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자영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일하는 여성의 삶에 희망이 되고 있는가? OECD 국가 중 낮은 우리나라 여성 고용률 수준은 전반적인 고용 상황이 녹록치 않은 탓이지 노동자로서의 여성의 정체성이 흐릿해서가 아니다. 노동자가 되고 싶고 되어야 하는 여성들의 열망과 현실은 경제성장과 경제민주화 담론 속에서 외면되고 주변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출산·육아기 여성의 노동시장 이탈과 비정규직 근로자로서의 재취업은 반듯한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여성의 노동시장에서의 지위를 재생산한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그것과 여성의 일하는 삶에 분명하게 더 나은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유명무실하거나 철저히 배제되거나 왜곡된 성희롱, 성차별, 성별임금격차, 비정규직 여성 노동 등의 이슈가 적어도 의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적어도 여성을 이차 소득자로 규정하는 채용형 시간제 일자리를 엄청난 예산을 배정하며 장려하고 있지 않다. 노동시장에서의 기회와 결과의 성별 격차의 원인으로 출산·육아·가족 책임뿐만 아니라 성희롱·성차별 등에 주목하고 대응하려고 한다. 여성의 낮은 고용률이나 경력 단절을 여성이 처한 개인과 가족의 환경에서 찾았다면, 성별임금격차와 채용 상 성차별이 여성의 경력 유지의 조건과 의지를 얼마나 무력화하고 있는지 이슈화하고 대책을 마련하고자 시도했다. 물론 문재인 정부 들어 가열차게 전개된 미투 운동이 계기가 되어 성희롱, 성폭력 등 은폐되어 있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고, 정부가 이와 관련하여 상당히 적극적으로 노동시장 성평등 정책을 편 것 같은 착시 효과가 있었던 것을 인정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표방한 노동정책의 수혜자에서 여성이 밀려 나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표방한 개인의 선언이 구호에 그치게 되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 장시간 근로환경 개선, 임금 불평등 해소 정책은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여 노동존중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이 노동존중 사회는 여성의 경제활동을 저해했던 원인을 해소한다는 점에서 노동시장에서의 성평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여성의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로 가고 있는가. 이 글은 여성 고용의 전반적 실태와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여성 고용에 갖는 함의를 평가하고, 여성 고용에 대한 노조의 대응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2008년 외환위기 이후 여성의 경제활동에는 양적으로 획기적인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남성의 경제활동참여는 다소 둔화되는 양상을 보이지만, 여성의 경우는 2012년 이후부터 지속적인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남성은 2008년 73.8%에서 2018년 73.7%로 경제활동참여율의 변화가 거의 없으나 여성은 2008년 50.2%에서 2018년 52.9%로 2.7%p 증가하였다.
20·3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여가 현격하게 증가하고 있지만, 생애주기별 여성 고용의 특징인 연령별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을 보여주는 M커브가 시작되는 구간은 30대부터이며 저점을 보이는 구간도 35~39세로 양상의 차이가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완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M커브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여성의 경력 손실과 그에 따른 성별임금격차와 승진 장애가 엄존함을 예측하게 한다.
2018년 현재 남녀 근속기간은 남성 7.4년, 여성 4.9년으로 2014년 남성 6.9년 여성 4.5에 비해 남녀 모두 증가했다. 지난 정부에서 여성고용 대책은 여성의 경력단절을 예방하여 경력을 유지할 수 있는 지원 방안을 촘촘히 생애주기별로 제시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남성보다 여성의 근속기간이 더 두드러지게 증가한 것 같지는 않다.
노동자들이 평균적으로 일하는 시간은 과거보다 대폭 줄어들 것이다. 주당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이 여성 고용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 것인지 예단할 수는 없다.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과 2018년 사이 초과 근로시간은 그 이전 시기보다 더 많이 감소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연장 근로 빈도가 빈번하지 않지만, 업종 특성에 따라 일부 여성의 장시간 근로가 존재한다. 주당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제도 도입 이후에도 ‘특례업종’으로 남은 보건업은 여성집중 직종이다. 다른 한편 여성이 수행하는 노동은 전보다 더 불안정성을 드러내고 있다. 15시간 미만 실제로 일한 근로자는 2014년 3.2%에서 2018년 4.2%로 증가했다.
15시간 미만 근로자는 주로 여성(73.3%) 임금근로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보건 및 사회복지서비스업(31.2%)과 공공행정(18.8%), 교육서비스업(12.7%)에 종사하고 있다. 초단시간 근로의 가장 큰 문제가 생계 미보장 수준의 소득과 사회 안전망에서 배제라는 점에서, 초단시간을 양산하는 초단시간 근로에 대해 사회보험 가입과 주휴 수당 지급 의무를 면제하는 제도적 요인과 일방적 휴게시간 부여 등 사용자의 불법적 꼼수는 없는지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요양보호사 등 공공부문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초단시간 일자리 증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민간부문 초단시간 일자리에는 미조직된 노동자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어 조직화 문제도 시급하다. 초단시간과 플랫폼 노동자와 같이 근로시간과 고용형태에서 다양한 일자리를 갖는 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서, 노조는 전일제 노동자를 모델로 하여 고용 안정과 사회적 보호를 강화하는 대응 방식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을 감소하기 위해 정규직 전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 기준 비정규직의 비율은 남성은 2009년 이후 완화되고 있으나, 여성은 2014년 이후 완만한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9~2017년까지 남성 비정규직은 임금근로자의 28.1%에서 26.3%로 감소했지만, 여성 비정규직은 2009년 임금근로자의 44.0%에서 2014년 39.9%, 2017년 41.2%로 증가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는, 여성 상당수가 전환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가 실시한 비정규직 특별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6월 현재 공공부문 총인원은 217만명으로, 이 중 비정규직은 전체의 19.2%인 41.6만명(기간제 24.6만 명, 파견·용역 17.0만 명)이다. 이들 중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하기로 한 대표 집단은 60세 이상(54천 명)과 교·강사(34천 명)인데, 교육서비스업의 여성 비중이 높다고 볼 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서 배제되는 다수가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 전환되더라도 자회사 등 간접고용과 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형태로 전환되면서 일자리의 질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3단계 민간위탁 부문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정부가 책임 있는 태도를 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3단계 민간위탁 정규직화는 여성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이집, 사회복지관, 아이돌봄, 치매안심센터 등 사회복지사무가 47.2%(4,769개)로 가장 많다. 여성 노동자가 집중 고용되어 있는 사회서비스 부문 전달체계의 근본적 개편 없이는 사회서비스 부문 민간 위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에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정부는 정책 결정 당사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소관 부처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정부가 민간위탁은 공공서비스 정책 수행 방식의 변경에 관한 정책적 결정이라고 밝힌 이상,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와 도전이 필요하다. 사회서비스 직종은 대부분 여성이 집중되어 있으며, 여성 노동자가 다수인 직종은 주된 생계부양자가 아니라는 성별 고정관념이 작동하여 정규직화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릴 위험이 상존한다. 서비스 중심 산업구조에서 사회서비스는 여성 일자리의 미래이며, 주체적 노동자 지위와 역할에 부합할 수 있도록 사회서비스 일자리의 질을 개선시켜야 한다. 정부가 민간에 위탁하는 사회서비스 일자리는 대부분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핵심적인 정책 수요가 있다. 사회서비스 일자리는 공공부문 정규직화의 원칙 가운데 하나인 ‘생명’과 ‘안전’을 담당하는 노동이다. 사람을 키우고 돌보고 가르쳐 노동력으로 만드는 노동은 생명을 재생산하는 노동에 다름 아니다. 노조는 저출산 고령화 극복과 대응 패러다임에 적극 개입하여 사회서비스 일자리의 양과 질을 담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근의 최저임금 증가는 여성들의 임금 수준을 상당히 증가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시간 당 임금으로 임금격차를 살펴본 결과 전반적으로 임금격차는 감소하는 추세에 있지만 여성의 저임금 비중은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그런데 여성 임금근로자 중 저임금근로자 비중은 2014년 이후 추세적으로 감소했으며 2018년에 18.1%로 급감했는데, 최저임금 인상효과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단순 시간급 하에서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인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이 삶의 질을 결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복잡한 임금 체계를 빌미로 최저임금 인상의 발목이 잡히고 있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제도를 둘러싼 계층별, 성별 이해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몇 가지 노동 정책만으로 여성 노동에 밝은 미래가 보장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 존중 기조는 노동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지위를 점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여성을 취업자수 증가의 정책 대상으로 되돌려놓기 전에, 여성이 노동 존중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조는 더욱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