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영 매일노동뉴스 기자
원래 국회라는 게 정쟁을 빼고 말할 수 없지만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가 진행 중인 현재까지도 민생을 위한 심도 깊은 고민과 열띤 토론은 보이지 않는다. 정쟁을 위한 정쟁만 난무하다.
올해만 놓고 봐도 2월 청와대의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임명 강행으로 국회가 파행되기 시작하더니 정치·사법 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등으로 국회가 제대로 열리지도, 제 역할을 하지도 못했다.
사실 국회 파행은 노동계에 그리 나쁜 상황만은 아니었다. 지난해 주 최대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노동제 시행 이후 재계와 정치권은 현장의 혼란 완화를 주장하며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를 추진해 왔고, 실제 여야가 이에 합의까지 했다.
올해 초부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가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고도 제도를 개편해 인상효과를 떨어뜨린 정부·여당이지만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는 마지노선이었다. 이미 주 52시간제를 시행하며 연착륙 정책을 펴왔다.
그러나 보수야당은 달랐다. 이참에 선택적 근로시간제·재량근로제 등 다른 유연근로제를 함께 논의하자고 달려들었다. 자유한국당은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현행 1개월)을 최대 1년, 바른미래당은 3개월로 확대하자고 주장했다. 여당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가 도출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합의안(3개월→6개월)을 존중해야 한다고 맞섰다.
정부·여당이 경사노위 노동시간제도개선위 합의안을 고수하는 한 국회 합의는 불가능했고, 이에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는 올해 내내 환노위 논의 테이블에 올랐지만 협상의 진전을 보기 어려웠다. 쟁점 없는 민생법안부터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여야 정쟁 속에 이 역시 쉽지 않았다.
그런데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에는 탄력근로제보다 더 큰 노동현안이 기다리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이다. 올해 초부터 환노위에서는 ‘6월 전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20대 국회에서 ILO 기본협약 비준은 물 건너간다’는 말이 나돌았다. 이도 그럴 것이 이미 국회는 여름부터 내년 총선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제기된 각종 의혹의 진실여부를 떠나 보수야당이 사활을 걸고 조국 법무부 장관을 반대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ILO 기본협약 비준은 보수야당으로서 결단코 합의할 수 없는 사안이다. 정부·여당에 성과를 만들어주는 꼴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ILO 기본협약 비준 논의는 불가피하다. 이에 보수야당은 ‘노동법 패러다임 전환’을 내걸고 사용자측 숙원과제를 ILO 기본협약 비준 논의 테이블에 올려 관철시키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최근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 및 노동법의 패러다임 전환 대토론회’를 열고 “ILO 핵심협약(기본협약) 비준만이 아니라 노동개혁 차원에서 전반적인 노동법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면 해직자나 실업자가 노조간부로 활동해 정치파업이 일상화하고 불법점거·물리적 강압 등의 투쟁적 노동운동 관행과 결합해 노사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으니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확대하고 파업기간 대체근로를 전면 허용하자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 9월 24일 국무회의에서 ILO 기본협약 비준안을 의결했다.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노조의 자유로운 구성을 보장하며 노조가입으로 인한 불이익을 막자는 것이 ILO 기본협약의 핵심내용이다. 정부는 비준안과 함께 관련 노동관계법 개정도 동시에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보수야당의 맞대응성 법안이 발의된 상태에서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논의하는 자리가 정쟁과 주고받기 식의 협상의 장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이 정부가 내세운 노동존중 사회를 위해 20대 국회가 민생을 위한 심도 깊은 고민과 열띤 토론으로 노동기본권 보장이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