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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민은 어떻게 선택해야 하나

김성희(정치발전소 이사)

등록일 2020년04월06일 11시15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노동과 로봇
노동과 로봇, 고아가 원래는 같은 의미였다고 말한다면, 모두 약간은 생경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언어학적 사실이다. 현대 유럽인이 쓰는 언어의 뿌리가 되는 고대 인도-유럽어에서 노동과 로봇은 원래 고아(orphan)라는 말에서 나온 파생어이다. 독일어로 노동을 의미하는 ‘아르바이트(Arbeit)’와 인간의 어떤 작업을 대신하는 자동 기계장치를 의미하는 ‘로봇(Robot)’은 중세시대까지는 ‘노예 노동, 또는 노예적 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함께 쓰였다. 부모없는 아이의 비참한 상태에서 노예, 노예노동이라는 말로 변화한 맥락은 복잡한 언어학적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면서 노동과 로봇은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된다. 노예 상태의 노동으로부터 로봇은 아예 인격이 탈각해 버린 기계로 그 의미가 변화한 반면, 노동(Arbeit)은 유럽에서 복지와 정부의 성과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며,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생산자를 의미하는 말로 변화했다. 노동, 로봇, 고아를 둘러싼 언어적 변화과정은 무엇보다 한 단어를 둘러싼 사회적 조건이 그 단어의 지위 자체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좋은 사례가 된다.

 

독일에서 만난 노동
두해 전, 나는 독일의 노조와 정당과의 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베를린을 방문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오늘의 독일에서 노동이 갖는 지위는 특별하고 중요하다. 독일은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해 의사결정의 권리와 책임을 나눠 갖는 공동결정제도, 강력한 산별노조를 바탕으로 안정된 노사관계의 패턴이 정착되어 있는 나라다. 독일에서 공동결정의 원리는 비단 노사관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노조는 의회와 정당,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등 정치적 결정이 내려지는 모든 단위에서 중요하고 능동적인 행위자이다. 한마디로 독일은 대부분의 공적 문제를 노동시민의 결사체인 노조의 동의없이 결정할 수 없는 사회이다. 


당시 인상적이었던 것은 보수정치인들의 노조에 대한 인식이었다. 나는 보수파 집권정당인 기민당의 청년조직(JU, Jungen Union) 중앙간부에게 독일 사회에서 노조가 갖는 이미지와 평판에 대해 물었다. 그는 머뭇거림 없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독일에서 노조에 대해서는 사회 전반적으로 호의적인 인식과 믿음을 갖고 있다. 이미 일하고 있는 중장년층은 물론이지만, 이제 일을 시작한 젊은 사람들도 노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기민당을 지지하는 나의 친구나 당원(기민당원) 등 주변사람들 모두 노조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다.”
 

그의 말 어디에서도 노동 또는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었다. 정치성향에 상관없이 노조의 역할과 권위에 대한 시민들의 동의와 신뢰는 확고해 보였다. 독일 노조의 지도자들을 만났을 때도 노조의 위상을 평가하는 데 자부심이 넘쳤다. “노조는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다양한 자율적 협약과 협상을 통해 독일의 산업정책과 사회경제정책 전반에 필요한 결정권을 행사한다. 따라서 의회와 정당, 내각과의 일상적 협력은 물론이고, 연방선거에서도 기민당과 사민당을 포함해 주요정당의 선거강령 작성에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다”
 

우리가 만난 독일 노조 지도부 대부분은 사민당의 당원이었지만, 노조는 배타적인 지지조직이나 보수정당에 대한 저항조직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한 책임을 가진 공공재라는 분명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동’이라는 단어 속에 묻혀 있는 노예적 상태나 강제 같은 어두운 이미지를 불러올 수 없었다. 내가 독일에서 만난 노동(Arbeit)는 노예나 고아의 후예가 아니라 독일 사회를 이끌어가는 당당한 공동 통치자(co-government)였다.

 

노동시민의 정치적 힘이 좋은 사회를 만든다.   

노조는 노동자의 사회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는 자발적이고 민주적이며 영속적인 노동시민의 결사체로 정의할 수 있다. 또한 노동시민은 한 사회의 경제를 운영하는 가장 중요하며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생산자 집단이자 그 자체로서 경제시민이다. 그러나 이런 의미가 보편적으로 공인 받는 과정은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지위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없이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한국노총 투표독려 포스터

 

흔히 민주주의를 개인의 선택에 맡겨진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선거는 대표적인 ‘개인적 선택’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원자화된 시민들의 선택에만 의존한다면, 결국 돈과 권력자원을 가진 사람들에 의한 지배를 피할 수 없다.


민주주의가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조직적 원리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의 노동자가 개별 시민으로 투표하는 것과 정체성을 공유한 노동자로서 조직적으로 투표에 참여하는 것은 그 정치적 결과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시민을 사회경제적 처지에 기초해 조직하는 가장 대표적이고 강력한 수단은 정당과 노동조합이다. 개개인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시민을 조직해 정치적으로 대표함으로써 돈이나 권력의 크기에 따라 사회가 일방에게 유리하게 쏠리는 것을 막고 정치적 균형을 잡는다.

 

총선이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복잡하게 바뀐 선거제도, 맥락을 할 수 없는 위성정당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들 스스로를 적대하게 만드는 적대적 정치갈등이 지배하는 가운데 우리는 주권자의 평결을 내려야 한다. 아마 많은 노동시민들이 투표장 앞에서 번민하게 될 것이다. 혹은 정치는 믿을 것이 못된다며 선거를 외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택을 위해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노동시민의 정치적 힘없이 좋은 사회와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415총선 #조직투표 #노동 #로봇 #독일정치 #노동자 #한국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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