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우 전 뉴스토마토 기자
눈 깜짝할 사이에 또 연말이 왔다. 송년회를 하자는 제안이 심심치 않게 온다. 기자는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인 마천동에서 자랐다. 기자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은평구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1년에 한번 송년회 때문에 방이동에 간다. 연말에 한 번 방이동까지 가는 게 썩 불편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여러 사람들이 불편할 바에 내가 불편한 편이 낫기 때문이다. 일종의 양보이자 배려다. 대중교통에서 임산부와 노약자에 자리를 양보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언급한 사례는 일상 속에서 할 수 있는 아주 낮은 수준의 양보다. 잠시 불편하지만, 이타심을 느낄 수 있는 것도 긍정적이다. 그런데 금전적 손해와 불안감이 예상되는 양보라면 매우 복잡하고 간단치 않은 문제가 된다.
느닷없이 양보에 대한 이야기를 한 건 연말이어서가 아니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또 다시 노동계에 양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노동계의 양보를 요구하는 현안도 적지 않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최저임금제 개편, 광주형 일자리 등 노동자의 손해를 요구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최저임금을 지역과 업종별로 차등화하고, 주휴수당을 폐지하자는 요구도 어느새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전 정부에서도 비현실적인 요구로 여겨졌던 현안들이 문재인 정부에서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한 언론은 노동계를 향해 ‘촛불권력의 폭주’라고 규정했다. 노동계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내용의 자극적인 기사다. 노동계의 반대 이유를 모르고 기사만 읽으면 노동계는 일자리 창출과 소상공인의 고혈을 짜내는 이익집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에서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는 협력해야 한다”며 “투쟁할 게 아니라 양보와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대 정부 때마다 나왔던 ‘양보론’이다.
이번 정부가 요구하는 양보는 노동자의 ‘임금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1년으로 확대하면 대부분 업종에서 연장수당을 받기 어려워진다. 국내 임금체계는 배보다 배꼽이 큰 기형적 임금체계가 대부분이다. ‘워라밸’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용어임에도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소규모 사업장은 더도 덜도 말고 최저임금만 준다. 주휴수당을 폐지하거나 최저임금을 차등화하면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이 줄어드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완성차 공장의 노동자와 같은 일을 하면서 절반의 임금을 받는 광주형 일자리는 기형적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노동계의 양보를 요구하는 속내도 수긍이 간다. 최저임금도 올려야 하고, 노동시간도 단축해야 할 것이다. 더 벌고 덜 일해야 내수가 살아나는 것은 분명하다. 수렁에 빠지고 있는 제조업을 살려야 하는 절체절명한 과제도 있다. 노동계가 동의해야 사회적 대타협을 하는 모양새를 만들 수 있다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양보를 언급하는 건 맞지 않다. 정부의 노동 정책이 삶의 질을 후퇴시킬 게 뻔한 데 양보하지 않는다고 기득권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정치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이다. 양보를 전제로 노동계가 얻을 게 없는 것 또한 자명하다. 박근혜 정부는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노동개혁을 추진하다 실패했다. 이전 정부들도 노동계의 양보를 강요했다. 박근혜 정부는 청년 일자리를 창출한다며 노동개혁을 무리하게 추진했다. 청년일자리와 무관한 저성과자 해고요건, 임금피크제 등이 쏟아졌다. 양보의 명분은 그럴 듯 했지만, 실상은 노동자의 삶의 질이 후퇴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6년 동안 노동기사를 쓰면서, 양보의 당사자는 늘 노동자였던 것 같다. 더 가진 자의 입장에선 노동자의 파이를 줄이고 싶겠지만, 노동자는 사실상 더 줄 게 없다.