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우리는 점심으로 싸 온 찬밥을, 여자 화장실 맨 구석의 좁은 칸에서 둘이 무릎을 세우고 먹었습니다. 학생들이 바로 옆 칸에 와서 ‘푸드득’ 용변을 보면 우리는 숨을 죽이고 김치 쪽을 소리 안 나게 씹었습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원장이 그의 책에서 소개한 청소노동자의 글이다. 쉴 공간이 마땅치 않아 화장실 구석 끝 칸에서 숨죽이며 점심을 먹었던 청소노동자의 서러움이 뚝뚝 묻어난다.
지난 6월 서울대 여성 청소노동자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년 전 여름에도 서울대에서는 폭염 속 에어컨은커녕 창문도 없는 휴게공간에서 청소노동자가 숨졌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부 종합청사 내 청소노동자들의 휴게공간 중 3분의 1 이상이 지하에 자리해 있다”고 한다.
좋은 노동환경을 선도해야 할 정부 기관과 국내 최고 명문대에서도 이런 실정이니 다른 민간 사업장에서는 오죽하겠는가? 여전히 청소노동자를 비롯한 여성·고령의 취약계층 노동자들은 변변한 휴게공간 없이 더위와 추위, 코로나로 폭증한 업무에 고통받고 있다.
근로계약에 휴게시간으로 설정됐음에도 휴게공간 없이 일터에서 업무대기를 하는 억울한 사연은 경비노동자들에게도 일상적이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 민간빌딩과 공공시설의 청소와 경비를 담당하는 시설관리 노동자들에게 휴게시간은 중요하다. 이용자들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장시간 시설에 머물며 일하기 때문에 적절하게 휴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경비노동자처럼 시설관리 노동자 등 일부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휴게시간을 적용 제외할 수 있다. 업무가 간헐적으로 이뤄지고 통상의 업무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심신의 피로도가 높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간헐적이고 피로도가 낮다는 경비업무의 실질을 살펴보면 제도의 맹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휴게시간이란 ‘사용자의 지휘·감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이용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임금을 못 받는다. 그러나 실상은 가수면 상태에서 입주민의 민원에 상시 대기 상태다. 경비노동자들이 “미치고 펄쩍 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간헐적’이라는 순찰과 입출입자 통제는 이들에게 상시업무다. 입주민들의 각종 민원은 휴게시간을 가리지 않고 쏟아진다. 택배를 대신 보관해 달라는 요청, 우편물을 대문 앞까지 가져다 달라는 민원, 세대 내 각종 민원 때문에 경비실 전화는 항시 바쁘다. 1주일에 하루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주민들이 가져다 놓은 쓰레기를 분리해 정리하고 계절에 맞춰 각종 아파트 시설관리 업무에 동원된다.
다행히 사용자에게 휴게시설의 설치를 의무화한 산업안전보건법이 국회를 통과해 내년 8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휴게시간 보장을 위해 경비노동자의 업무를 제한한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도 현실화됐다.
그러나 법에서 사용자의 휴게시설 설치 의무를 포괄적으로 규정했을 뿐 구체적인 휴게시설 설치 의무의 내용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시행령 등을 통해 정해지는 만큼 사업장 규모에 따라 규모가 작은 사업장은 적용이 제외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경비노동자 사례처럼 명목상 휴게시간임에도 현장에서 업무대기가 이뤄지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휴게시간과 휴게시설의 요건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경비노동자 등 감시·단속 노동자의 승인요건과 관련한 업무지침을 통해 구체적인 휴게시간의 배치, 휴게시설의 요건, 최소 휴무일 기준을 정한 바 있다.
정부는 비단 감시·단속직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일반 사업장의 휴게시설 요건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정해 사용자가 이를 준비하게 하고 노동자들이 휴게시설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휴식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규모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을 위해서는 공단이나 지역 내에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휴게공간을 지자체와 협의해 마련하면 좋을 것이다.
노동자에게 휴게시간 보장과 안정된 휴게시설 설치는 기본적 노동인권의 문제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를 또 다른 규제와 비용으로 인식한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과로사 등 업무상 질병을 예방하고 노동자 직무스트레스가 줄어들어야 업무능률이 높아지고 장기적으로는 재해보상 비용도 줄 수 있다. 사용자단체들은 이를 규제로 인식하기보다는 투자로 생각해야 한다.
본 칼럼은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에 공동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