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제 북한 과학기술정책사 전공, 북한과학기술연구센터 소장,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자립경제를 지향하는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발전 전략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생산의 핵심 요소들을 외부로부터 끌어올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과학기술을 통한 혁신’은 경제발전 전략에서 절대적인 자리를 차지해야만 한다.
김정은 시대 들어서 북한의 과학기술에 대해 좀 더 주목하게 된 까닭은 유례없는 첨단 무기의 시연(demonstration)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도 미사일 기술의 최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연이어 공개하였다. 이 미사일을 자력으로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지구상에 10여 개 정도뿐이라는 것만 고려하여도 그 수준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의 첨단무기 시연은 2017년 11월 29일에 일단락되었다. 6차에 걸친 핵시험을 통해 수소탄은 물론 이를 운용할 시스템까지 갖춘 상태에서 ‘화성-15형’이라는 이름의 ICBM을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하였다. 이를 기점을 평창 올림픽 참가를 선언하는 등 평화 프로세스를 모색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급기야 2018년 4월 전원회의에서는 2013년에 채택한 ‘경제-핵' 병진노선을 ‘경제 총력 집중’ 노선으로 변경하였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과학기술’은 2017년 11월 핵무력 완성 이전의 ‘과학기술’과 다른 의미를 가진다. 핵무력 완성 이전에는 국방 관련 과학기술이 일상생활과 관련된 과학기술과 확연히 구분되어 있었는데, 이제 두 영역의 칸막이가 열리면서 국방 관련 과학기술까지 모두 민수 영역에서 활용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민수/군수 구분하지 말고 경제발전위해 모든 것을 집중하자는 결정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발전 전략의 핵심, 스핀오프
과학기술 자체는 좌, 우 구분이 없다. 민수와 군수의 구분도 없다. 사람이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현대 문명을 구성하는 첨단기술들 중에서 군수용으로 개발되었다가 이후 민수용으로 활용된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를 ‘spin-off’ 혹은 ‘spin-over’라고 한다.) 물론 북한도 이러한 발전 전략을 1990년대 후반부터 마련하고 있었다. ‘국방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자는 전략이 선군경제노선이라는 이름으로 수립되었던 것이다.
국방공업을 앞세워 전쟁의 위험을 방지하고, 동시에 여기서 획득한 첨단 과학기술을 민수(경공업, 농업)로 이전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에서 ‘화성-15형’은 핵무력의 완성을 뜻함과 동시에 스핀오프의 본격화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스핀오프 전략은 단순한 과학기술의 이전만 뜻하는 게 아니다. 군수 영역에서 확보하고 있던 고급 과학기술자(인력)와 설비, 자원, 자금 등을 이전하는 것까지 포괄한다. 특히 자원의 상당 부분을 국방 부문에서 보유하고 있는 북한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스핀오프의 효과는 기대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다. ‘북한식 개방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북한의 정책적 방향은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한 ‘혁신체계 구축’과 ‘과학기술 교육’이 되고 있다. 이제 인도적 지원이나 노동력 위주의 경제활동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남북 교류협력도 이전 시기와 달라져야 한다. 고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주도 산업’이나 정치적 부담이 적은 ‘과학기술 교육’이 중심에 놓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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