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말 불어닥친 IMF 외환위기는 노동시장과 노동자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전 산업에 걸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로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리고 본격적으로 비정규직이 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는 부실 대기업의 부도사태로 이어졌다. 1997년 1월 한보그룹이 부도가 나고 1998년 거평그룹, 1999년 대우그룹 등이 부도가 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공식 비공식적으로 200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해 서울역 광장과 일대 지하도는 직장을 잃은 노숙자들로 넘쳐났다.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도 이어졌다. IMF 외환위기 직후 한국중공업, 한국통신, 담배인삼공사, 대한송유관공사 등에 대한 민영화와 인력감축이 이루어졌다. 정규직이 하던 일자리가 외주화 되거나 비정규직으로 대체되었다. 금융산업에 대한 구조조정도 잇따랐다. 경기은행, 충청은행, 동남은행, 대동은행, 동화은행, 보람은행 등이 사라지고 대형은행들이 새로이 생겨났다. 많은 정규직이 떠나고 그 자리에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외환위기 발생 2년 전인 1995년부터 우리나라에 처음 고용보험제도가 도입되었다는 점이다. 고용보험은 1993년 4월 한국노총과 경총의 중앙단위 노사교섭 합의의 산물로 도입된 제도다. 외환위기 이전이었던 당시만 해도 대량해고의 위험이 적어 고용보험제도 도입의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되진 않았지만 한국노총의 요구로 합의문에 들어가게 되었고 93년 12월 국회에서 고용보험법이 제정되어 95년부터 시행된 것이다. 고용보험제도는 IMF 위기상황에서 일자리를 잃고 쓰러진 실직 노동자에게 부족하지만 다시 일어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지금 우리는 IMF 외환위기 23년 만에 전대미문의 코로나19라는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23년 전 위기가 아시아 일부국가와 우리나라에 국한된 위기라면 지금의 위기는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겪고 있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던 코로나19는 이제 경제와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국가 간 사회 간 이동이 줄어들고 사람 간 접촉이 제한되면서 항공, 관광, 숙박, 면세점, 개인서비스업 등이 직접 타격을 입고 있고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무급휴직과 구조조정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코로나사태가 길어지면 IMF 때와 같은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경제위기 때면 늘 그랬던 것처럼 코로나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사회적 대타협’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노총은 이에 대한 총리실 제안을 받고 중집회의 결과에 따라 지도부가 결단을 내려 경사노위 밖에서 열리는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기로 하였고, 마침내 5월 20일 총리공관에서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열렸다. 앞으로 실무회의가 몇 차례 열릴 것이고 노사로부터 다양한 의견들이 제출될 것이다. 사용자단체에서는 어려운 기업에 대한 정부지원과 노동시장 유연화, 각종 규제 완화 등을 들고 나올 것이 분명하다. 한국노총 등 노동계에서는 코로나 위기국면에서 해고금지와 고용보험확대 등을 요구할 것이다. 노사가 지엽적인 이해관계를 넘어 우리와 후손들의 삶을 지키는 갚진 유산을 남긴다는 각오로 회의에 임해야 한다.
지금 코로나19위기의 한가운데서 93년 노-경총 합의로 도입된 고용보험제도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19위기 극복을 위해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고용직과 자영업자,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를 가입시켜 전국민고용보험시대를 구축하자는 국민적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시대는 디지털 플랫폼노동 등 불안전노동이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93년 노-경총 합의가 고용보험제도 도입의 단초를 마련했던 것처럼 이번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사회적 대화’가 ‘전국민고용보험시대’를 여는 결정적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강훈중(한국노총 미디어홍보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