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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재벌에게 다시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국민과 가입자의 꾸준한 감시가 중요하다

등록일 2019년09월06일 13시59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김정목 한국노총 정책본부 차장

 

지난 7월 15일, 참여연대에서 의미 있는 보고서 하나를 발표했습니다. 2016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의 ‘합병비율’이 핵심이었는데, 그 근거가 되는 자료들이 상당부분 조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자신의 그룹 승계작업에 이로운 조건을 얻기 위해서 최순실 등에 뇌물을 주면서 이러한 조작을 추진했고, 이로 인해 국민연금이 적게는 3,343억 원, 많게는 6,033억 원까지 손해를 봤다는 것입니다.

 

이때 당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살펴보고, 이러한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2016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의미

2016년으로 시계를 거꾸로 돌려봤을 때 많은 국민들의 머릿속에서 기억되고 있는 상황이 아마 ‘박근혜-최순실’ 사태일 겁니다. 당시 삼성도 이러한 사태에 한 몫(?) 했습니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 씨의 승마에 대한 지원을 삼성 측에서 나서서 했다는 것이 밝혀졌었죠. 당시 정유라의 승마를 지원하기 위해 삼성은 말 3마리 구입비 34억 원, 동계스포츠영재센터 16억 원 등을 포함해 총 87여억 원을 지원한 바 있습니다. 도대체 ‘삼성이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에 대한 이유도 함께 밝혀졌는데요. 바로 이재용의 ‘삼성그룹 승계작업’ 때문이었습니다.


삼성그룹은 언론에서 많이 다루어진 것처럼 순환출자 형태로 복잡한 지배구조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지분을 상당히 작은 규모로 갖고 있는 이재용 측이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한 그룹 지배구조를 가져갈 수 있도록 계열사 간 합병을 추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기조로 치밀하게 준비하여 실행된 것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었습니다.


시장에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상당히 부정적 평가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국민연금도 2014년 내부보고서를 작성하였는데, 제일모직의 주요사업부문을 두고 성장성이 높지 않고 5% 전후의 저마진 지속으로 인해 수익성은 낮은 편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이처럼 상당히 부정적인 평가를 뒤집기 위해 삼성은 다각도의 방법을 공세적으로 펼쳤습니다.


대표적으로 당시 안진회계법인의 사실상 조작에 가까운 보고서가 이에 해당합니다. 당시 개별기업 간 합병비율을 산정했던 안진회계법인도 실체가 없는 바이오사업부에 대한 평가 및 삼성바이오 콜옵션 부채 누락 등을 통해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는 한편, 현금성 자산 1조 7,500억 원 누락 등을 통해 삼성물산 자산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등의 조작에 기여한 바도 밝혀졌습니다. 이와 같은 전 방위적 노력(?)으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비율 산정(제일모직 1 : 삼성물산 0.35)이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결국 당시 주주총회에서 조작에 근거한 합병비율을 그대로 설정한 상태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성사되었고, 이로 인해 삼성물산에 상당한 주식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이재용은 합병을 통해 그룹 지배구조 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커진 삼성물산의 주식 16.5%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이를 통해 이재용 부회장은 최대 4조 1,000억 원 가량의 부당이득을 얻었다고 참여연대는 밝혔습니다. 삼성그룹의 이재용 승계작업이 가속화되는 단계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주총회에서 최대관심사는 ‘국민연금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였습니다.

 

국민연금은 어떻게 이용당하였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당시 국민연금은 이미 내부보고서를 통해 제일모직에 대한 평가를 상당히 좋지 않게 하고 있었습니다. 국민연금은 당시 삼성물산에 상당한 지분(11.61%)을 소유하고 있었던 터라, 안진회계법인이 조작한 것처럼 사실상 삼성물산이 저평가된다면 합병으로 인해 주식가치의 상당한 손해를 보는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국민연금은 합병에 반대하는 것이 합리적이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상식에 반하는 결정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바로 승마지원을 받은 최순실이 박근혜를 이용, 당시 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에 합병을 종용하는 지시를 내렸다는 겁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같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상당한 파급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 의결권행사에 대해서는 국민연금공단 및 기금운용본부가 자체적인 판단으로 결정하기 매우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통상적으로 외부전문가를 중심으로 구성된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산하 (당시)‘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서 전문적이고 종합적인 검토를 수행하여 판단해온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당시 청와대의 지시를 받은 문형표 前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前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장은 이러한 관례를 거치면 분명히 합병 반대를 결정하게 될 것을 뻔히 알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돌파구 마련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가 아니라 내부의 투자위원회를 개최하여 합병 찬성을 임의로 결정하였습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이 과정에서 기금운용본부 내부직원이 내부보고서를 조작하여 작성하였고 이 보고서가 당시 이용되었다는 사실도 밝혀졌죠.


시장에서는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던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하여 합병무산이 수순이라고 판단되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치와 권력이 결탁한 비민주적 지시, 그리고 조작된 근거 등을 통해 국민연금은 주주총회를 앞두고 찬성으로 돌아섰습니다. 참여연대가 7월 15일 기자회견 당시 제시한 바에 따르면 이 사태로 인해 국민연금은 약 4,868억 원의 손해를 보았다고 합니다. 국민연금이 만약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졌다면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에 참으로 안타까운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과 가입자의 꾸준한 감시가 중요하다

국민연금이 재벌과 정치권력에 의해 전횡된 이 문제를 어떻게 덮어두고 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7월 2일 한국노총이 참여하고 있는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함께 삼성물산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민연금에 끼친 손해에 대해 국가가 직접 나서서 손해배상을 청구하라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진행하였습니다.

 

약 보름간 진행된 국민청원인 모집에 7천여 명의 시민들이 이러한 취지에 동의해주었고, 보건복지부에 손해배상 청구 청원에 대한 의견도 전달하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즉각 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보건복지부는 관련된 대법원 판결 이후에 조치를 취하겠다는 다소 유보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민연금기금은 지금 700조 가까운 적립금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더욱 그 규모가 커질 텐데요. 과연 제대로 된 운용이 되고 있는지 국민과 노동자가 함께 감시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국민연금기금이 다시는 재벌의 손아귀에 놀아나지 않도록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가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지켜봐야합니다. 우리 한국노총 회원조합 동지들이 앞장서서 가입자로서 한 번씩 감시의 눈을 치켜떠주시면 국민연금이 더욱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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