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아성 미국도 사회주의가 맹렬했던 시절이 있었다. 노조 운동가로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을 만든 유진 뎁스(1855~1926)가 살았던 때가 그랬다. 뎁스는 미국사회주의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다섯 번이나 출마했다. 1900년 0.63%, 1904년 2.98%, 1908년 2.83%, 1912년 5.99%, 1920년 3.41%가 그의 초라한 성적표다. 뎁스가 주도해 1901년 창당된 미국사회주의당은 1972년 해산했다. 그의 마지막 대선 출마는 감옥에서 이뤄졌는데 미국의 1차 세계 대전 참전에 반대하고 비난해 간첩법 위반으로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뎁스는 프랑스 이민자의 아들이었다. 14살에 고등학교를 나와 하루 50센트를 받고 화물트럭 기름을 닦는 일로 노동 세계를 시작했다. 이후 잡화상에서 일하던 뎁스는 1875년 기관차 화부 조합에 가입하면서 노동조합에 첫 발을 내딛고, 이후 경력을 쌓아 1893년 미국 최초의 산업별노조라 여겨지는 미국철도노조(American Railway Union)를 조직한다. 이듬해 풀만 기차 제작사 파업을 주도하면서 범법자이자 인류의 적이라는 비난을 <뉴욕 타임스>로부터 받았다. 노동자 8만 명이 참여한 이 파업을 파괴하기 위해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육군을 동원해야 했다. 노동자 12명이 살해당했고, 수천 명이 블랙리스트에 올랐으며, 뎁스는 투옥됐다.
감옥은 그를 사회주의자로 만들었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비롯해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분석하고 새로운 사회의 대안을 모색한 책들을 읽었다. 1895년 석방되면서 사회주의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뎁스의 주도 하에 1905년 출범한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은 산업별노조운동에 일반노조운동을 결합한 노선을 취했으며, 목표는 거대 단일 노조(One Big Union)를 만드는 것이었다. 단일한 사회 계급인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본주의와 임금 노동을 산업 민주주의로 대체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시카고에 본부를 둔 IWW는 규모는 작고 영향력은 미미하지만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
하딩 대통령의 감형으로 1921년 성탄절 특사로 자유를 얻은 뎁스를 보러 5만 명이 모였다. 1924년에 노벨평화상 후보에 추천되기도 했다. 1926년 10월 일리노이에서 심장마비로 일흔에 죽었다. 미국 좌파 1세대였고, 사회주의 운동의 선구자였다. 지금도 그는 미국에서 도시 이름으로, 방송국 이름으로, 대학 기관의 이름으로, 맥주의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다.
사진은 191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의 포스터다. 대통령 후보 유진 뎁스, 부통령 후보 에밀 사이델(1864~1947). 노동자여 투표함 앞에서 단결하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