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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성평등을 위한 노동운동의 역할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등록일 2021년08월03일 09시32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헌법에 명시된 평등권과 근로기준법상의 균등처우 조항이 유일했던 우리나라의 고용상 성차별 관련 법규는 남녀고용평등법을 시작으로 주요한 법적 평등의 기반을 확보하게 된다. 비록 명백한 고용차별의 사례들은 점차 감소하고 있는 추세라 하더라도,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광범위한 남녀 간 격차와 고용관행에 내재해 있는 간접차별로 인해 아직도 고용상의 성평등은 요원한 과제로 남아 있다.

 

차별은 비교대상이 될 수 있는 상대방(counterpart)이 있을 때 훨씬 더 분명히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암묵적으로 ‘여자 일’, ‘남자 일’로 구분하여 구인하는 관행은 차별상황을 은폐하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더 심한 임금, 노동조건, 승진상의 차이를 발생하게 한다. 모든 ‘남자 일’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여자 일’은 급여가 낮고, 지루하고, 장래성이 없는 나쁜 일들이다.

 

간접차별의 시정이 법조문 상에 형식적으로만 남아 있는 한 작업장에서 이러한 직무격리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지적하고 개선해야 할 노동조합의 역할이 더욱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선진국에서도 여성이나 소수자집단은 비록 단체협약을 적용받는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협상과정에 참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따라서 이러한 단체협약은 은폐된 차별을 제거하기보다는 그것을 오히려 공식화 혹은 영속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가 많이 발표된 바 있다.

 


▲ 출처 = 이미지투데이

 

노동운동은 기업 내 자주적인 성차별 분쟁 해결 및 고충처리기관으로서, 또 노동조합 차원에서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규정된 차별적 요소를 밝혀내어 시정하는 구제제도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용평등 확보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일반적인 여성노동자의 복지를 다루는 여성정책에서 전반적인 고용평등과 가족친화적 정책의 확대를 도모하는 성평등 정책으로의 전환을 충분히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책 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선, 여성고용차별의 극복과 같은 중요한 문제를 위해서는 이러한 과제가 실현될 수 있도록, 고용정책, 조세제도, 교육정책 등 광범위한 정책영역에서의 세부조정(fine-tuning)이 필요하다. 우리는 곧 생산가능 인구 중 청년층 인구가 급감하는 인구절벽을 맞이하게 된다. 수요가 새로 생겨났다고 노동공급이 자연스럽게 늘어난다는 가정은 성립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일본의 경험을 돌이켜 볼 때 여성노동인구가 파트타임직으로 집중되어 여성인력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고용상의 성평등 역시 후진적인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두 번째 생계부양자에게 주는 세제 혜택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여성인력을 노동시장으로 유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외관상 중립적이나 성차별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공보육의 부족이나 장시간 노동 관행 등 여성 경력단절의 가장 근본적인 발생요인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시정 의지가 부족한 만큼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동운동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장시간 노동은 남성의 가사노동과 양육분담을 어렵게 하여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저해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인 만큼 노동운동의 리더십이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보다 강력하게 이행되어야 한다. 이는 적극적 고용개선조치의 일환으로도 시행되어야 하지만, 현재 유명무실한 남녀고용평등법 관련 조항의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는 정확한 직무분석 및 기술적 지원의 강화를 통해서도 보완되어야 한다.

 

특히 대표적인 저임금 여성 직무와 동일한 ‘가치’의 직무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이 과대 대표되어 있는 직무와 현저히 큰 임금 차이가 있는 사례들을 발굴하여 시정조치 할 필요가 있다. 남녀 간 임금격차가 현재와 같이 현저히 차이 나는 한 여성의 가사 및 육아 전담이 개별 가구의 합리적 선택으로 지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주희(교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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