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1일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는 날이었다. 이미 해당 임시국회에서 법안 통과를 위한 여러 절차, 즉 상임위 법안 소위부터 안건조정과정을 거쳐 법사위 심사까지 지켜보며 매일 피가 마르는 고행을 연속하다 보니 오히려 당일은 무척이나 덤덤했던 기억이다. 그리고 유별나게 춥던 그 날 오후, 한국노총의 공공노동자들은 지난 여름 투쟁을 선포했던 자리에서 5개월간의 투쟁이 마침내 승리했으며 앞으로도 올바른 공공정책을 쟁취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 1월 11일 국회 앞에서 진행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입법 관련 ‘한국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협의회’ 기자회견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했으니 앞으로 6개월 후에는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을 위시한 공공부문에 노동이사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과반 노동조합이 추천하거나 투표로 선출된 비상임이사가 이사회에 참여해 각종 경영정보를 공유하고, 운영 전반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기능은 물론 노·사관계에서도 나름의 역할을 찾게 될 것이다. 비록 기재부와 정치권에서 결정하는 경영진과 다수의 이사들 사이에서 한 명의 노동이사가 경영결정에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걱정도 있다. 그러나 중앙 공공기관에서는 가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인 만큼 법 시행까지 제도적 보완에 집중하고, 향후 제도의 긍정적 성과를 만들어 노동이사의 수와 적용기관을 늘리는 과제를 준비해야 한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과정을 보면 입법을 위한 썩 괜찮은 모델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하나의 노동조합이 아닌 이해가 같고 성격이 유사한 세 개의 산별·연맹이 연합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냈고, 인력과 예산을 공동으로 투입하며 입법을 촉구하는 투쟁을 조직해 국회를 압박했다. 그 전후로 한국노총 출신의 국회의원은 입법 발의를 해서 법제화의 물꼬를 텄으며, 한국노총은 주요입법과제 선정과 정책건의로 힘을 보탰다. 의제를 만들고 투쟁을 추동하는 주체의 역할, 국회와 공조, 총연맹의 힘 있는 지원이 각자의 자리에서 제대로 기능했다. 물론 그 과정 모두가 핑크빛은 아니었으나 보완할 부분은 기쁨이 가신 후에 차차 논의키로 하자. 순효과를 부정할 수 없음에도 왠지 터부시되는 정치세력화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과정을 감히 역사적이라는 수사를 붙일 수 있었던 이유는 명료하다. 지난 십 수년간, 신자유주의와 신공공관리 이론이 우리나라 시장과 공공부문을 완전히 잠식한 이후 얻어낸 몇 안되는 포지티브한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간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운동 기조는 ‘방어’와 ‘회복’에 집중됐다. 보수정권을 중심으로 공공기관 민영화 시도, 단체협약 전수 검열, 방만경영 프레임과 복지 후퇴, 강제적인 임금체계 변경과 장년노동자 임금삭감까지 노조와 노동조건에 대한 공세를 어떻게 막아낼까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더 나은 제도, 더 좋은 조건을 생산하고 쟁취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였다.
그러한 흐름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볼 수 없으나, 적어도 이제는 ‘회복’과 ‘진보’를 얘기할 수 있게 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성과연봉제를 퇴출시킨 것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 시행 그리고 이번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를 통해, 가진 것을 지키는 투쟁에서 한때 가졌던 것을 회복하고 더 좋은 것을 갖고자 하는 투쟁으로 분위기를 전환해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유로 이번 투쟁과 승리의 과정은 충분히 역사적이다.
이처럼 바뀐 분위기를 이어가고 역사적인 승리를 계속 맛보기 위해서는 20대 대선 공간에서 정치적 선택과 행동을 통한 차기 정부와 관계 수립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를 돌아보면, 공공노련은 지난 2017년 2월, 박근혜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예상되던 때부터 ‘공공기관 노조의 경영참여 및 노동이사제 도입’ 조항을 포함시켜 더불어민주당과 대선 정책협약을 체결했다. 비단 공공노련 뿐만 아니라 다양한 단위에서 추진됐던 이러한 협약과 정책제안이 노동친화정책 실천에 의지가 있는 정권과 결합해 대통령 후보의 공약과 정부의 국정과제로 발전했다. 여당은 당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국회에서 노동이사제 법안 발의와 최종 통과까지를 주도했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정치적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시야를 조금 넓혀도 해야 할 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조합이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노동조합의 이해는 결국 노동권 강화와 노동조건 향상에 갈음하기에 노동친화 정권과의 결합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사업장의 이해를 넘어 공동체의 이해를 위한 활동에 나서는 것은 필요에 따른 행동이 아닌, 노동조합이라는 조직된 단체의 사회적 의무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가? 노동조합은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팬데믹은 여전하고 자영업자나 임금노동자, 구직자 구별 없이 모든 국민이 어려운 시절이다. 비대면을 틈타 불완전 노동은 암처럼 번졌고, 산업구조의 다양한 변화는 일자리의 전환이 따라잡기 어려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불평등은 심화되고 조세정의와 불로소득 방지를 위한 정책은 자본가의 힘에 뭉게져 버렸다. 부에 따른 계층이 공고해졌고, 온갖 사회적 갈등이 임계치에 달해 폭발 직전의 긴장이 넘친다.
이런 사회와 공동체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노동조합의 선택이다.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노동기본권 보장과 각종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싸워온 노동조합이 가진 자를 대변하고, 노동을 핍박하는 반노동세력을 심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지도자와 올바른 정치세력을 선택해 적극적으로 공조하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노동자다운 결정에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이 가리키는 ‘노동운동의 성취’와 ‘정치적 결정에 대한 시사점’이라는 두 개의 줄기로 지난 투쟁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봤다. 한국노총의 모든 동지들께 공감으로 다가갈 수 있길 희망하며, 힘을 모아주신 많은 분들께 지면을 빌려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