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욱영 한국노총 정책1본부 국장
과로사‧과로자살이라는 암초
‘과로사’라는 용어는 1969년 12월 일본에서 사망한 다케바야시 카츠요시의 죽음이 1974년 7월 ‘과로로 인해 급성 사망했다’는 임상의의 소견을 받아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사망으로 인정받으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장시간 노동, 교대제, 살인적인 업무강도, 노동자를 대체재 혹은 부품으로 보며 성과만을 강조하는 기업문화 속에서 과로사·과로자살의 문제는 갈수록 간과할 수 없는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택배물량이 과중되면서 열악한 근무환경과 과도한 업무 집중으로 택배기사들의 과로사가 늘어나고 있는 요즘은 그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과로 죽음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과로사를 인정하고는 있으나 기준이나 정의가 분명하지 않고, 정확한 통계자료조차 없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뇌심혈관질환의 산재 신청은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산재승인율은 2017년 개정 고시가 시행된 직후에만 반짝 상승을 기록하고 이후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2020년에는 3분기까지 인정율 38.9%로 신청한 3명중 1명만 ‘산재’인정을 받았다. 검열 사각지대인 자영업자나 특수고용노동자 과로사는 포함되지 않는 수치라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은 우리
야근이 많아 힘들어하고 주말에는 지쳐서 끼니 챙기는 것도 귀찮다고 말하던 지인이 있었다. 대한민국 직장인은 다 그렇다며 연이은 야근을 견디던 그가 월요일 말도 없이 출근을 하지 않았고, 그는 혼자 집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과로사였다. 과로사·과로자살은 이렇듯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막상 내 가족이 내 친구가 내 동료가 과로사로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을 때 그 후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 모임에서는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어 과로사·과로자살이라는 상황에 마주쳤을 때 그 충격을 견딜 수 있는 안내서를 만들어보고자 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이다. 처음 유가족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 중 하나는 고인의 죽음 이후 어떤 행정 절차가 기다리고 있는지, 왜 필요한지, 과로죽음을 인정받기 위해 이 절차에 어떻게 임해야 할지에 관해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은 과로사·과로자살로 지인을 잃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해줄 뿐만 아니라, 과로죽음 후 대처방법, 산업재해보상보험 신청과 판정에 따르는 절차들에 대해서 유용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다.
책을 통해 유가족들은 더 이상 열심히 일해서 죽는 사람이 없도록 우리 사회에서도 과로죽음 문제와 관련해 더 많은 공론화가 이뤄져야 하고 이를 토대로 과로죽음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