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3일째 사용했는데 괜찮나요?”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의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기에 보건용마스크 재사용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어쩌다 이 질문이 왔는가를 생각해보니 내가 소속된 산업안전보건연구소가 떠올랐다. 아마도 산업안전보건연구소의 이름에 보건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아닐까 생각하며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우리가 담당하는 보건은 일반시민들이 흔히 생각하는 공중위생이나 보건위생이 아닌 산업위생에서의 보건이기 때문이다. 만일 내게 산업용 방진·방독마스크에 대한 질문이 들어왔다면 상세히 설명할 수 있겠지만 이번처럼 전염병으로 인한 보건용 마스크에 관한 질문이 들어오면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없다.
산업현장의 안전보건 전담하여 현업에 종사하는 입장에서는 감염병인 코로나19는 생소한 개념이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등 주기적인 전염병의 대유행이 있었지만 산업안전보건법에 감염병 예방 및 확산방지를 위한 규정은 미비한 실정이다.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전염병에 대응하여 사업장의 안전과 보건을 위해 지속적으로 지침을 만들어서 업데이트하고 있다.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서 지침이 나온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지침 이전에 기본적인 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실정에서 지침이 무슨 소용일까 우려스럽다.
최근 서울 구로구 콜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했다. 콜센터는 협소한 공간에 많은 인원이 상주하며 소음으로 인해 환기를 제대로 못하는 열악한 근무환경을 가지고 있다. 고객의 개인정보 유출우려 때문에 재택근무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마스크와 같은 위생물품은 개인구비를 반강제하고 있는 현실이다.
작업장에서 집단감염사태가 발생하고 나서야 고용노동부는 콜센터 코로나19 대응 예방지침 및 자체 점검표를 내놓았다. 근무 공간 밀집을 최소화하고, 위생 및 청결관리와 의심 증상 발생 시 대처요령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지만, 지침과 현장의 괴리가 크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고용노동부의 지침이 현장에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도 및 점검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야 한다.
지침보다 우선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지침보다 우선할 것은 법이다. 지침은 권고사항이고 법은 언제나 최저기준이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의 규정에서 코로나19에 예방과 확산방지를 정확히 짚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소개 한다.
먼저, 사업주는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쾌적한 작업환경의 조성 및 근로조건 개선하고(산업안전보건법 제5조 1항 2호) 병원체 등에 의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보건조치를 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산업안전보건법 제39조 제1항 제1호). 여기서 말하는 병원체는 바이러스, 세균, 기생충, 리케차, 원생동물 등이다. 사업주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부터 노무를 제공하는 자의 건강을 책임져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사업주는 보호마스크 등 위생물품을 지급하고 착용을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다(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 제8장 제601조 1항 1호).
둘째로 사업주는 감염병, 정신질환 또는 근로로 인하여 병세가 크게 악화될 우려가 있는 질병으로서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질병에 걸린 사람에게는 「의료법」 제2조에 따른 의사의 진단에 따라 근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여야 한다(산업안전보건법 제138조 1항). 이를 바탕으로 사업주는 전염될 우려가 있는 질병에 걸린 사람과 심장·신장·폐 등의 질환이 있는 사람으로서 근로에 의하여 병세가 약화될 우려가 있는 사람의 근로를 금지해야 한다(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220조 1항 1호, 3호).
그러나, 이번 콜센터 집단감염 사태는 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법과 제도가 있어도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마무리하며
코로나19 예방 및 확산방지 대책을 정리하면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 및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병원체 등에 의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보호마스크 등을 지급하며, ▲질병자에 대한 근로를 금지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앞서도 밝혔지만 기본적인 산업안전보건법의 사업주의 의무, 보건조치, 질병자에 대한 근로금지 등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가이드라인과 지침은 아무 소용이 없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충실히 지키고 만전을 기해도 때로는 사람이 죽고 다치고 병든다. 하지만 최저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사람이 죽고 다치고 병든다. 법과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