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민우 한국노총 조직강화본부 부장(한국노총 세계노동운동사 읽기모임 회원)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들이 새로운 노동이슈로 등장했다.
지금의 노동법 체계와 기업별 노사교섭구조로는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를 사회안전망 틀 내에서 보호하기 어렵다. 그들 다수는 완전한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최근 노동관계법 개정을 통한 그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자 하는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사용자는 그들을 노동관계법이 아닌 공정거래법 등 경제법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노동자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의 완전한 제도적 권리보장은 아직 멀고 험난하기만 하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산업구조의 등장에 따라 노동조합은 노동운동의 변화를 요구 받고 있다. 다양해지는 노사관계를 따라가지 못하는 노동법 및 관행적인 노동조합의 형식과 운영방식은 현재의 노사관계와 산업구조의 빠른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 바람이 거세지면서 기존 노동·경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협동조합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장기화되는 경기침체와 일자리 감소, 소득불평등,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협동조합이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다. 2012년 12월, 한국에서는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면서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과 활동이 본격화 되었다. 이 법은 협동조합의 설립·운영 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자주적·자립적·자치적인 협동조합 활동을 촉진하고, 사회통합과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역사적으로 협동조합과 노동조합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 왔다. 관련 연구자료 등에서 협동조합과 노동조합을 ‘형제’, ‘자매’, ‘노동조합은 아버지요, 협동조합은 어머니’라고 표현하는 등 오랫동안 두 조직이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상호 발전에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하다. 노동조합이 조직된 산업혁명 이후 협동조합도 함께 발전해 왔다. 사용자와 자본으로부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노동자들의 공동노력을 통해 스스로를 지키고 구제하려는 노력이 두 조직을 강화시켜 온 것이다. 또한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의 조합원은 대부분 공통된 인물로 구성됐다.
성공적인 협동조합 사례로 언급되는 세계 최초의 근대적 형식을 갖춘 협동조합은 영국의 ‘로치데일 공정선구자조합’으로 볼 수 있다. 1943년 노동조합운동의 동맹파업이 실패로 돌아가자 로치데일지역의 많은 노동자들은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협동조합에서는 출자금을 모아 생필품을 판매했다. 이 물품들은 이윤을 남기기 위한 상품이 아닌 양질의 제품을 판매했고, 이윤은 배당원칙에 의해 배분되었다. 로치데일 공정선구자조합의 성공적인 모범 사례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 전해졌다. 이후 협동조합은 각 국가의 경제, 사회, 자본주의 방식에 따라 변형되어 자리 잡아 갔다. 그리고 현재 유럽의 성숙한 자본주의시장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나아가 러시아와 미국, 캐나다까지 여러 형태의 협동조합으로 발전되어 갔다.
한국의 협동조합은 일제 식민침탈 시절에 시작되었다. 노동자와 농민은 일제 침탈에 대응하여 오랫동안 내려온 ‘두레’ 정신을 기본으로 한 상호부조, 공동구매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시절 대표 노동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와 원산노동연합회의 협동조합 활동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졌다. 특히, 원산총파업 당시 원산노동자연맹은 일제 강점기 시대의 최대 파업투쟁을 이어가며, 파업으로 겪게 되는 경제적 어려움과 해고자에 대한 생계지원을 협동조합을 통해 해결했다. 협동조합이 있었기에 원산총파업은 한국의 노동운동사의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1970년대 산업화가 진행되며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서 얻지 못하는 공동구매, 신용금고 등 복지 관련 요구를 협동조합을 통해 해결했다. 하지만 이러한 자주적 활동도 정치적 상황과 기업의 복지와 국가의 사회보장제도가 강화되며 쇠퇴했다. 이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새로운 형태와 요구에 의해 협동조합이 생겨났다. 충북 청주시의 부실 사업장을 살린 우진교통 사례와 가스안전공사 직원협동조합은 협동조합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현재는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지역을 기반으로 한 협동조합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플랫폼·프래랜서로 구성된 협동조합이 온라인에서 활동 중이다.
한국노총, 플랫폼노동공제회 설립 본격화
한국노총은 7월 제88차 중앙집행위원회 논의를 시작으로 ‘플랫폼노동공제회’ 사업을 본격화했다. 공제회는 협동조합운동의 기본원칙인 자주성과 민주성에 기반한 자조적 성격의 상호부조 조직이다. 지금까지의 노동조합 운동은 조합원의 노동권 강화를 위한 정책활동, 조직화사업에 힘쓰는 것을 가장 우선시했다. 하지만 한국노총은 급변하는 산업구조와 새로운 고용형태의 확대에 따른 미조직·비정형 노동자를 보호하고, 중층적이면서도 당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자 플랫폼노동공제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법·제도 개선을 통한 권리보장과 처우개선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든 현실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플랫폼·프리랜서 종사자를 반영하여, 우선 공제회라는 기반을 만들고 노동관계법과 사회보험의 실제 적용이 이뤄지기까지 여러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지붕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또한 파편화된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조직화하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스스로 쟁취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하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그동안 한국노총은 플랫폼노동공제회 설립 기반을 다지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해 왔다. 지난해 11월에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비정규직위원회와 함께 ‘플랫폼 노동자 노동실태 및 공제회 설립방안’ 토론회를 열고,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에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는 국민연금 가입, 산재보험 가입률이 매우 낮은 상태이며, 72.4%가 공제회 설립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한국노총은 이러한 결과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위원회’의 노사정 합의를 바탕으로 ‘플랫폼 노동자 공제회 특별법’ 제정도 요구했다.
올해 5월에는 플랫폼·프리랜서 당사자 조직으로 구성된 ‘플랫폼·프리랜서 협의회와 실천협약’을 맺고 비정형 노동자의 법적 권리 강화와 조직화에 협력하기로 했다. 또한, 68년 동안 근로기준법의 적용 제외 규정으로 비공식 노동으로 방치되어 왔던 가사노동자를 위한 가사노동자법 제정을 지원하기도 했다.
한국노총은 사회연대전략을 바탕으로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에 대한 연대와 조직화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한국노총은 노동운동에 주어진 시대적 과제 앞에 ‘플랫폼 노동공제회’를 전략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여기에는 오랜 노동조합의 역사화 함께 해온 ‘협동조합’의 철학과 운영방식이 차용될 것이다. 아직까지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의 관계에서 지향점의 차이가 드러나기도 하고, 운동노선에서 갈등이 내재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고자 하는 노동조합 운동은 협동조합 운동과의 동행 및 공동의 발전을 추구해 나가야 함이 분명하다. 플랫폼노동공제회는 그 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