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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3년, 많이 고마웠습니다

정혜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등록일 2022년01월04일 08시02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나는 일본이란 틀을 통해 공부를 시작했다. 일본정치사 속 노동운동의 역할이나 정당과 관계된 노동조합에 관심을 가졌다. 가끔 일본 단체와 교류하며 한국 활동가와 접했어도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노동운동이란 나에게 책이나 뉴스 속에 정형화된 모습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노동조합 연구원에 취직했고, 이곳이 생업이자 이상을 실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게 됐다. 이들은 뉴스에 나오는 투쟁현장에 결합하고, 회의체에서 노조 조끼를 입고 ‘발언’을 하지만, 저녁에는 맡겨 둔 아이를 찾으러 가는 엄마·아빠였다. 친구 따라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낭패를 봤다 한숨짓는 생활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총연맹이나 산별노조·연맹에는 “간부는 직장인이 아니라 활동가”라며 좀 더 헌신적으로 일해 주길 바라는 ‘선출직 대표’와 “우리도 노동자이자 실무자로 정당하게 대우해 달라”는 ‘채용직 간부’ 간 긴장이 존재한다. 이 현실의 긴장감이 ‘선거’가 있고 ‘대표’가 있는 조직에서 상존하는 부분으로, 논문을 위해 읽었던 ‘조직이론’과 겹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때로 책에 나오는 개념과 이론이 현실에 걸어 나오는듯한 감각에 신기했으며, 한편 연구자의 역할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이론이란 논문 서두에 써야 하는 분석 틀인 줄만 알았는데, 수많은 현장사례가 쌓여 만들어졌고 현실을 설명해 주는 도구임을 깨닫는다. 좋은 연구는 활동가나 노동자에게 스스로를 설명하고 현실을 바꿀 무기를 쥐어 줄 수 있음을. 반대로 “음~ 좋은 말씀인데 저희 현실에서는 좀…” 같은 활동가들의 온건한 언사는 사실 그 연구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날카로운 비판이었다.

 

책상에서 하는 연구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데, 의자에 제대로 앉지 않는 이는 설령 회의체에 불려다닐 수는 있어도 현실을 바꾸려는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없는 듯하다. 좋은 학자의 결과물은 때로 학술 언어가 낯설어 현장에 도움이 되려면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런데 좋은 연구가 아니면 아예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는 점에, 한참 부족하고 게으른 연구자로서 두려움을 느낀다.

이곳에 들어와 해가 지날수록 선배들과 동료들의 헤아릴 수 없는 도움과 지원을 받았다. 무엇보다 공익에 기여하고자 학위과정을 시작했지만 세월이 지나며 잊고 있던 최초의 동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개성도 의견도 다르지만 “이대로 안된다. 이렇게 가야 더 나아질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순수하고 치열한 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다.

노동조합에 대해 비판을 넘어 폄하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시대이다. 진보적이거나 노동을 아는 이들조차 ‘노동운동’을 냉소하는 데에 별 부담을 느끼지 못하는듯해 아쉬울 때가 있다.

감히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리는데 첫째, 노동하는 시민들이 모여 있는 대표 결사체를 무시하는 사람은 어떤 ‘지향’을 가진 이일 수는 있어도 ‘민주주의자’는 아니다. 민주주의란 결사와 집단을 만들 자유가 핵심이고, 결사체의 힘이 곧 민주주의 수준의 척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같이 결사체가 취약한 나라에서 200만명이 넘는 구성원이 대표를 선출하는 조직은 드물기에 그 가치가 크다. 조직률 12%의 문제는 더 넓게 대표하도록 노력할 문제이지, 대표성이 없다거나 무시해도 좋다는 의미일 수 없다.

 

둘째, 노동조합이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기여한다는 비판은 타당한 부분이 있으나, 변화 역시 노동조합이 열 수 있다.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 대비 2배 정도 올리는 하후상박 연대임금 교섭을 하거나, 노조를 만들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공제회를 만들고 연대기금을 조성하는 역할을 노동운동이 선도했듯 말이다. 올바름을 말하는 지식인보다 결사체조직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유는, 변화란 개인의 도덕성만으로 가능하지 않아서다. ‘선출’된 ‘대표’라는 정당한 권력이 있어야 권위를 가지고 용기 있는 타협도 할 수 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노동조합이 사회를 바꾸는 주요 행위자인 이유는 선량하거나 계급의식으로 충만해서가 아니라, 노동시민의 선출된 대표라는 정당성과 책임성이 불가피하게 실려서다. 그러니 용기를 가지고 한 걸음씩 나아가시면 또 다른 세상을 맞이하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가 발달할수록 세상은 그리 쉽게 바뀌지도 좋아지지도 않는다. ‘타협’이나 ‘영합’이란 비난에 위축되지 말고, ‘최대 강령주의’를 내세우기보다 작은 변화라도 이루는 것이 민주주의에 맞는 노동운동을 하는 길이라 자신감을 가지셨으면 한다.

노동운동을 하고 노조를 하는 이들을 향한 타당한 비판은 수용하되, 더 어깨를 펴고 자부심을 가지시면 좋겠다. 나는 대다수 노동하는 시민들의 삶을 대변하고 좀 더 낫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고, 우리로서 존재하는 힘이라 말이다.

3년이 됐지만 ‘동지’라는 표현이 여전히 쑥스럽다. 그래도 꼭 한번 말씀드리고 싶었다.

“동지들, 힘내세요! 많이 고마웠습니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윤·희의 넌 어때?' 코너에 공동 연재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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