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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촛불‘혁명’이란 표현을 자제하는가

정혜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등록일 2021년11월09일 13시00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문재인 행정부의 임기가 끝나갈수록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는가”라는 한탄을 접한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거나 삶의 터전이 위태로워진 이들이 상당한데, 예산과 입법을 책임진 이들 간 논쟁이 재난지원금 수준에 머무르니 변화를 꿈꾼 이들이 느끼는 실망감은 이상하지 않으리라.

 

다만 촛불‘혁명’이란 단어는 자제하고 싶은데, 변화를 위한 고민을 비상시적으로 열리는 ‘거리 투쟁’이나 ‘혁명적 열기’에만 가둘 수 있어서다. 87년 민주화 이후 촛불시위를 비롯한 수많은 대중운동이 한국 정치 변화에 중요한 동력인 것은 사실이다. 다만 운동이 곧 새롭게 열린 공간에서 바람직한 ‘통치’를 담보해 줄 수 없으며 2016년 촛불도 예외는 아니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운동은 정당성이 약한 정권의 약점을 최대한 노출시켜 반대를 극대화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으나, 현실 변화를 위한 정치적 힘의 조직화나 현실적 제약 속에서 실현 가능한 개혁 대안에는 취약할 수 있다. 운동에서 문제를 이해하는 방식은 거시적이고 총체적이며 대안은 추상적이거나 이론적 도식에 가까워서다. 가령 ‘비정규직 제로화’란 선명한 ‘선언’을 넘어서 채용절차부터 다른 직무를 수행하는 이들 간 임금의 ‘공정함’이 무엇인지 복잡한 정책 과제를 담고 있다.

 

운동의 구호나 방향은 정서적으로 급진적일 수 있으나, 이것이 만들어 내는 현실과 프로그램을 포괄하는 내용은 그렇지 못할 수 있다. 무엇보다 혁명이나 운동의 논리는 빠른 변화를 위해, 다수파가 몰아붙어야 한다는 초조함을 낳는다. 그런데 이는 민주주의의 가치인 다원적 이해관계자 간 논쟁과 합의라는 가치와 차이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2016년 촛불집회 때 평소 시위에서 뵙기 어려웠던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 깃발 없이 삼삼오오 모인 평범한 시민들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정치에 무관심했거나 스스로 보수파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이들도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는 데 폭넓은 공감대가 있었고, 결국 보수정당 내 상당수가 탄핵소추안에 동의하며 국회 통과가 가능했다.

 

즉 탄핵은 ‘운동진영’의 동력도 중요했지만 폭넓은 정당 세력과 이들을 지지하는 다양한 이념을 가진 시민들의 정치적 합의이기도 했다. 그런데 행정과 국회 권력의 다수파가 되면 비판이나 이견은 모두 ‘기득권과 적폐’로 밀어붙이면 그만일까.

 

세계관과 목표가 다른 정치세력 간 갈등은 당연하나, 그 다툼이 과연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갈등이고 경쟁 가능한 이슈인지도 중요하다. 도덕적 당위나 역사를 판단하는 문제는 명확한 세계관 차이가 존재해 합의가 쉽지 않다. 그러나 분배 등 인간의 물질적 삶을 다루는 이슈는 좋은 경쟁도 가능하고 적절한 타협도 가능하다.

 

코로나19 이후 수많은 시민의 삶이 무너지는 비상시기에 재정을 어떻게 투여해 소득을 대체하고 고용을 유지할 것인지, 영업 제한 조치나 임대료 규제나 보상에 대해 정당끼리 더 논쟁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2016년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에 동의했던 대다수 시민끼리 서로를 적대하며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나누어지고 지금처럼 정치가 도덕과 부패의 문제로 환원됐을지 아쉽기만 하다.

 

민주주의란 단기적 관점에서 진보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효율적 시스템으로 보이지 않는다. 보수부터 진보까지 다양한 세력 간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해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해가 다른 세력들이 최소 수준의 합의를 만드는 느린 과정이, 결국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어 낸다.

 

한때 ‘요람에서 무덤까지’라 불리던 ‘복지국가’의 원조국 영국이나, 세계 최고 중산층을 보유했던 미국이 이제 신자유주의의 수출국이자, 불평등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이유는 정치 문제가 크다. 상대적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진보가 집권한 시기에는 빠르게 노동인권이 신장하고 복지도 확대될 수 있었다.

 

그런데 합의보다 다수결의 논리가 강하니 보수가 집권하고 시대가 바뀌면 빠르게 되돌릴 수도 있었다. 좋은 변화만이 아니라 나쁜 변화도 속도가 빨라진다. 더욱이 다수파가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으면. 정치는 권력 쟁취가 최우선이 되고, 상대를 떨어뜨리기 위한 도덕적 흠결만 찾으며 적대적 경쟁만 반복하기 쉽다.

 

반면 영국·미국과 달리 상대적으로 보수부터 진보까지 다양한 의견을 가진 정당들이 연립정권을 구성하거나, 합의를 통해 변화를 만든 국가들은 보수가 다수파가 된다고 해서 갑자기 복지축소나 규제완화를 서두르기 쉽지 않았다. 보수도 애초에 합의했던 내용이자, 좌파정당뿐 아니라 노동조합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주요 당사자라는 정치문화를 가지고 있어서다.

 

아렌드 레이프하트(Arend Lijphart)라는 세계적 정치학자는 36개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오직 양적 지표만으로 이 점을 증명해 정치학의 중요 담론을 만들었다. 영미식 다수결주의보다 합의제 민주주의가 불평등지표·부패지수부터 여성의 대표성, 평등, 유권자 참여같이 여러 민주주의 질에 관한 여러 지표뿐 아니라 경제성장·물가상승이나 실업 같은 경제성과까지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2014년에는 한국도 주요 분석 국가 중 하나로 포함됐다.

 

나는 지난 촛불을 회고하며 ‘민중의 힘’을 내세워 변화를 강조하는 낭만주의자는 믿지 않는다. 나와 의견이 다른 이들을 검찰이나 세무조사로 압박하며 ‘나만’ 정의롭다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 너와 의견이 다르지만 적어도 이 점에서 내가 더 나은 대안이고, 우리의 공통분모는 여기까지니 변화는 가능하다고 말하는 정치인과 정치세력을 보고 싶다면 과한 기대일까.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윤·희의 넌 어때?' 코너에 공동 연재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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