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국고지원을 중심으로 알아보는 2020년 건강보험료율 결정 과정의 의미
김윤정 한국노총 정책본부 차장
정부는 지난 8월 22일 건강보험 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를 통해 2020년 건강보험료율을 현재보다 3.2%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건강보장 강화대책 발표 후 선택진료비 폐지, 2·3인 병실 건강보험 적용, MRI·초음파 급여화 등을 차례로 시행하며, 건강보험 급여를 확대했다. 급여화 되는 항목이 늘어난 만큼 건강보험료는 지속적으로 인상되고 있다.
당초 기재부가 요구했던 건강보험료율인 3.49%보다 낮아졌지만, 3%대 인상이 계속 유지되어 국민의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부담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료가 인상됨에 따라 직장가입자가 부담하는 평균 보험료는 올해 112,365원에서 내년 월 116,018원으로 3,600원 가량이 오르고, 지역가입자들은 세대 당 평균 87,067원에서 89,867원으로 2,800원 인상된다.
법상 내년도 건강보험료율은 정부의 예산편성 등 일정에 맞춰 당해 6월 말에 결정된다. 올해 역시 6월 말, 정부는 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에서 계획한대로 내년도 보험료율 3.49% 인상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한국노총을 비롯한 건정심에 참여하는 8개 가입자단체가 건강보험 국고지원 확대 없이는 건강보험료율 인상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8월 말로 미뤄졌다.
최종협상까지 두 달 동안 가입자단체들은 시민단체와 함께 국고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국회 및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에서 건강보험 국고지원 정상화를 위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정부 청사 앞 1인 릴레이 시위, 여당 지도부 면담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며 국고지원 정상화와 함께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함께 이어나갔다.
가입자단체들이 3.2%로 건강보험 인상에 의결한 이유는 ‘부대조건’ 때문
건강보험료 인상을 반대했던 가입자단체들이 3.2%의 건강보험료 인상에 동의한 이유는 정부가 국고지원과 관련된 부대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당시 제시된 부대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정부는 2020년 건강보험 정부지원을 14% 이상으로 국회에서 확보하도록 한다.
2. 정부는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지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안으로 2019년도에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하도록 노력한다.
첫 번째 부대조건과 관련하여 지난 8월 19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에서 열린 ‘2018년 회계연도 결사보고’에서 국고지원에 대한 질의에 대해 “국고보조금 지급비율을 최저 14%로 잡고 그 이상을 (재정당국에) 요구하고 있다”며 “단계적으로 높여 가겠다”고 대답했다. 장관의 발언대로 이번 건정심에서는 복지부가 국고지원금을 14% 이상 확보하겠다며 가입자단체들을 설득했다.
가입자단체들은 보장성 강화 정책을 통해 혜택을 보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어 보험료 인상에는 동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건강보험 국고지원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가입자인 국민의 건강보험료가 가파르게 인상되는 수순으로 이어지고 있어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보험료를 인상하는 만큼 정부의 국고지원도 함께 확대되어야 하지만 2007년부터 현재까지 국고지원은 법정 기준보다 적게 지급되고 있다.
최근 13년간(2007년~2019년) 정부가 건강보험에 지급하지 않고 있는 국고지원금은 무려 24조 5,374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건강보험법과 건강증진법에 따라 해당 연도 ‘건강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14%는 국고지원, 6%는 담배부담금으로 조성된 건강증진기금)’에 상당하는 금액을 지원해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실제 2007~2019년 국민이 부담한 건강보험료의 20%에 해당하는 100조 1,435억 원을 지원해야 하지만 정부가 낸 국고지원금은 75조6,062억 원으로 이 기간 법정지원액 기준(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에도 크게 못 미치는 15.3%에 그쳤다.
그리고 역대 정부의 건강보험 국고 지원율을 살펴보면 이명박 정부(2008∼2012) 16.4%, 박근혜 정부(2013∼2016) 15.3%이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국정과제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17년 13.5%, 2018년 13.2%, 2019년 13.6%로 지난 정부보다 낮아졌다.
문재인케어를 진행하면서 건강보험 재정지출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고지원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함께 수반되어야한다. 하지만 과거 정부보다 이번 정부에서 국고지원이 과소 지급되고 있어 한국노총을 비롯한 가입자단체들은 더욱 강하게 국고지원 확대를 요구해 온 것이다.
국고지원 확대와 함께 모호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도 시급한 문제
정부가 국고지원으로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법정기준치에도 낮은 금액을 지급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국민건강보험 상 명시된 관련 근거가 매우 모호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부대조건에서 확인 할 수 있는데, 복지부는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지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안을 위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을 제안했다. 가입자단체들도 법 개정의 필요성을 알고 있어 부대조건에 동의했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법 중 국고지원 조문을 살펴보면, <매년 예산의 범위에서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100분 14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고에서 지원한다>고 되어 있다. 또, 건강증진기금도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른 당해연도 보험료 예상수입의 100분의 6에 상당하는 금액을 …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지원한다>고 되어 있다.
두 조문 다 ‘예산의 범위’ 및 ‘예상수입’이라는 애매모호한 문구로 인해 기재부가 매년 지급해야 할 국고지원금의 일부를 지급하지 않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관련법을 개정해 보다 명확하게 국고지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현행 국고 지원 관련 법 규정은 2022년 12월31일까지 한시적으로 적용하고 있어 이를 연장하려면 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정부의 국가지원금은 법정 국고지원 비율인 20%에 턱없이 부족한 13%대 수준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조 원 증액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1조 원이 늘어도 지원수준은 14% 정도다. 정부가 이번에 가입자단체들에게 내건 부대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국고지원을 1조 원 이상 늘려야한다.
다행히 가입자단체들을 설득했던 국고지원 14% 지급 이행은 지켜질 전망이다. 지난 8월 26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진행한 2020년 예산안 관련 당정협의에서 건보 보장성 강화 정책을 차질 없이 이행하기 위해 1조 600억 원을 증액해 2020년 보험료 예상수입의 14%를 지원하기로 의결했다.
하지만 부대조건인 14% 이상을 확보하는 조건을 함께 동의한 만큼 10월 말 국회 예산 통과를 앞두고 복지부가 어떤 노력을 기울일지 지켜봐야 한다.
가입자단체인 한국노총은 노동시민단체와 함께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국고지원 확대가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국회가 국민건강보험법을 하루빨리 개정하도록 촉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