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목 한국노총 정책본부 차장
2019년 8월 30일 경사노위 ‘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보장 특별위원회’(이하 연금개혁특위)가 종료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노총은 연금개혁특위의 설치를 제안하였고 의제 도출, 막판 협상까지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연금개혁특위의 출발과 과정이 어떠했는지, 한국노총이 연금개혁특위에서 주장한 내용과 이유, 그 결과와 앞으로 연금개혁의 미래와 관련된 이야기를 조합원들과 나누고자 한다.
국민연금개혁을 위한 한국노총의 특위설치 제안
국민연금은 법으로 5년마다 재정계산을 시행함으로서 재정상태를 점검하는 동시에 제도와 기금운용상 필요한 조치들이 무엇인지 도출하는 과정을 반드시 행정부가 수행하도록 명시되어 있으며, 이에 보건복지부는 제4차 재정계산결과를 2018년 발표하였다. 이번 연금개혁은 이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이 상당히 중요한 의제임에도 불구하고 최종안이 아닌 초안형태의 보고서를 유출, 7월 말부터 언론에 퍼지는 등 과정관리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이 발단이었다. 사실확인 없이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가 이어졌고, 국민들은 정확하지 않은 내용을 언론으로부터 접하면서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의지’였다. 전문가들에게 1년여 간의 논의를 하도록 맡겨놓고서 정부 스스로 어떤 범위의 내용들을 제도개선안에 담아갈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전 국민의 노후가 달린 문제로 전문가 의견청취로 한정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에 국민의견수렴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계획 또한 전무하였다.
이후 대통령이 나서자1) 논란이 사그라드는 듯 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었다. 국민연금개혁을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의지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노동시민사회가 정부의 적극적 의지가 결여된 점을 비판하면서 국민연금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 설치를 주장하였지만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의 비판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국회는 2020년 총선을 앞두고 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기에 한국노총은 2018년 9월 ‘연금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 설치’를 제안하였다. 경사노위에 특별위원회 형태의 위원회를 설치하고 노사정과 시민사회가 함께 모여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정부가 이를 수용하며 9월말부터 국민연금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 발족이 준비되었다. 연금개혁에 대한 논란이 시작된 지 2개월만의 일이었다.
1) 국민연금에 대한 악의적 언론보도행태 등으로 인해 국민여론 악화를 조기에 진화하기 위해 대통령 나서서 직접 이와 관련된 두 번의 언급이 있었다. 8월 13일 “국민연금 문제로 여론이 들끓는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일부 보도대로라면 대통령이 보기에도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8월 23일 “국민연금의 주인은 국민이므로 국민연금 제도개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입니다.
국회에서도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치게 되겠지만 정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여론을 폭넒게 수렴해주길 바랍니다.”가 바로 그것이었다.
불안한 출발과 논의경과
국민연금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 설치가 쉽지 않았던 만큼 출발 또한 매우 불안하였다. 특위 구성과 의제와 관련된 논란이 상당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위원장 개인자격의 제안으로 노동자와 사용자를 대표하는 단체들이 각각 2개씩 들어와 있다는 것에 대해 ‘기성세대만을 대표할 수 없다’며 미래세대를 대표할 수 있는 청년위원을 ‘2인’으로 하여야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부터 상당한 논란이 되었다.
게다가 2개 단체 중 하나는 특정단체가 반드시 들어와야 청년을 대표할 수 있다는, 기존 노사정 모두 동의하기 힘든 근거를 제시하였다.
당시 양대노총과 사용자단체 모두 상당한 문제제기를 하였으나 결국 위원장이 이를 강행하였다.
위원구성과 관련된 부분은 어느 정도 양해를 하였지만, 논의의제와 관련해서는 출발뿐만 아니라 특위 내내 여러 방향의 논란으로 이어졌다.
국민연금개혁에 관한 논란이 상당하기 때문에 국민연금개혁을 가장 우선에 두자는 노사의 초기 주장에도 불구하고 기초연금, 퇴직연금을 동일한 비교선상에서 다루어야한다는 식의 문제제기도 있었다.
국민연금의 노후보장기능과 재정안정화, 사각지대 해소 등 다양한 논의가 훨씬 더 집중되어도 모자랄 판에 다른 의제까지 겹치게 될 경우 6개월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논의를 마무리 할 수 없다는 판단아래 국민연금이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논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노동계가 강하게 주장하였다. 이는 결국 끝까지 관철되었으나, 논의과정에서 관련된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의제에서 이렇게 첨예한 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국민연금 개혁의 역사가 그동안 ‘재정안정화론에 기반한 공적연금 축소’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서구에 역사에 비해 도입시기가 짧은 국민연금은 30년 동안 ‘축소의 연금정치’로 인해 사실상 제대로 빈곤방지기능을 할 수 없는 제도로 점차 악화되었다.
그동안 국민연금의 개혁과정은 말 그대로 ‘재정안정화’에만 방점을 찍어 소득대체율만을 깎아 노후의 빈곤방지기능이라는 내용은 완전히 무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2018년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 핵심요구안 해설자료 中 국민연금개혁 부분
- 국민연금을 연금답게! : 명목소득대체율 50% 확보
- 국민에게 신뢰받는 국민연금을! : 국가지급보장 명문화
- 재정적 지속가능성 확보! : 적정한 단계적 보험료율 인상
- 모든 국민을 위한 국민연금으로! : 특수고용노동자 사업장가입자 전환 등 사각지대 해소, 출산, 군복무 등에 대한 크레딧 확대, 중소상공인을 위한 영세자영업자 사회보험료 지원제도 도입, 저임금노동자를 위한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 확대
- 소득공백 방지를 위한 법정 정년과 연금 수급연령 일치, 보험료 부과상한액 기준 인상 등
이러한 흐름을 이번 기회를 모멘텀으로 삼자는 노동시민사회의 요구는 수년 전부터 지속되고 있었다.
공적연금이 점진적으로 확대되어야 전국민의 노후를 사적연금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으며, 다소 불안정한 기초연금의 제도적 구성에 기대할 수 없는 부분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단 국민연금을 점차 확대하면서 기초연금으로 공적연금 전반을 보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8년 11월 전국노동자대회에서부터 공식적으로 주장한 한국노총의 연금개혁안은 이러한 노동시민사회진영의 인식과 그 궤를 같이 한다.
국민연금중심의 공적연금강화를 주장한 이유
일부 진보언론과 보수경제지를 중심으로 한국노총의 ‘국민연금중심의 공적연금강화’를 정규직 내지 중산층의 복지이기주의로 표명한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들의 주장은 국민연금의 장기재정전망을 살펴보면 현재의 소득대체율 및 보험료율이 2057년 기금소진으로 이어진다는 전망에 기초하여 모든 것을 판단한다.
①급속한 인구고령화가 예상되는 한국사회의 조건을 고려하였을 때 향후 70년간 국민연금기금을 유지하기 위해 보험료율을 18%~20%까지 당장 올려야한다는 것, ②국민연금이 사실상 개혁되기 어려울 것이기에 결국 기초연금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소득을 50만 원 가량 보장해줘야 노후소득보장이 가능하다는 것, ③국민연금제도 자체가 정규직 중심으로 짜여있어서 평등한 급여구조를 갖고 있는 기초연금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가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으로 내세운다.
이러한 주장이 언뜻 보기에는 굉장히 논리적인 것 같지만 사실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첫째, 일단 한국노총이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동시에 조정하자고 주장한 이유는 국민연금으로 적정한 노후소득을 보장한다는 조건을 내세워야 실제 노인빈곤율 해소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으며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올릴 수 있다는 판단이 생겼기 때문이다. 재정안정화론자들과는 반대로 점진적인 방식만이 정치적으로도 수용가능하고 실제 경제구조에 주는 충격을 줄일 수 있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실제 특위 논의과정에서 한국노총의이 제안한 ‘소득대체율 및 보험료율 점진적 인상(안)’2)은 노후소득도 조금씩 증가하며 기금소진시점도 6~7년 연장될 수 있어 현 시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개혁방안이라 할 수 있었다. 재정안정화론자들이 언급하는 것처럼 단순히 계산기를 두드려서 나온 보험료율 18~20%는 숫자로서는 그럴싸하지만 국민들이 정치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수준이다.
더불어 이렇게 보험료율을 급격하게 올리는 경우 가계가처분소득이 급격히 위축되어 소비가 부진해지는 문제가 있다.
이 또한 판단기준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보험료율의 급진적 인상은 지금도 국민경제규모에 비하면 상당히 막대하다고 평가되는 국민연금기금규모 훨씬 더 키우게 되기에 안정적 운용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계산기 너머에 존재하는 현실에서 절대 수용할 수 없는 방안이 바로 재정안정화론자들의 주장, 즉 급격한 보험료율 인상이었다.
둘째, 기초연금으로 50만 원씩 보장하는 방식이 노후빈곤해소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러한 방식은 말은 쉽지만 실제 실현되기 매우 어려우며 한계점이 명확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일단 기초연금은 2021년까지 30만 원으로 점차적으로 인상하기로 정부계획이 수립되어 있다.
급여액 확대가 예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초연금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수급범위가 노인가구 소득하위 70%로 한정되어있으며 실질지급률은 이를 하회하고 있는 상황이라 사실상 보편적 급여로서의 성격이 약하며, ②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의 경우 자체 재정부담여력이 부족하여 기초연금지급으로 인해 기타복지를 줄여야한다는 문제가 지역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③또한 박근혜정부의 개악이라 할 수 있는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연계하여 그 기간이 길수록 기초연금수급액을 깎는 장치는 여전히 못 대고 있다.
④더불어 ‘물가연동방식’으로 설정해놓았기 때문에 매년 실질급여수준이 하락하는 문제도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선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저 기초연금액만 올리기만 하면 만사형통일까?
게다가 기초연금 50만 원으로는 상대빈곤율로 측정되는 노인가구빈곤율 해소에는 중장기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통계적으로 밝혀졌기에3) 참으로 난처한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소위 국민연금이 정규직 중심 제도이기에 노후불평등을 심화시키며 후세대부담이 막대하기 때문에 오히려 기초연금 중심으로 공적연금을 강화해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또한 제도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나온 이야기이다.
사실상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하는, 혹은 충분히 가입하지 못하는 계층의 문제는 분절적 노동시장 혹은 노동시장 내 성별임금격차 내지 성별 직군분리 등으로부터 파생되는 것인데, 국민연금 제도만으로는 이를 해소할 수 없다. 즉, 노동시장구조의 문제를 연금으로 끌어오기 시작하면 필요한 재원은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국노총은 크레딧제도를 강화하고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사업장 가입자로 들어올 수 있도록 유도하여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면서, 보험료지원사업을 통해 가입을 최대한 유도하여 사회통합적인 제도로 발전시키자는 것이 입장이었다. 만일 노동계가 진심으로 ‘정규직 이기주의’를 발휘하고 싶었다면 연금개혁특위에서 국민연금보다는 퇴직연금을 발전시키자고 제안했을 것이다.
게다가 기초연금 50만 원 확대라는 주장 또한 동일한 맥락선상에서 보면 똑같은, 아니 어쩌면 더 큰 후세대부담이다. 국민연금은 보험료라는 기반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나마 보험료율을 점진적으로 높이고 부과체계를 손보는 등의 조치를 취하여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여지가 많다.
하지만 기초연금은 그냥 일반조세로부터 재원을 끌어오는 것이다. 기초연금 또한 노인인구가 많아지면서 그 재정적 부담이 상당해지기 때문에 과연 미래세대4)가 이를 수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들 또한 ‘퍼주기식 복지’라며 비난할 여지가 다분하다.
2) 2028년까지 40%까지 하락하는 소득대체율을 중단하여 45%로 유지하고, 10여년 간 3%p의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인상하여 12%로 만든다는 안이었다.
3) 주은선 외(2017) “국민연금 급여 적절성 개념 재검토”, 『국민연금의 발전적 재구성』,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pp.9~85.
4) 이 미래세대에 대한 용어도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다. 재정안정화론자들은 현재 태어나지도 않는 세대에 대한 불합리를 강조하지만, 현재 청년세대에 대한 충분한 제도적 보장 내지 정책적 지원 없이 미래세대는 존재할 수 없다.
경영계의 몽니로 귀결된 사회적 합의 실패와 예상되는 연금개혁의 미래
총 17차례의 전체회의와 1차례 워크숍, 수차례의 실무협의회 및 간사단회의를 통해 한국노총은 참여한 시민사회진영은 국민연금 중심의 공적연금 강화를 끈질기게 주장했다.
하지만 경영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금개혁과 관련된 아무런 제안을 하지 않았고, 노동시민사회단체의 제안에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면서 아무 것도 하기 싫다는 뉘앙스를 나타내며 논의를 종결시켰다.
소위 ‘몽니’를 부린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보험료율을 못 올리겠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한국노총이 제안한 보험료율 조정은 1년마다 평균적으로 총 7,200원 가량 보험료가 올라가는 구조이기에 기업은 피고용인 1인당 3,600원만 더 부담하면 될 일이다.
그만큼 국민들의 노후소득이 6~8만 원 가량 오를텐데, 노인가구의 소비성향상 내수진작에 도움이 되는 소비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민연금확대가 미래 기업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설득을 했지만 단기적 시야에 갇힌 사용자단체는 꿈쩍하지 않았다.
도리어 퇴직연금 일부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넣자는 ‘퇴직금전환금’ 제도를 시행하자는 한 공익위원의 발언에 마치 이를 동의하는 것처럼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공식적인 제안이냐고 재차 질문하자 그냥 ‘검토해 볼 수 있다’ 정도로 발뺌하기도 했다. 사용자를 대표하는 단체에서 무책임한 행보를 보였기에 특위는 합의불발로 이어진 것이다.
노동시민사회의 개혁방안은 다수안으로, 사용자단체의 현행유지안은 소수안으로 정리되면서 합의는 불발되었다.
문제는 우리의 노후는 더욱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국회는 여전히 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야대립을 핑계 삼아 차일피일 법률안개정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정부 또한 국회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핑계로 뒷짐 지고 있는 상황이다.
노사정 및 시민사회가 거의 1년여 간 논의한 결과를 정치권에서 검토조차 안하는 지금 이 상황은 우리의 노후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치가 나서서 사회적 대화의 결과를 검토하고 연금개혁을 시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금을 둘러싼 국민들의 불신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