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했다. “코로나로 힘든 국내 경제사정을 더욱 악화시킬 것”,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수혜를 입지 못할 것” 등등 많은 우려들이 나오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 안전의 가치가 조금씩 진일보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일임은 분명하다.
우리는 안전사고 소식을 접하며 매일 안타까워하고 가슴 아파한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설마 내가? 우리 가족이? 하지만 ‘사고는 항상 내 주변에서 내게 발생할 수 있다’라는 인식을 하고 있지 않는 한 우리는 사고로부터 결코 ‘안전’ 할 수 없다.
몇 해 전 필자가 국민 5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안전문화 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 안전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4명 중 3명의 응답자는 우리 사회가 불안하다고 응답했고, 우리나라 국민들의 안전의식은 과락수준에 불과한 61점에 불과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안전사고가 지속해서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 문화와 사회분야별로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Ulich Beck) 뮌헨대 교수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삶을 ‘문명의 화산 위에서 살아가기’로 비유했다. 현대사회가 과학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인해 많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그 대가로 사회생활에 대한 위험도는 획기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는 이른바 ‘위험사회(risk society)’ 이론이다.
울리히 벡 교수에 의하면, 이러한 위험요소는 현대사회에 와서 더욱 많아질 뿐 아니라 사회의 한 구조적 요소가 됐고 위험요소들은 이미 일상적인 것으로 만연되어 정작 현대인들을 자신들을 둘러싼 수많은 위험을 잘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바로 안전불감증이다. 그리고 안전불감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안전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반복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들은 학문에서 조기교육을 강조한다. 실제로 조기교육은 모든 방면에서 개인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령 어릴 때 수영을 배운 사람은 몇 년간 수영을 하지 않았더라도 물을 만나면 자연스레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된다. 안전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위급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사람은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지는데 안전교육의 효과는 이러한 상황에서 나타나게 된다.
산업현장에서의 안전문화와 안전교육, 응급상황 대처는 더욱 중요하다. 재해가 발생하면 단순히 노동자의 한사람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아버지, 어머니이자,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기 때문이며 이들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국가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몇 해 전 현장에서 노동자 두 명이 메인스위치 보드룸 웰 펌프의 모터케이블 방향 수정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소속 협력사 노동자가 케이블 연결 변경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작업자가 패널에 워셔를 떨어뜨렸고, 재해자는 워셔를 함께 찾아 주려고 패널 하부에 상체를 넣는 순간 재해자는 440V 전류에 감전되었다. 감전된 것을 발견한 동료는 재해자를 신속히 전도체로부터 떨어지게 하였으며 구급차량을 부른 후 구급차량이 도착할 때까지 약 5분 동안 심폐소생술로 응급조치를 하였다.
보통 심장이 정지한 뒤 4~6분이 경과하면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못해 손상을 입는다. 6분 안에 응급처치를 받는다면 생존율은 3배가 높아진다. 또한 4분 이내에 심폐소생술이 제대로 실시되었다면 뇌손상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재해자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며, 큰 부상 없이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이 회사 노동조합에서는 정기적으로 심폐소생술 교육을 진행해 왔다고 한다. 더구나 지역주민과 가족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고 평소에 습득한 심폐소생술이 한 가장을, 한 가정을 구하는 천금 같은 기회가 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지금까지의 노동조합의 역할은 고용의 안정과 급여 등 복지의 향상이 최우선이었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가장 중요한 노동으로써 먹고, 자고, 입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의 해결을 위해 노동조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 Maslow)가 주장했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Maslow’s hierarchy of needs)’중 첫 번째 단계인 생리적 욕구의 해결이 바로 지금까지 노동조합의 과제였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매슬로우는 1단계의 욕구가 충족되면 다음의 단계 바로 안전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고 했다. 출근하며 교통사고가 나지 않을까? 작업중 다치지 않을까? 하는 등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싶다는 욕구다.
우리는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다. 1인당 GDP도 3만2천달러로 세계 12위다. 그렇지만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안전불감증으로는, 사고공화국으로는 어림없다. 우리 사회 안전문화 전환의 중요한 촉매가 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맞춰 매슬로우가 주장했던 1단계 생리적 욕구의 해결을 넘어 2단계, 안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노동조합이 나서야 할 시점이다.
수십 년째 안전한 사업장, 안전한 대한민국을 부르짖는다. 그래도 사고는 일어나고 피해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매년 2,000여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영원히 퇴근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사고 없는 나라, 노동자가 안전한 세상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와 사업주, 시민, 정부 모두가 안전문화를 가치의 최우선 척도로 인식해야 한다. 안전은 남이 만들어주지 않는다. 안전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