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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민낯

이은호(한국노총 미디어홍보 실장)

등록일 2020년06월05일 10시12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21세기를 생각한다는 무슨 모임에 나가게 된 적이 있는데 재벌 2세, 의사, 변호사 등의 내 또래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들 부드럽고 예의바를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박찬욱 영화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다. 그는 그들(부자들)의 부드러움과 예의바름의 이유를 나름대로 분석한다.

 

“예전의 가난했던 시절에 맨주먹으로 부를 이루던 때와 달리 부를 세습하면서 잘 교육받은 부자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매너가 좋고 젠틀하며 어려서부터 어려움 없이 자라니까 성격은 꼬인 데가 없다. 그러니까 부자가 착하기도 한 세상이다.”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박 감독의 이야기가 전혀 거짓은 아닐게다. 박 감독이 만난 그 자리에서 그들은 예의바르게 행동하고 매너있게 감독을 대했을 것이다. 수십 년 전 티비나 영화 등 매체에서 ‘부자’(혹은 재벌 1세대)의 이미지를 우악스럽고 밀어붙이기 식으로 그려졌다면, 지금은 다르게 보여주고 있지 않나. 하지만, 그렇다고 부자들이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매너를 보이며 착하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지난 5월 6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번 사과는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사카린 밀수사건(이병철), 차명계좌 의혹(이건희), 메르스 사태(이재용)에 이어 네 번째다. 이날의 사과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로 이뤄졌다.

 


 

사람들의 관심사 중 하나는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는 안돼’라는 선대의 유훈에 대한 이재용의 입장이었다. ‘무노조 경영을 하지 않겠다, 법을 준수하겠다, 노사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겠다, 건전한 노사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겠다’ 이재용 부회장이 밝힌 사과문은 대한민국의 많은 노사가 지켜가고 있는 내용이다.

 

사과 자리를 ‘주선’한 준법감시위원회와 대다수 언론과 여론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매너’를 느꼈고, 그것이 진정성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재벌은 마냥 착하지만은 않다는 것이 이재용 사과 한 달 뒤 현재까지의 판단이다.

 

한국노총 산하에는 6개의 삼성 노조가 있다. 그 가운데 삼성전자의 교섭요구에 대해 사측은 묵묵부답이다. 노사 화합과 상생을 얘기한 이 부회장의 말은 씨도 먹히지 않았다.

침묵은 차라리 양반이다. 삼성디스플레이의 경우 직원들의 고용안정 대책에 대한 노조의 요구에 대해 회사는 무시로 일관했다. 오히려 언론을 통해 구조조정, 희망퇴직을 흘렸다. 노사의 본교섭 하루 전이었다. 삼성디스플레이에게도 '건전한 노사문화 정착'은 관심 밖이다. 본교섭 회의장을 회사가 아닌 충남 아산의 면사무소로 정한 사측의 행태는 ‘관심 밖’을 넘어서 ‘무노조 경영’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노총은 이재용 부회장 사과 뒤 ‘문제는 실천’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멀쑥한 쭉정이는 빼고 알맹이를 내 놓으라는 얘기다. 그러나, 속이 빈 강정이 들통 나는 건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삼성디스플레이 노동조합은 말한다.

 

“사측은 공문 상단에 신뢰와 상생을 강조한다. 조금이나마 애사심이 있다면 그럴싸한 거짓 포장은 그만 두었으면 한다. 누군가에 대한 충성심이 아닌 애사심 말이다.”

 

부자의 착함은 무엇을 통해서건 결국 허구의 민낯을 드러내게 된다. 

이은호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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