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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노동운동의 역사를 공부하는가?

한국노총 세계노동운동사 읽기모임 경과와 과제

등록일 2021년12월10일 08시09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송명진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 사무국장

 

“선을 멀리까지 똑바로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게요?”

서울시 배달라이더 안전교육 진행을 위해 지난 주말 도봉 운전면허시험장에 나온 선동영 전국연대노조 배달플랫폼지부장이 문득 던진 질문이었다. “자를 대고 계속 이어가며 선을 그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똑바로 그려지지만 나중에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요. 멀리 목표점을 내다 보며 선을 그으면 당장은 삐뚤빼뚤해도 종국에는 그 근사치에는 다다라요”라며 이제 갓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지만, 3년 후 이임사까지 벌써 생각해 두고서 그 목표를 향해 선을 그리고 있단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면서 역사적 존재다. 아무리 독립적인 개인이라도 선대에 형성된 물적 토대와 사회적 가치관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람들이 만드는 모든 사회운동 역시 역사성을 갖는다. 과거에 설정된 운동의 원칙과 방향, 방식은 수많은 부침과 변화를 거치면서도 현재 운동의 골격과 걸음새에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의 운동이 제 길을 가고 있는지, 속도는 적당한지도 역사의 흐름에 비춰봄으로써 보다 명확해질 수 있다. 밀림 속에서 조난 당하지 않기 위해 내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높은 곳에 오를 필요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은 예상보다 빠르게 요동친다.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인지는 모르겠다. 촛불혁명으로 국가의 최고권력자를 퇴진시키고 새로운 정치권력을 창출하며 사회 대전환의 기대감이 부풀었던 것도 불과 몇 년전이다. 그 사이 ‘촛불국민’은 수많은 경제·사회적 이슈마다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나뉘었고, 공정과 정의의 실현이라 여겼던 여러 정책들은 어설프게 추진되다가 오히려 소상공인, 노동자, 청년들의 원망과 분노의 대상이 되어 속수무책으로 깨져 나갔다. 매서운 추위를 뚫고 솟구쳤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기득권세력에 대한 절망으로부터 새 정치로의 지향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시계추처럼 거대 양당 사이를 오갈 뿐이다.

 

노동운동은 어떠한가? 변화된 정치사회적 지형을 활용해 조직률과 영향력을 확대하고 노동자의 권익증진을 위해 현장부터 최상급 조직까지 무수한 동지들이 헌신해 왔으나 그 총합의 힘이 사회의 거대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지는 못하다. 노동시장 환경 변화에 대응한 미조직 취약노동자 보호와 조직화를 위한 다양한 실험과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전 조직적인 공감과 자원동원을 바탕으로 한 체계화된 전략으로 추진되고 있지는 않다. 꾸준히 맡은 바 자리에서 노력하다 보면 또 다른 기회는 오기 마련이겠지만, 변화를 앞당기고 그것을 불가역적인 흐름으로 만드는 것이 운동의 목적이라면 우리는 중요한 무엇인가를 놓치고 가는 셈이다.

 

부족한 점이야 늘어놓자면 한도 끝도 없을 테다. 하지만 ‘거시적 시각’과 ‘운동전략’은 그 중 큰 부분을 차지하리라 본다. 노동운동이 지향점으로 밝히고 있는 ‘노동존중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인지, 그것을 넘어선 보다 근본적인 목표설정이 필요한지, 대안사회 비전이 현실화될 수 있는 경제체제와 정치시스템은 기존의 것들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이를 만들어 갈 조직전략과 정치세력화 전략은 어떠해야 하는지 등의 질문조차 노동운동 내에서 점점 더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앉아서 세상을 설계하자는 것도, 해답을 찾아야 실천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결코 아니다. 다만 노동운동의 현재 좌표를 확인하고,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오늘의 전략을 보다 체계화하고 구체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세계노동운동사는 우리의 사고를 시공간적으로 확장하고 새로운 사회와 운동전략을 디자인하는데 있어 근거할 수 있는 다양한 사례와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 확신한다.

 

지난해 초, 한국노총 사무총국과 산별조직의 간부들은 세계노동운동사 읽기모임을 가지기로 했다. 김금수 선생님의 세계노동운동사 4권~6권이 출판된 것이 계기였다. 자율적인 모임이니만큼 모든 간부가 다 참여한 것은 아니다. 노동운동 역사에 대한 교육 기회가 없었거나 현재의 노동운동을 역사적 맥락속에서 이해해보고자 하는 젊은 동지들 위주로 모였다. 20여명이 함께 하기로 하였지만 주어진 업무가 우선일 수밖에 없어 매 참석인원은 10명 정도였다.

 

모임은 기본적으로 월 2회 가량 점심 1시간 동안 요약 발제와 질의응답으로 진행되었다. 2020년 4월부터 7월까지 노동자계급의 형성부터 20세기 초까지 역사를 담은 1권을 학습하였고, 8월부터 11월까지 1920년대까지의 노동운동사를 독파하였다. 2021년 들어 2월부터 6월까지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노동운동사를 다룬 3권을 마무리하였다. 하반기에도 이어서 4권에 대한 학습을 진행하기로 하였으나, 운영진을 비롯한 참여간부들의 업무가 과다해짐에 따라 휴지기를 갖는 중이다.

 

저자인 김금수 선생님의 특강도 병행했다. 당초엔 월 1회가량 일과 이후에 개최하려 하였으나 저녁모임을 안정적으로 진행하는 것도 만만치 않아 작년 세 차례 정도만 이루어졌다. 점심 읽기모임에서 제기되었던 질문들에 대해 선생님께서 종합적으로 설명해 주시는 방식이었다.

 

한편, 올해 초부터 한국노총 기관지에 모임 회원들이 나눠 기고문을 싣고 있다. 지금까지 총 8차례의 기고문이 올려졌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전개된 노동운동의 경험들로부터 불안정노동의 확산, 4차산업혁명, 플랫폼노동자 보호법, 노동자 정치세력화, 비노조 방식의 노동자 조직화, 사회적 연대, 우경화 등 오늘 노동운동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지난 2년간의 읽기모임을 돌아보자면, 주마간산 격으로 이루어져 3권까지 완독했다는 것 외에 정작 뚜렷한 성과가 없다고 여겨질지 모르겠다. 업무시간 외에 가능한 때를 찾아 점심 짜투리시간에 모임을 하다보니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나 토론을 하기에는 턱없이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다. 모임 성원들이 한국노총과 연맹의 상근간부들이라 모든 모임에 참석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세미나를 이끌어갈 학습주체가 내용을 미리 준비할 여력조차 되지 않았단 것이다. 향후에는 한국노총의 공식적인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소규모 세미나 참여에 대한 교육시간 보장과 재정지원, 그리고 보다 대중적인 특강프로그램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

 

여러 한계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세계노동운동사 읽기모임이 참여한 간부들에게나마 노동운동을 조금이라도 더 폭넓게 인식하고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본다. 더 많은 산하조직에서 세계노동운동사를 비롯한 다양한 학습과 토론이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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