족력과 개인 의료기록이 포함된 공단 개인정보 활용 심의 조건으로는 충분치 않다. 해외 여러나라들이 별도 법제도를 통해 건강정보와 의료정보에 대해서 정보 주체의 동의 없는 활용시 사회 공익에 부합하는 측면이 큰지 여부를 따지도록 엄격한 제한을 두는 이유다.
건강정보에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건강정보 유출이나 악용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사전 예방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과도 같다. 민간보험사의 ‘과학적 연구’의 목적과 그 결과가 대다수 노동자들의 건강보험 보장을 약화시키고, 건강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개인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할 의무에 기초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공공의 자산을 사기업들이 편취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헌법의 정신에도 어긋난다. 공단에 제출돼 있는 민간보험사의 ‘연구계획서’가 형식적 목적으로는 그 내용이 공공성에 부합한다고 하더라도 결과의 공공성, 연구 주체의 공공성 기준을 통과하기 어렵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민간보험회사라는 주체가 사회 공공의 이익을 위해 마련된 공동의 자산을 활용할 권한을 가질 수 있는 주체라는 것에 동의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 출처 = 이미지투데이
건강보험공단은 공익적 기구로 역할 해야
건강보험공단은 민간보험회사가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공단 개인정보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시도에 동의해선 안 된다. 공단은 개인정보 제공 심의에 있어 공공성과 공익적 판단을 우선해야 하며, 그 심사 기준은 연구 목적, 연구 절차와 과정, 연구결과, 연구 주체 모두에 걸쳐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 ‘과학적 연구’ 목적이라 하더라도 절차와 과정, 결과, 주체의 공공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건강보험 가입자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공단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없다.
연구 결과의 공공성을 담보한 활용이라는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하며, 관련 심의 내용이 모두 공개돼야 한다. 첫째 민간보험사의 연구 결과 공개 가능성이다. 민간보험회사가 수행한 연구 결과가 사회적으로 공개 및 공유될 수 있는 것인가? 연구자 및 일부 관계자에게 연구결과가 독점되는 것은 아닌가? 연구 결과가 사회적으로 공유되어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발전적 논의에 활용 가능한가? 둘째, 이익의 독점 방지와 관련된 것이다. 민간보험회사의 연구를 통해 얻는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그 이익이 건강보험 가입자에게도 돌아가는 것인가? 혹시 공유되지 않거나 부정적인 결과를 마주하게 될 집단은 없는가? 셋째, 사회적 낙인과 차별 방지에 대한 것이다. 민간보험회사가 개인정보를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함으로써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을 더 증가시킬 위험은 없는가? 민간보험회사가 만든 알고리즘이 사회적, 윤리적 문제나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은 없는가?
마지막으로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도 ‘과학적 연구’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가명 처리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개인정보보호법 관련 조항의 기본 취지는 해당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개인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할 것’이라는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 가정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건강보험을 이용하기 위해 자신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제공한 시민들 중, 전혀 다른 목적으로 자신의 개인정보가 제공되어도 좋다고 동의하는 시민들이 얼마나 될까? 내 아이, 내 가족의 건강기록을 가명처리해서 사용하라는 그 동의 말이다. 따라서 민간보험회사는 애초에 건강보험공단의 개인정보를 이용한 연구 주체로서도 적합하지 않다.
국민건강보험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으로 만들어졌다. 공단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건강보험법에 근거한 공단은 따라서 국민 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투쟁의 역사에 기반한 이러한 원칙은 그 수장이 누가 되었든, 대통령이 누가 되었든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건강은 민간보험회사들이 이윤을 창출하는 방식인 ‘경쟁’과 ‘관리’로 얻는 것이 아니다. 건강은 불평등과 빈곤을 없애야 얻을 수 있으며,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들어야 지속할 수 있다. 코로나19 감염병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차별 없는 건강은 더 많은 공공의료와 충분한 건강보험 보장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배웠다. 축적을 위한 축적, 경쟁과 이윤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의료보험사에게 사회적 공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