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매일노동뉴스 사진기자
사는 집 옥상과 작은 앞마당에 흙 담을 만 한 공간이 있어 지난봄부터 괜히 바빴다. 상추와 대파, 치커리, 방울토마토며 가지 모종을 심고 물 주고 살폈다. 당근과 콩은 씨앗을 심었다. 안 자라더라. 단단한 흙이 문제였다. 뒤늦게 갈아엎고 급히 공수한 기름진 흙과 거름을 섞어 다시 꾸렸다. 지렁이 키우는 집이 있어 몇 마리 얻어다가 풀어뒀다. 아침저녁 문안 인사를 빼먹지 않았다. 곧 무성해진 그것들을 보며 그간의 조바심이 무상했다. 저마다의 속도가 있더라. 뿌리 내리는 데엔 시간이 필요했다. 잡초 뽑느라 아이 어린이집 등원 늦는 줄을 몰랐다. 손톱 밑이 자주 까맣다. 얼핏 피부도 검어진 것 같다. 밀짚모자를 구할 생각이다. 책상 하나 크기 정도의 밭을 일구면서 마음만은 큰 농사 짓는 듯 바빴다. 일 바쁘다고 한동안 찾지 않았던 시골집 마당과 너른 밭에서 자라나던 온갖 푸성귀와 과일과 꽃과 잡풀을 생각했다. 늙은 엄마 아빠는 별 일도 없이 바쁘다고 내게 말했는데 어림짐작이 됐다. 무엇이든 쑥쑥 자라나는 생명의 계절에 하루 또 늙어가는 사람을 떠올렸다. 텃밭 사진 한 장 찍겠다고 그 앞에 엎드리고 쭈그리면서 나는 밭은 숨을 내쉰다. 아직은 초록빛 그 작은 토마토 매달린 걸 보고 마냥 흐믓해 한다. 재미로 시작했는데 위로가 된다. 퇴근 시간, 나는 귀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